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총선 영향에 긍정적"…민주연구원 보고서와 그 설명의 의무

박하정 기자 parkhj@sbs.co.kr

작성 2019.08.06 16:19 수정 2019.08.06 16:2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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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주의'라는 빨간 글자가 귀퉁이에 적힌 문서였습니다. 3장짜리 문서의 제목은 '한일갈등에 관한 여론 동향 보고서'. 이 보고서는 지난 7월 30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에서 만들어 당일 여당 의원 전원 128명에게 이메일로 전송됐습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7월 26일~27에 걸쳐 실시한 여론조사 내용을 분석한 보고서였는데,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7월 보고서로 직접 공표하지는 않았던 내용도 담겨 있었습니다. (▶ [단독] 민주연구원 "현재 대응 방식, 총선 영향은 긍정적", 7월 30일 8뉴스 리포트)


● 민주연구원 "한일갈등 대응…총선 영향 긍정적일 것"

일본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여야는 제각기 분주히 대책 마련에 골몰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은, 그간 정부의 대일 외교 정책부터 대응 방식까지를 주로 비판하는 자유한국당을 향해 '친일'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며 비판했습니다. 일본 정부를 견제하며 함께 싸울 생각은 않고 내부 총질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겁니다. 비판의 대상이 된 한국당도, 외교적 해법이 급한 상황에서 고작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데에 의지하겠다는 거냐며 철없는 친일 프레임에 집착하는 어린애 정치를 하고 있다고 청와대와 정부, 여당을 싸잡아 비난했습니다.
민주연구원 보고서 '한일갈등 여론 동향'이런 최근 한일갈등에 관한 여야 대응이, 총선에 강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민주연구원 보고서의 핵심이었습니다. 보고서 첫 페이지 첫 줄에 나와 있는 기조 문구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최근 한일갈등에 관한 대응은 총선에 강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역사 문제와 경제 문제를 분리한 원칙적인 대응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특히 민주당 지지층뿐 아니라 50대, 중도, 무당층을 함께 묶어 이른 '스윙층'에서도 원칙적인 대응을 선호하고 있고 이들 집단에서 한일문제에 대한 대응이 총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더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보고서 세 번째 페이지에서는 이 설명을 좀 더 구체화합니다. 우리 지지층일수록 현 상황에 대한 여야의 대응이 총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원칙적 대응을 선호하는 여론에 비추어 볼 때 총선 영향은 긍정적일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지금 여당에서 앞서 분석한 것처럼 역사 문제와 경제 문제를 분리해서 원칙적인 대응을 강조하고 있고, 이를 선호하는 여론에 비춰볼 때 이런 상황과 대응은 내년 4월 15일에 있을 총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겁니다.

보고서는 또 말미에, 한국당에 대한 민주당의 '친일 비판'의 효과에 대해서도 분석했습니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이런 '친일 비판'에 압도적으로 공감하지만 무당층에서는 공감이 적다며, '친일 비판'이 결국 지지층 결집 효과는 있어도 확대 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정책적 문제라기보다는 '정쟁' 프레임에 대한 반감으로 보인다는 이유도 적었습니다.
민주연구원 보고서● 국가적 위기 상황에 표 계산 열중?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이후 모두 힘을 합쳐 '원팀'으로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여당이 늘 강조해 왔던 상황에서, 바로 그 여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한일 갈등 여론 동향을 전달하며 이에 대한 대응이 선거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분석을 했다는 게 이 보고서를 통해 확인된 상황. 부적절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민주연구원 관계자는 '원칙적 대응을 지지하는 국민이 많으니 당연히 총선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논리로 작성한 것일 뿐'이라고 답했습니다. 현상을 분석했고 그를 바탕으로 전망을 했을 뿐이라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이러이러한 대응이 총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을, 단순히 내부 분석을 했다는 것을 넘어 그 결과를 정리해 총선이 다가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지역구를 바쁘게 오가고 있는 여당 소속 국회의원 전원에게 보냈다는 건 분석 이상의 또 다른 문제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 여당은 표 계산이나 하고 있었느냐는 비난이 곧바로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민주연구원은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유감의 뜻을 밝혔습니다. "적절치 못한 내용이 적절치 못하게 배포됐다"면서 "충분한 내부 검토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부적절한 내용이 나갔다"고 민주연구원은 설명했습니다. 관련자들에게는 엄중한 주의와 경고 조치를 취했다고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민주연구원은 한일 갈등을 선거와 연결 짓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당이나 연구원의 공식 입장이 아닌 조사 및 분석보고서가 오해를 초래하지 않게 보다 신중을 기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민주연구원에서 민주연구원 이름을 달고 작성해 의원들에게 전송한 보고서가, 당이나 연구원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설명이 덧붙여진 겁니다. 민주당 대변인들 역시 보고서 내용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당 최고위원회의 등에 공식적으로 보고되거나 지시에 의해 작성된 보고서는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양정철● "이해가 안 되면 할 수 없다"는 양정철 원장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며 취임 직후엔 민주연구원을 총선 병참기지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던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기관장이니만큼 그에게 화살이 쏟아진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최근 지자체와 기업, 또 해외 싱크탱크와의 교류를 늘려가며 그야말로 '광폭 행보'를 보여 왔기 때문에 언론의 관심도 한 몸에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보도 다음 날 아침 일찍 열린 민주당 내부 비공개 회의에서,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기관장으로서 자신의 불찰이었다고 전하자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선거 관련 여론조사를 할 때 더 주의를 기울이라는 취지로 사실상 양 원장에게 경고를 했단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민주연구원이 아니라 민중선동연구원이냐, 양정철 원장을 즉각 해임해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은 이번 일본 수출 규제 조치가 낳은 사태를 내년 4월 15일 총선 때까지 끌고 가려는 속셈이었느냐 등 야당의 비판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민주당 내부 당원 게시판에도 비판 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내용도 말이 안 되지만 작금의 엄중한 상황에서 이렇게 가볍게 처신해도 되느냐며 사퇴를 요구하는 글, 또 분란을 만들고 있다는 글 등 비판이 양 원장을 향했습니다. 민주연구원에서 보내왔던 5문장짜리 입장에도, 이 보고서가 당이나 연구원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라는 설명이 담기며 궁금한 점이 남았던 만큼, 양 원장에게 직접 더 이 사안에 대해 묻고 싶었습니다.

이날 양 원장은 민주당사에서 열린 송승민 중국과학원 중국발전전략연구회 상무이사 초청 특강에 참석했습니다. 자리가 끝난 뒤 외부에서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이 양 원장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민주연구원에서 유감을 표명했는데 어떤 맥락에서의 유감 표현이냐는 질문에 양 원장은 '발표한 게 다'라고만 짧게 말했습니다. 연구원 명의로 나온 보고서인데 연구원 입장과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 맥락 그대로 이해하시면 된다"라고 했고, 그 맥락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추가 질문에는 "이해가 잘 안 되면 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연구원 이름이 쓰인 채 발송된 보고서가 연구원의 입장이 아닌지, 취지와 작성 과정에서 어떤 점이 부적절했다는 것인지, 한일 갈등을 선거와 연결 짓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는데 이 보고서는 어떤 취지였는지 등 궁금한 게 많았지만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일본, 화이트리스트 배제 강행예상했던 대로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배제하는 조치를 내렸습니다. 정부 여당은 일본 정부와의 '경제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당장 그제 당정청이 한데 모여 중장기 대책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댔고 어제 아침 민주당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일본의 비정상적 경제 침략으로 시작된 난국", "반문명적, 반역사적, 반문화적 폭거" 등 강경 입장이 이어졌습니다. 민주당이 당내에 설치한 일본경제침략대응특별위원회에서도 일본 도쿄에 대한 여행 금지구역 확대 등 추가 대책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당에서 한목소리로 점차 더 수위를 높여가며 대일 공세를 펴는 것에 '특별한 숨겨진 의도'가 있다고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 '총선 승리'라는 목표를 상정하고 일본의 조치에 대한 대응 방식을 결정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다는 뜻입니다. 다만 '특별한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는 내심이 세상에 알려졌다면, 그리고 그것이 '특별한 의도'로 해석되지 않길 원한다면, 회피할 것이 아니라 책임감 있게 해명하고 설득할 의무도 여당, 그리고 민주연구원의 몫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