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코 日 경제산업상, "한국 정부 조치에 근거 없다"
일본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은 어제 오전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한국 정부가 취한 조치가 근거가 전혀 불명확하다는 겁니다. 그는 "한국 측 (발표) 기자회견을 보아도 애초 무엇을 근거로 일본의 수출관리 제도가 수출관리 레짐(체제)의 기본원칙을 따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도대체 확실하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안전보장 관계에 따른 국제 수출통제 등 모든 원칙을 지키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문제냐는 말입니다.
자, 우리 정부가 사례를 가지고 있느냐, 어떤 것이냐는 것은 잠시 미뤄두고 실제 우리 정부의 발표가 어땠느냐를 살펴볼까요? 일본의 주장대로 구체적인 사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동어 반복식의 질문과 답변도 많습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일부러 그런 것이며,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실제 일본이 우리나라에 이번 조치와 관련한 소를 제기할 경우, 어제 발표 같은 정부 공식 브리핑은 모두 '증거'로 활용됩니다. 이 때문에 최대한 말을 아끼며 발표를 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게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일본의 발표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세코 산업상은 기자 질문의 단어가 잘못됐다면서 '수출 규제'를 '수출 관리'로 바꿔 쓰라고 압박하기까지 했습니다.
또 상대국에 제재 조치를 한다면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공개적인 브리핑에서 말할 필요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입니다. 앞서 나온 소송 문제도 있을뿐더러, 기업과 연관된 부분 때문에 엉뚱한 피해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잘 가지고 있다가 상대국 당국자 등에게 설명해야 하는 자리에서만 명확히 말하면 된다는 거죠. 세코 산업상 역시 이런 사정을 다 알면서도 시비를 걸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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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거꾸로 꺼낸 'WTO 위반 소지'…"적반하장 아냐?"
앞서 그제 밤에는 사토 마사히사 일본 외무 부대신이 먼저 트위트에 우리나라 조치와 관련한 글을 올렸습니다. "일본의 수출관리 조치 재검토에 대한 대항조치라면 세계무역기구(WTO) 위반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어 그는 "이것이 어떠한 이유인지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한국으로부터 일본으로 (수출되는) 미묘한 전략물자는 거의 없는 것은 아닌가"라며 "그다지 실질적 영향이 없을지도?"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일본이 먼저 우리에 대해 어떤 조치를 했는데 거기에 우리가 액션을 같이 취하는 게 무슨 문제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제 포털 댓글에는 적반하장이라는 말도 나오기도 하는데요, 여기엔 사토 부대신의 말에 나온 중요한 단어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대항조치>라는 입니다. 정식용어는 영어로 'countermeasure'인데, 우리나라에선 '상응 조치' 등으로 쓰이기도 하는 말입니다. 왜 이게 중요한 단어일까요? 그건 바로 WTO 제소와 관련됐기 때문입니다.
WTO 협정(DSU 제 23조)에서는 "다른 회원국의 WTO 협정 위반이 의심되는 경우 회원국이 위반 여부를 직접 판단해 일방적 무역조치를 취하지 말고, 이 문제를 오로지 WTO 분쟁해결제도에 회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부당하게 우리에 대한 경제적 타격을 준다고 해도 그에 대한 리액션을 마음대로 취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 정부도 이러한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상당히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습니다. 일본의 문제가 발견되어 '연례적'으로 '개선'하고 있는 수출관리 제도를 변경하는 것일 뿐이라는 거죠. 같은 이유로 일본이 언론에 '수출 규제'라는 단어조차 못쓰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의 조치는 <대항조치>로 문제가 될 만한 수준일까요?
● 한국 조치는 국제법상 '대응조치'에 크게 못미쳐...日 다음 움직임이 관건
사실 이론적으로는 일반국제법상의 대응조치(countermeasure)가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입니다. 특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천기 무역통상실 무역협정팀 부연구위원이 이런 내용을 분석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ILC 국가책임협약 초안 제22조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습니다.
"The wrongfulness of an act of a State not in conformity with an international obligation towards another State is precluded if and to the extent that the act constitutes a countermeasure taken against the latter State in accordance with chapter II of Part Three."
쉽게 설명하면, 상대방의 잘못된 조치에 대항하는 '대응조치'는 원칙적으로 가능한데, 일정한 조건과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협약 초안 제51조와 제52조에 규정된 여러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한국은 일본의 '국제위법행위'에 상응하는 대응조치를 부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51조와 52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응조치는 일본의 국제법상 위법행위가 야기한 손해에 비례하는 수준이어야 하고(제51조), 사전에 일본 측에 손해배상 청구를 통지하고 일본에 교섭을 제안해야 합니다. 단 그러한 교섭 이전에도, 필요한 경우 자국의 권리보전을 위해 '긴급 대응조치(urgent countermeasures)'는 가능(제52조)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야기한 손해와 같은 수준의 조치를 취하는 것을 '대응조치'라고 본다면, 우리 정부의 이번 조치는 '대응조치'라고 하기엔 한참 떨어지는 수준입니다. 최장 90일을 검토하는 일본과 달리 검토기간도 최장 15일일 뿐이며,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 전 이미 세 가지 개별 품목에 대해 규제를 시작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규제의 구체적 품목조차 전혀 말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전문가들은 '제3국이 보기엔 뭐든 같을 것'이라며 대응조치로 WTO에 문제 삼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전문가들은 아직은 그런 상황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취재를 하며 모든 전문가들이 동의한 것이 있었습니다. 일본이 취하는 행동, 그게 무엇이든 대화가 아닌 추가 규제 쪽의 대응이라면 양국 관계가 크게 악화할 것이라는 겁니다. 산업부는 오늘 백색국가 제외에 관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에 대한 행정예고를 할 예정이며 의견수렴 마감 시한은 9월 2일까지입니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고시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일본과 언제든지 대화와 협의에 열려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과연 일본은 앞으로 어떤 액션을 취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