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싸움에서 평화 교육의 장으로…수요집회 27년의 기록

이성훈 기자 sunghoon@sbs.co.kr

작성 2019.08.15 02:0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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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7년 동안 1천4백 번의 집회가 이어졌지만, 일본은 아직도 진심 어린 사과는 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그사이 집회는 후손들과 전 세계 시민이 함께하는 연대와 평화교육의 장으로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SBS 비디오머그가 그 역사를 돌아봤습니다.

<기자>

소녀상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터입니다.

매주 수요일 정오마다 이곳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요구하는 항의 집회가 열려왔는데, 어느덧 1,400차를 맞은 수요집회의 시작은 지난 1992년 1월 8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치욕스럽다는 생각에 과거를 꼭꼭 숨겨온 할머니들.

하지만 고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공개 증언이 도화선이 됐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집회에 동참해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집회가 거듭될수록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커져 갔습니다.

[故 황금주 할머니/600번째 수요집회 (2004년 3월 17일) :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제발 빨리빨리 해서…. 나는 돈도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야. 난 사죄받아야 해.]

오지 않기를 바랐던 1,000번째 집회에서도 목 놓아 외쳤지만, 정작 들어야 할 이는 귀를 닫은 듯했습니다.

[故 김복동 할머니/1,000번째 수요집회 (2011년 12월 14일) : 일본 대사는 들어라 평화의 길이 열렸으니 이 늙은이들이 다 죽기 전에 하루빨리 사죄하라고. 알겠는가 대사?]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 할머니들은 하나둘 스러져, 이제 스무 분이 남았습니다.

[이옥선 할머니/669번째 수요집회 (2005년 8월 10일) : 일본 사람들은 우리 할머니들이 다 죽기를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여기 앉은 분들이 다 우리 후대인데 왜 우리가 다 죽겠습니까?]

수요집회는 어느새 후손들과 전 세계 시민이 함께하는 연대와 평화 교육의 장으로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일본 정부의 생떼에 시민들은 소녀상에 목도리를 감아주는 것으로 연대했고, 한일 위안부 합의가 할머니들의 상처를 후벼 팠지만, 결코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첫 집회 이후 27년이 흘러 맞이한 1,400번째 수요일.

할머니들의 바람은 여전히 하나입니다.

[길원옥 할머니/1,400번째 수요집회 (어제) : 1,400회가 되도록 길게 이렇게 모인다는 게 다 힘든 일이니까 눈 감기 전에 해결되는 걸 봤으면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