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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우리, 나쁜 꼰대는 되지 말자"

김창규│입사 20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직장인 일기를 연재 중

[인-잇] "우리, 나쁜 꼰대는 되지 말자"
'결국 꼰대' 번외편: "우리, 나쁜 꼰대는 되지 말자"

갑자기 경기지사 점검을 갔다. 아침에 도착해 보니 지사에서는 고사(告祀)를 지내야 한다고 부산이다. 오늘이 상달이라나. 회의실에 돼지 머리와 시루떡이 올라간 상이 준비되자 지사장부터 절을 하고 지사의 평안과 풍요를 빌었다. 나도, 다른 직원들도 뒤를 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지사장 방으로 들어갔다. 관리팀장은 한 묶음의 서류철을 갖고 실무자들과 함께 들어왔다. 내가 체크리스트에 따라 몇 가지 지적을 하자, 지사장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실무자들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따져 물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약간의 업무 실수를 한 설 차장한테는 엄청 질책을 하고 엉터리로 일을 한 박 과장의 잘못은 별거 아닌 것처럼 넘기는 것이었다. 느낌인가? 유독 설 차장에게만 심하게 대했다.

점검이 끝나자 내가 맘에 안 들었는지 아니면 정말 약속이 있었는지 지사장은 선약이 있다고 나갔다. 나는 관리팀장과 고생한 실무자들과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그런데 설 차장은 바쁘다며 빠지겠다고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거듭 같이 가자고 권했으나 그는 또 거절했고, 그러자 관리팀장이 "그냥 두세요."하며 나를 만류했다. 설 차장을 보며 "저한테는 비용절감이네요."하고 웃으며 넘겼지만, 속으론 관계를 잘 갖지 못하는 친구인가 보다 생각했다.

식사 후 관리팀장과 의왕영업소에 갔다. 영업소 점검도 해야 했는데 마침 거기에 동기가 소장을 하고 있으니 님도 보고 뽕도 딸 수 있었다. 도착하니 5시. 점검은 술자리로 이어졌다.

"뭐라고, 그러니까 특정 종교를 믿는다고 구박한 거네요!"

"아니 그게 아니고 자꾸 튀는 행동을 하니까요. 교리와 어긋하는 것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안하니 주변 사람들이 어디 좋아하겠어요. 봐요, 아까도 고사 지낼 때 설 차장은 없었다고요. 옆에라도 있으면 어디 덧나나요?"

"그건 그렇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동기가 관리팀장 말을 거든다.

"야, 너 전에 본사에서 근무할 때 어디 출신이 아니어서 팀 내 생활이 괴롭다고 했던 거 기억나냐?"
"그랬지. 생각하기도 싫다. 으…"
"그거랑 이거랑 뭐가 다르냐? 이거 집단 괴롭힘, 따돌림이야."

"혹시 종교가 있으세요?" 관리팀장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없어요. 그런데 이건 종교의 문제가 아니에요. 사람을 대하는 방법의 문제죠. 설 차장 일한 거 보니까 잘했던데, 왜 욕은 다 설 차장이 먹죠? 그가 종교 때문에 모난 행동을 했는지 몰라도 회사에서는 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건 아니지. 회사 생활은 사람 관계를 기본으로 하잖아. 관계가 원만치 못하면 일도 잘 할 수 없어." 동기가 또 반론을 제시했다.

"그런데 너는 왜 그때 그렇게 힘들어했니? 너는 능력도 있고 잡기에도 능하고 심지어 윗사람 비위도 잘 맞추는데 왜 겉돌았어. 미안해. 너를 공격하려는 의도는 아니야. 결국 당시 팀장이 출신이 다르다고 너를 따돌려서 그런 거 아냐. 잘은 모르지만 설 차장도 그런 환경에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종교가 회사를 우선하면 안 되지 않나요?" 이번엔 관리팀장이 내 동기를 거든다.

"종교는 워낙 민감한 사안이니까 그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 사람이 그것을 중요시 여기는데 그냥 놔두면 안 되나요? 왜 굳이 못하게 해요? 그 사람이 회사 일을 성실하게 한다면 말이죠. 일은 제대로 안 하면서 종교만 고집하면 그건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만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는 거예요. 문제가 있는 사람한테는 뭐라 안 하고 뭐라 하는 사람에게 뭐라 하면 좀 뭐 하지 않아요?" 관리팀장은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하긴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3명이 뭉치면 한 명 바보 만들기 쉽지. 나도 그때 참 힘들었다." 지난 설움이 떠올랐는지, 동기가 내 말에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야. 배려, 존중, 공감 같은 거 말이야. 특히나 우리 같은 보직자는 그것들이 필요해. 우리가 어느 누구를 어떤 이유든 못마땅해 하면 걔는 특별한 재주가 없는 한 팀원들에게도 따돌림받기 쉽거든. 우리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됐지만 내 맘에 안 든다고 아랫사람을 괴롭히는 그런 나쁜 꼰대는 되면 안 되잖아."

술 한두 잔이 더 들어가자 우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이 당했던 억울한 일화를 늘어 놓았고, 결국 이것 한 가지에는 동의했다.

"나쁜 꼰대는 되지 말자. 그동안은 팀 내 왕따를 만들거나 빈정거리는 행동이 문제가 안 됐지만 분명히 조만간 사회적 이슈가 될 거다. 우리가 어렸을 적 어쩔 수 없다고 여겼던 학교내 왕따 문제가 현재 온 나라를 들썩거리게 하는 것처럼. 조심하자."

실제로 이 술자리가 있은 지 5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에 따르면 괴롭힘을 당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 직원의 부모님, 배우자 등 누구나 고발할 수 있으며, 고발 당한 사람은 사안에 따라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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