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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강력한 을질'에 변해가는 '반도체의 역사'…일본은 준비가 되었나

[취재파일] '강력한 을질'에 변해가는 '반도체의 역사'…일본은 준비가 되었나
● "정말 강력한 을질이죠"…소재 구하기 전쟁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해 정말 많은 분을 통해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런 도중 들었던 이야기 중에 가장 강력하게 뇌리에 남은 말이 있습니다. '정말 강력한 을질'이라는 단어였습니다. 보통은 구매력이 있어서 뭘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 이제 너희 것 안 사'라고 이른바 '갑질'을 하는 경우가 흔한 경우인데 그 반대라는 겁니다. '너희한테는 안 팔아'라는 거니까요. 을질이 또 다른 갑질로 승화하는 순간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정말 '을질'치고는 꽤 강력합니다. 지난 4일부터 세 가지 품목,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폴리이미드의 수출 규제가 이뤄지고 난 뒤 업계의 모습을 보면 정말 급박했습니다. 당장 있는 소재는 아껴 쓰고, 추가로 혹은 대체해 구할 곳이 없는지 업체들은 세계를 누볐습니다. 당장 증설을 시작하고, 있는 기술을 이용해 적용이 되는지 테스트까지 시작했죠. 정신없이 7월이 지나고 이제 8월. 그런데 내일은 이런 규제가 추가로 확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화이트 리스트 배제'입니다.

● 2010년 중국과 일본의 '희토류 분쟁'…일본은 잊었나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27일 공식 페이스북에 카드 뉴스 형태의 사진 파일을 공개했습니다. 내용은 2010년 중·일 희토류 분쟁을 언급하며 일본의 모순을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희토류 분쟁 시 일본 정부의 주장을 되돌려 주고 싶다'는 제목의 카드 뉴스에는 일본 경제산업성이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가 일본만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WTO를 위반하는 것이며 세계 각국과 공동으로 중국에 시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당시 중국에 대해 차별적 조치를 지적했던 일본이 이번에는 반대로 한국에만 수출규제를 하는 차별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의 논리보다 희토류 분쟁 이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면, 일본이 정말 당시의 교훈을 잊었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한번 살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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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댜오위다오(일본 이름 센카쿠 열도) 인근 해역에서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이 중국 어선과 선원을 나포합니다. 일본 순시선 2척과 충돌한 혐의였습니다. 일본이 당시 선장을 구속했는데, 이후 중국의 반응은 그야말로 '강공'이었습니다. 외교적으로 일본과의 대화 사절을 표명하면서 공개적인 대일 비난에 나서는가 하면 경제 보복으로 느껴질 만한 무력시위까지 벌이는 형국이었습니다. 여섯 차례에 걸쳐 니와 우이치로 주중 일본대사를 주말 또는 야간 할 것 없이 '거친' 방법으로 외교부로 불러 항의하기도 해 거의 '무례'에 가까운 행동을 했다는 평도 나왔습니다.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희토류 수출 제한'이었습니다.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97%를 차지하는 중국이 희토류 수출량을 전년 대비 40% 적은 3만 톤으로 제한한 것에 이어 아예 희토류 수출을 중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통관절차 지연 등을 통해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사실상 중단했던 겁니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수출 중단에 대해선 부인했습니다. 이어 중국이 일본 국채를 대거 사들여 엔고현상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지만, 희토류 하나만 해도 너무나 강력한 조치였습니다.

희토류가 뭐기에 이렇게 강력할까요? 희토류는 화학 원소번호 57~71번에 속하는 15개 원소에 스칸듐·이트륨을 더한 17개 원소의 총칭입니다. 일종의 전략자원으로 불리는데, 소량으로도 기기의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물질이라고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주변에 온갖 기기가 이걸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만큼 강력한 겁니다. LCD, LED, 스마트폰, 전자제품 등 IT산업에 아주 폭넓게 쓰이고 배터리에 페인트, 형광체, 광섬유의 필수 요소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희토류가 매장된 곳이 아주 한정적인 데다가 이걸 분리해 정련하는 과정도 어려워서 생산량도 많지 않습니다. 북한에도 매장량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지만 과거 상당 시간 중국이 대부분의 희토류 생산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은 결국 17일 만에 백기를 들었습니다. 일본은 중국 선장에 대해 조기 석방 의사를 밝히고 기소 유예로 풀어주면서 갈등은 일단락됐습니다. 희토류를 이용한 중국의 승리라는 평이었습니다.
중국산 희토류
● 중-일 '희토류 분쟁'의 교훈 두 가지

메리츠종금증권의 이진우 연구원은 이 '희토류 분쟁'의 교훈을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일단 이런 식의 분쟁과 보복이 시작되면 봉합이 되더라도 재발의 가능성이 높다는 게 첫 번째 교훈입니다. 표면적으로 2010년 끝난 희토류 분쟁은 결국 2012년 경제계 전반으로 확장되어 다시 한번 나타났습니다. 2012년 4월 일본의 센카쿠 열도를 매입하겠다는 이시하라 도쿄지사의 발언 등으로 중국의 반일 감정이 급격히 커졌고, 결국 그 해 8월 중국 80여 개 도시에서 반일 시위, 일본 편의점 공격, 공장 방화 등이 이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중국 내 일본 자동차 판매 감소, 일본 여행 패키지 취소 등도 같은 시기에 진행됐습니다.

두 번째 교훈은 결국 이런 강대강의 대립은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앞선 취재파일 등에서도 말씀드린 세계 분업구조, 글로벌 밸류체인에 영향을 미치면서 결국 이 지형도가 변한다는 거죠. 희토류가 정확히 그랬습니다. 2010년 희토류 분쟁 이후 일본은 이 문제를 명확하게 깨닫게 됩니다. 90%라는 희토류 중국 의존도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는 걸 말이죠. 이후 일본은 호주, 인도, 카자흐스탄 등을 통해서 중국 의존도를 50%까지 낮췄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산 부품소재에 대한 의존도를 대폭 낮추기 시작해 몇 년에 거쳐 11.8% 정도 수준까지 낮췄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변화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도체 수출
● 틀어진 물줄기…규제 길면 길수록 더 많이 변한다

이미 위협을 받은 '세계 1위' 한국 반도체의 모습도 이와 비슷해 보입니다. 일본의 불산 규제도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가깝게는 지난해에도 갑자기 중단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삼성과 SK하이닉스 입장에서 지금까지는 굳이 일본산 소재를 대체했다가 생길 수 있는 불량 등의 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크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계기를 일본이 만들어준 상황입니다. 다소 리스크가 있고 비용을 지불하게 되더라도 의존 비중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반도체의 역사는 이렇게 바뀔 겁니다. 일본의 규제가 길면 길수록 또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말입니다. 당장 우리 경제와 산업이 입고 있는 피해가 있지만 역으로 일본 정권은 우리에게 수출하고 싶어 하는 아니 수출해야 하는 일본 기업들의 피해가 그대로 유지되더라도 정말 괜찮을까요? 화이트 리스트 배제 결정이 예상되는 2일을 하루 앞두고, 아베 정권이 꼭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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