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2함대 황당 사건과 해군 총장의 행동거지…스러지는 軍 사기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9.07.13 10:04 수정 2019.07.13 10:1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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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가 병사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듣고도 믿지 못할 일이 해군 2함대에서 벌어졌습니다. 지난 4일 밤 2함대에 나타난 거동 수상자를 찾지 못하자, 한 장교가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하기 위해 아무 죄 없는 병사에게 거짓 자수를 시켰다 발각된 겁니다.

2함대를 정밀 수색했지만, 북한과 관련된 대공 용의점은 어제까지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2함대의 장병 또는 군무원이 '밤마실'을 다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해군은 봤습니다. 다만 거동 수상자를 못 찾으면 사건 종결이 안 되니 한 장교가 황당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실행에 옮긴 겁니다. 이 사건의 본질은 경계 실패가 아니라 얼빠진 장교의 일탈입니다.

그런데 어제(12일) 심승섭 해군 참모총장이 예고도 없이 국방부 기자실로 찾아와서 백그라운드(Background) 브리핑을 자청했습니다. 수사 책임자, 공보 책임자가 나설 자리에 참모총장이 멋쩍게 앉았습니다.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기자실에 투입된 분위기가 역력했습니다. 기자들 질문에 제대로 답도 못 해 참모총장이라는 자리의 무게와 명예가 무색해졌습니다.

이번 사건을 처음으로 다룬 바른미래당 김중로 의원은 박한기 합참의장과 그제(11일) 전화 통화한 음성 녹취 파일을 공개했습니다. 정확한 사실관계의 확인을 위해 주요 직위자와의 통화를 녹음할 수는 있지만 녹취 파일 공개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녹취 내용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경우였다면 몰라도 현역 서열 1위를 욕보이는 데만 기여했다면 녹취 파일 공개는 과했습니다. 이래저래 군의 중심이 흔들리고 명예만 흠집 났습니다.

● 해군 참모총장의 이례적 대언론 설명

해군은 어제 오전 10시 10분쯤 국방부 기자실에서 2함대 사건을 설명했습니다. 해군 공보팀장과 국방부 부대변인이 함께 나서 기자들에게 사안을 조목조목 풀어냈습니다. 2함대 탄약고 주변에 거동 수상자가 나타난 지난 4일 밤 10시부터 병사의 거짓 자수가 들통 난 지난 9일, 그리고 어제 오전 국방부의 조치까지 시간대별로 발생한 일들이 상세히 공개됐습니다.

직후 김중로 의원은 국회에서 별도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건을 국회 기자들에게 알렸습니다. 비록 병사에게 책임을 떠넘긴 장교의 일탈이라는 낯 뜨거운 사건이고, 해군 스스로 선제적으로 밝히지 못했지만 뒤늦게라도 전모가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오후 3시 반쯤 국방부 기자실에 심승섭 해군 참모총장이 나타났습니다. 직접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기자실을 찾았습니다. 전례 없는 일입니다. 사건을 설명하겠다고 하니 기자들은 질문했고 심 총장은 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장교에 대한 직무 배제가 왜 지금 이뤄졌나?", "왜 장관한테 보고를 못 했나?" 등 핵심적인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했습니다. 준비도 없이 기자실로 등 떠밀려 보내진 정황이 여실히 나타났습니다. 군의 한 관계자는 "참모총장이 장관과 만난 뒤 계획에 없던 언론 브리핑에 나섰다"며 "총장의 직접 설명을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는데 채택되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해군의 대표는 해군 참모총장입니다. 해군이 잘못하면 총장이 책임져야 합니다. 하지만 해군 참모총장은 예하 부대를 지휘 통솔하는 무거운 임무도 맡고 있습니다. 군령권은 없다지만 예하 부대의 전투태세를 유지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합니다.

이 정도 불미스러운 사건은 수사 책임자, 공보 책임자에게 맡기고 해군 최고선임 장교인 참모총장은 더 중요한 임무에 충실했어야 했던 건 아닌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잘못은 일벌백계하되 나머지 부하들에게는 "나를 믿고 전투 준비에 한 치도 흔들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줘야 하는데 천하 졸장의 모습만 보여줬습니다.

해군의 대표이자 상징인 심승섭 참모총장의 어제 행동은 헌신하고 있는 대다수 부하들의 사기를 꺾었습니다. 누가 시켰는지 대충 짐작은 가는데, 부적절한 판단과 지시로 보입니다. 잘못된 지시를 속수무책 따른 심 총장도 참 못났습니다.
해군 2함대 사건을 설명하는 김중로 의원● 합참의장 녹취 공개 적절했나

김중로 의원은 그제 녹음한 박한기 합참의장과 전화 통화 녹취 파일 중 일부를 편집해 공개했습니다. 녹취 파일에서 박 의장은 "2함대 말입니까? (저는 보고를) 못 받았습니다", "근데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아 예 저는 처음 듣는 말씀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박 의장은 지난 4일 2함대 탄약고 주변에 거동 수상자가 나타났고 대공 용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보고는 일찍이 받았지만, 병사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운 장교의 일탈 사건은 보고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김중로 의원의 일탈 사건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한 겁니다.

합참의장은 육해공군 해병대의 작전을 책임지는 자리여서 해군 장교의 일탈 사건은 박 의장의 소관 업무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런 황당한 사건에 앞서 북한군 동향 파악하고, 작전계획 손보고, 경계 작전과 훈련의 군기를 다잡는 데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야 정상입니다.

합참의장의 임무 우선순위는 예비역 육군 장성인 김중로 의원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군 문외한도 아닌 예비역 장성 출신 국회의원이 일탈 사건 몰랐다고 합참의장 탓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처사입니다. 게다가 녹취 파일까지 공개한 건 대중의 반군 정서에 편승해 최소한의 상도의마저 저버린 행동입니다.

총선 시즌 다가오니 공천과 재선 노리고 본인 이름 알리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군의 신뢰와 명예, 사기는 한낱 국회의원 한 명의 미래보다 훨씬 무겁고 소중합니다. 군의 명예와 신뢰, 사기가 군 수뇌부의 오판과 무능, 팍팍한 바깥 인심 탓에 멍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