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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홍콩의 분노와 충돌, 반전…시민 사회의 선택은?

[취재파일] 홍콩의 분노와 충돌, 반전…시민 사회의 선택은?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사태가 7월 1일 입법회 점거 시위 이후 6월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 ▶ [취재파일] 홍콩의 긴장과 불안, 절박함은 진행형이다) 시위를 지지해왔던 홍콩 시민 사회 내부에서도 입법회 점거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 나왔고, 수세에 몰렸던 홍콩 정부와 중국 중앙 정부는 '폭력 시위' 엄정 처벌 방침 아래 시위대 체포에 나서며 연일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송환법 반대 시위를 이끌었던 야권과 재야단체는 당혹해하며 여론을 다시 반전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시위대는 왜 입법회 폭력 점거에 나섰을까요? 왜 홍콩 경찰은 시위대가 진입하도록 놔두었을까요? 홍콩 주권 반환 22주년인 7월 1일 당시 현장에서 목격했던 결정적인 순간을 되짚어봤습니다.

● "우리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친중의 세력화

6월 30일 오후 취재진은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국회 격인 입법회로 향했습니다. 멀리서 입법회로 통하는 육교를 가득 매운 사람들을 발견했습니다. 일견 '송환법 반대' 사전집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참가자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대부분 중년 이상이었습니다. "패권 민주를 반대하라!", "치안을 지키는 경찰을 지지하자!"라고 적힌 피켓을 보고서야, 친정부·친중 집회인 것을 알았습니다. 입법회 옆 공원은 수만 명의 인파로 가득 찼습니다. 참가자들은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는 구호를 외쳤고, 커다란 중국 오성홍기도 눈에 띄었습니다.
수만 명의 중장년이 주축이 된 '홍콩 경찰 지지' 집회. 홍콩 가수 알란 탐(譚詠麟)과 배우 토니 렁(양가휘·梁家煇)도 참가했다.
친정부 집회 참가자들은 입법회 정문 앞에 있던 '송환법 반대' 시위대에게 야유를 보냈습니다. 경찰이 중간에서 서로의 접근을 막아 큰 불상사는 없었지만 물병이 날아들기도 했습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본토에서 넘어온 주민은 100만 명이 넘습니다. 740만 홍콩 인구를 감안하면 이미 적지 않은 수준입니다. 이들과 홍콩 친중 보수층이 본격적으로 세력화한다면 송환법 사태의 양상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입법회 앞에 농성 중인 '송환법 반대' 시위대와 '홍콩 경찰 지지' 집회 참가자들이 대치하고 있다. 한 시위자가 든 플래카드엔 "총을 쏘지 말라. 우리는 홍콩 시민이다."라고 적혀 있다.
● 배를 타고 나타난 캐리 람

홍콩 주권 반환 22주년 당일. 오전 8시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기념식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기념식은 매년 컨벤션센터 바로 앞에 있는 국기게양대에서 열려왔지만, 이날 홍콩 정부는 실내에서 행사를 열었습니다. 날씨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시위로 행사가 파행을 겪을 것을 우려한 게 더 큰 이유란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취재진은 여러 차례 신분증 검사를 거치고 국기게양대에 도착했습니다. 얼마 뒤 페리 선 한 척이 도착했습니다. 제복을 입은 고위급 인사들 뒤에 홍콩 행정 수반 캐리 람 장관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시위대를 피해 차가 아닌 배로 행사장에 온 것입니다. 캐리 람 장관은 지난달 18일 홍콩 시민에게 공개 사과한 이후 그동안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습니다.
배에서 내리는 캐리 람 장관. 지난달 16일 200만 '검은 대행진' 시위 이후 캐리 람 장관이 얼마나 수세에 몰려 있는지 보여주는 듯하다. (촬영: 김남성 영상취재 기자)
행사장에서도 캐리 람 장관은 난감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축하 연설 도중 야당인 민주당의 헬레나 웡 의원이 '송환법 철페' '캐리 람 사퇴'를 외친 것입니다. 행사장 밖에서 만난 웡 의원은 취재진에게 "캐리 람 장관은 민의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홍콩 주권 반환 기념식장에서 야권 헬레나 웡 의원이 보안요원들에게 끌려 나가고 있다. (촬영 : 김남성 영상취재 기자)
캐리 람 장관이 배로 행사장에 도착하는 시간, 홍콩 컨벤션센터 좌측 진출입로에는 수백 명의 '송환법 반대' 시위대가 모였습니다. 대부분 젊은 학생들이었습니다. 8시 행사 시간이 다가오자 시위대는 진입을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위대는 우산과 바리케이드를 앞세웠고, 홍콩 경찰은 곤봉과 방패, 그리고 최루액으로 진압에 나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와 경찰에 체포되는 시위자들이 생겼습니다. 충돌 이후 시위대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격해졌습니다. (앞서 송환법 사태 이후 두 명의 홍콩 시민이 송환법 반대를 외치며 투신한 일도 젊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입법회를 포위한 시위대는 입법회 국기게양대에 있던 중국 오성홍기를 내리고 검은색의 홍콩 기를 내걸었습니다.
홍콩 주권반환 기념식장으로 들어가려는 시위대와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이 충돌하고 있다.
● 55만 '평화' 행진과 '일촉즉발' 입법회

입법회에서 4km 떨어진 빅토리아 파크에서는 오후 2시 반부터 '7·1 대행진'이 시작됐습니다. 지난달 16일 200만 '검은 대행진'과 마찬가지로 평화롭게 진행됐지만 규모는 확연히 적었습니다. (이날 밤 행진을 기획한 시민단체는 55만 명이 참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사흘 연휴와 더운 날씨, 그리고 그동안 계속된 시위에 심적으로 지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였습니다.
완차이역에서 찍은 행진 모습. 주최측 추산 55만 명이 행진에 참여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달랐던 모습은 참가자 상당수가 행진을 끝내고 입법회 앞으로 가지 않았단 점입니다. 시위대 일부가 행진 중간에서 "입법회로 가자"고 독려할 정도였습니다. 행진 선두가 입법회에 도착할 무렵인 오후 3시 30분, 일부 강경 시위대가 철제 수레를 이용해 입법회 유리문을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유리문 절반이 부서졌습니다. 입법회 안에 무장한 경찰들이 대응하면서, 시위대는 진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소식은 SNS와 언론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됐습니다. 오전부터 이어진 입법부의 일촉즉발 상황이 많은 시민들을 주저하게 만든 요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홍콩 야당 의원들이 일부 강경 시위대가 철제 수레로 입법회 유리문을 부수려는 것을 막고 있다.
● 입법회에서 경찰은 왜 철수했을까?

오후 9시 입법회 안을 지키고 있던 경찰이 건물에서 빠져나갔습니다. 갑작스러운 경찰의 철수 뒤 일부 강경 시위대들이 부서진 유리문으로 입법회에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홍콩 정부는 충돌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 밝혔지만, 시위대 진입을 유도하기 위해 덫을 놓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건물 전체가 수백 명의 시위대에 점령됐습니다.

저희 취재진은 시위대가 점령한 입법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경보기 소리가 계속 울리는 1층은 출입 시설이나 CCTV, 조명 등이 부서져 있었고 사무실도 엎어진 책상과 서류들로 어지럽혀 있었습니다. 건물 곳곳에는 '송환법 반대',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 '캐리 람 사퇴' 등의 구호가 검정 스프레이로 쓰여 있었습니다. 크게 예상치 못 했던 입법회 내부 점거 성공에 그동안 정부에 대해 쌓였던 젊은 학생들의 분노가 과격하게 표출된 듯 했습니다. 폭력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시위대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물품이니 보호해야한다"며 시위대가 표시해 놓은 곳은 피해가 없었습니다. 또 홍콩 야권 의원들도 입법회 안에서 시위대의 자제를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입법회 기둥에 검정 스프레이로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라고 쓰여 있다.
본회의장 안으로 들어가니 입법회 문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글자는 지워졌고, 영국 식민지 시절 홍콩 기가 단상 위에 있었습니다. '일국양제'를 허물고 있는 중국의 통치를 부정하고 영국이 보장했던 자치를 요구한다는 의미로 해석됐습니다. 본회의장 안에는 시위대 이십 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대학생 또는 고등학생처럼 보였습니다. 그중 한 명을 인터뷰했습니다. 20대라고만 말한 그는 "홍콩의 자유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시위의 자유 등 우리가 누려왔던 것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운동(movement)를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 이건 폭동(riot)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점거 다음 계획을 묻는 질문에 "우리는 캐리 람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행동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는 더 압박할 것입니다."라고 말해 입법회 점거와 기물 파손이 어떻게 비치고 이용될 지에 대해서는 예상을 못한 것 같았습니다.
검은 마스크와 물안경으로 얼굴을 가린 입법회 점거 시위자.
● 최루탄 진압 이후 다시 나타난 캐리 람

밤 11시쯤 입법회 안에 있던 한 시위자는 저에게 어느 나라 취재진이냐고 묻더니 곧 경찰이 들이닥칠 테니 피하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자정을 기해 입법회로 향하는 주요 도로에서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섰습니다. 시위대가 크게 저항하지 않고 뒤로 후퇴하면서 유혈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입법회 안에 있는 강경 시위대도 대부분 경찰 진압 직전 나왔습니다. 일부 시위자가 끝까지 남겠다고 버텼지만 다른 시위대들이 강제로 데려 나가는 모습도 목격됐습니다.
홍콩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 진압에 나서고 있다.
새벽 4시 캐리 람 장관이 경찰청장과 함께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캐리 람 장관은 폭력 시위를 비난하면서 시위 주동자들을 끝까지 색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송환법은 내년에 심의 기간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폐기될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그동안 송환법 철회 요구에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던 캐리 람 장관이 입법회 시위 직후 이 발언을 한 것은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시위대와 시민 사회를 분리하려는 의도가 섞인 것으로 읽혔습니다.
캐리 람 장관이 새벽 4시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입법회 점거 시위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 입법회 점거 사태 이후 홍콩 시민 사회의 선택은?

입법회 점거 당일 현장을 보던 한 홍콩 시민은 "점거에 나선 학생들은 자신들의 희생을 각오했겠지만, 정부에게 반격의 빌미를 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우려는 지금 현실이 됐습니다. 홍콩 야권과 재야단체들은 소수 강경 시위대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홍콩 정부와 중국 중앙 정부는 연일 강공에 나서며 공안정국을 조성하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시위대 수십 명이 체포됐고 첫 기소자도 나왔습니다. 캐리 람 장관은 또 시위의 주축인 학생들에게 대화를 제의하면서 '송환법 반대' 강경파와 온건파를 분열시키는 시도도 하고 있습니다.

5년 전 홍콩 행정수반 직선제를 요구했던 우산혁명은 79일이나 계속됐지만, 홍콩 정부의 권위적인 대응과 지도부의 분열, 경제 악화를 우려한 여론 등으로 결국 실패했습니다. 일부에선 우산혁명의 좌절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옵니다. 그러나, 홍콩 주권 반환 이후 무너지는 일국양제에 대한 분노와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어느 때보다 큰 상황입니다. 입법회 점거 사태 이후 다시 불꽃을 되살리려는 시위대, 이를 막으려는 정부와의 싸움 속에 홍콩 시민 사회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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