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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그 바이러스, 나도 감염되었을까?

이혜진 | 해냄출판사 편집주간

[인-잇] 그 바이러스, 나도 감염되었을까?
얼마 전 여름휴가를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된 책이 있다. 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90년대생들의 특성을 분석한 이 책은 이미 작년부터 베스트셀러였지만, 대통령의 추천도서로 알려지면서 또 한 번 관심을 모았다. 한 국가의 리더가 갖는 당대의 중요한 사회적 분위기나 이슈에 대한 관심의 반영일 거다.

가히 문명 전환기라고도 할 만한 시대에, 청춘을 보내고 있는 이들은 일에 대한 지향과 삶의 가치관도 라이프스타일도 기술에 대한 적응력도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 신인류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절실함이 사회 곳곳에 퍼져가고 있는 듯하다.

한 존재로서의 개별성, 자기만의 의미 추구 등을 우선시하는 밀레니얼들이 사회 전면에 부상할수록 점점 더 쪼그라들며 터부시되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꼰대'다. 20대의 '젊꼰'도 있다지만 요즘 꼰대란 말에는 나이와 권위를 앞세워 불통과 불합리를 서슴지 않는, 타인의 경계를 벌컥벌컥 열어젖히는 눈치 없는 연장자들에 대한 비난과 반감이 서려 있다.

결국 서른 중후반만 돼도 '멀리하고 싶은 사람', '시대에 뒤처진 사람'의 동의어나 다름없는 꼰대 바이러스에 걸릴까 전전긍긍하게 되는데, 예방과 치료가 말처럼 쉽지 않다. 단지 청년과 기성세대의 차이나 갈등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이고 거대한 세상 변화의 한 흐름이라 더욱 그렇다.

그래서 책동네에도 새로운 세대에 대한 다양한 담론과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경제, 정치, 문화의 거대한 지형을 바꾸어놓겠지만 이미 우리의 일상에서도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너 꼰대야? 어쩌다 그렇게 관리자 마인드로 변했어?"

내 귀를 의심했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두 단어를, 그것도 동시에 듣다니. 친구 넷이 모여 각자 회사에서 작든 크든 부서를 책임지면서 생기는 후배들과의 마찰을 이야기하며 모처럼 마음을 풀어놓고 '요즘 애들'에 대해 성토하며 핏대를 세우던 중이었다. 책임자이기에 차마 그 앞에선 삼켜야 했던 일, 내 가슴을 숯검댕이로 만든 그 일들을! 아니 그런데 되레 내가 꼰대라고? 대화의 방향은 나는 왜 꼰대가 아닌지를 변호하는 일로 옮겨갔다.

안타깝게도 목소리가 격앙될수록 나의 꼰대 인증마크는 점점 더 짙어져갔고, 스스로도 이를 부인할 수 없었다. '장'의 자리가 몸에 익숙해질 무렵,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권위의 가짓수가 늘어날수록 생각이나 태도가 견고해지고 무거워졌다. 면담을 빙자한 긴 설교가 잦아졌으며 외부 미팅에서도 대화의 점유도가 압도적이었다. 회의 시간에 좀 자유롭게 이야기해보자 해놓곤,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한 고군분투라 했지만 혼자 말하기 바빴다. 기존 방식에 대한 후배들의 다른 의견이나 비판 앞에선 표정이 굳곤 했다.

그 무렵 유명 광고인인 박웅현 씨가 젊은 후배들과 함께 창의성에 대해 발표하는 출간기념 강연회가 있었다. 그는 강의의 앞과 뒤를 맡아 발언했지만, 최대한 무대에 선 후배들을 비춰주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 이제 강의를 마치겠습…"
"저...저기요, 질문이 있는데요." 쑥스러워도 꼭 묻고 싶었다.
"출판도 광고회사에서처럼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일인데요. 이런 조직에서 꼰대가 되지 않고, 팀원들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시의 제법 길고 친절한 답변을 요약하면 이렇다. "잘 들어야 한다. 무작정 꼰대가 되지 않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해보고 제대로 들으려고 하는 것이 먼저다."

사람들에게 '꼰대'라는 말이 불편한 이유는, 분명 자신도 좀 더 도전적이며 유연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 그 시절 내가 비판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어느덧 반복하며 닮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박웅현 씨의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분명하다. 쿨한 선배가 되려는 특별하고 인위적인 처방보다는 인간관계의 기본을 지키고 자기성찰에 힘쓰는 것이, 꼰대 바이러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시작이다. 신종플루가 유행할수록 손을 자주 씻고, 최소한 공공장소에서는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해야 하듯이. 행여 이미 그 바이러스가 침투했다면 지금이라도 더욱 조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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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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