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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울교통공사는 왜 '미담 취재'를 꺼렸을까?

시민 살린 지하철 보안관이 '대기실'로 간 사연

[취재파일] 서울교통공사는 왜 '미담 취재'를 꺼렸을까?
● 소중한 생명 살려낸 지하철 보안관

지난 2월 23일, 주말 근무 중에 사건사고를 확인하던 중 서울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해당 지역 소방서에 전화를 걸어 관련 사실을 확인했는데, 구급대원으로부터 흥미로운 내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때 이미 맥박이 돌아온 상태였습니다. 보안관님이 큰 일 하신 거죠."

처음 취재는 그 통화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쓰러졌던 심정지 환자 가족과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지하철 보안관 정재민 씨와 연락이 닿았고, 인터뷰 등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정 보안관이 한 생명을 살려낸 구파발역에서 당시 상황 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듣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역에 진입해 정 보안관을 만났을 때부터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습니다.
▲ SBS 8뉴스 (2019.03.31)
● 의아했던 역 관계자들의 경계심

일반적으로, 미담(美談) 사례 취재는 기관이나 부서의 협조를 구하기가 비교적 쉬운 편입니다. 해당 기관 입장에선 조직의 공적을 홍보할 수 있는 나름의 좋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문전박대당하기 십상인 통상의 취재 상황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정 보안관의 사례도 전형적인 미담 사례였습니다. 근무 시간 중에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보안관이, 의사나 119 구급대원이 놀랄 만큼 민첩하고 능동적인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소중한 생명을 살려낸 훌륭한 사례. 구파발역 측이든 공사 측이든 굳이 취재를 꺼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역 관계자들은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취재진에게 다가왔습니다. 취재 방향을 계속 캐묻는가 하면, 인터뷰 내내 취재진 근처를 맴돌며 뭔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정 보안관이 취재진에게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취재 내용과 보도 시점을 묻는 서울교통공사 측 연락도 수차례 왔습니다. 이러한 반응이 의아했지만, 언론 취재에 다소 예민한 역이겠거니 하고 일단은 넘어갔습니다.

▶ [8뉴스 리포트] 119 도착 전 승객 살린 지하철 보안관…의사도 놀랐다 (2019.03.31)

그리고 며칠 뒤, 보도에 앞서 정 보안관의 근무지·소속 등 제반 사항을 다시 한번 확인하던 중에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지하철 보안관의 업무는 열차와 역사 내 범죄 예방과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막는 것. 맡고 있는 지역의 열차와 역사를 계속 순찰하고, 신고 접수를 받으면 현장으로 움직이는 등 근무 지역이 유동적입니다. 그런데, 정 보안관의 근무지가 올해 1월 4일부터 '구파발역 대기실'로 변경된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교통공사 취재파일 관련
왜 근무지가 '대기실'로 되어있냐는 질문에 정 보안관은 머쓱해하며 대답했습니다.

"열심히 일했더니 민원이 많이 들어와서… 그만 돌아다니라고 그런 거 아닐까요? 근데 이거 이야기하면 회사에서 싫어할텐데"

두 번째 취재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 '과다한 민원발생…대기실 근무"

여러 지하철 보안관들을 만났습니다. '대기실 발령'에 대한 공통된 의견은 이 사례가 '굉장히 이례적인 일'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보안관 업무 특성상 현장에서 시비도 많이 붙고 그만큼 민원이 많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그 양이 많다는 이유로 대기실 발령받는 경우는 처음 본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처럼 민원 발생이 많다고 근무지가 '대기실'로 바뀐 경우는 정 보안관의 사례가 유일했습니다. 정 보안관은 대기실 근무 지시에 반발했지만, 인사권자의 명령이라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미담 사례 취재 당시 구파발역 관계자들과 서울교통공사 측이 보였던 경계심은 대기실로 발령낸 게 언론에 알려져 문제되진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취재가 시작되자, 서울교통공사는 '대기실 발령'이 특수한 경우임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비록 문제의 여지는 있지만 보안관 본인의 동의를 받았고 쏟아지는 민원으로부터 자사 직원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근무지로 지정된 '대기실'이라는 명칭을 가지고는 있지만 일반적인 '역무실'이나 '사무실'의 개념이고 콜센터 상황 접수나 처리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확인한 '사무실' 내부의 모습은 공사 측의 설명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대기실이든 사무실이든 어떠한 명패도 붙어있지 않고, 내부 역시 전형적인 휴게실의 모습이지 사무실의 형태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 서울교통공사가 '사무실'이라고 밝힌 3호선 구파발역 대기실 내부
지하철 보안관들을 취재하면서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는 "민원에 시달리고 심하면 소송에 휘말리니 적극적 단속은 피하는 분위기" 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이용객 900만 명에 달하는 서울 지하철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자긍심만으로 업무에 임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민원이 많이 들어옵니다. 보안관들에게 단속을 당한 이동상인이 민원을 넣는 게 더 많죠. 열 받으니까. 역에서 나가서 민원 전화를 걸면 구분이 안되잖아요? 민원 접수하는 입장에선 그냥 승객이거든요."

"물리고 할퀴고 따귀 맞고 그런 경우는 비일비재하죠. 특히 야간에 취객 상대하다보면…. 그렇다고 저희들이 적극적으로 방어를 하면 그 방어한 걸로 상대방은 되레 소송을 걸어요."
서울교통공사 취재파일 관련
'보안관' 의 역할은 직함 그대로 안전을 책임지고 범죄를 예방하는 거지만, 사법권도 없는데다가 시 차원의 조례 등으로 업무 범위 등이 규정된 것도 아니어서 말만 보안관이지 일반 역무원과 다를 게 없기 때문입니다. 공사 차원의 법적 지원책도 허술한데, 단속에 불만을 품은 민원이 많이 들어오면 대기실로 발령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 이런 상황 속에선 도입 초기 취지와 같은 보안관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하긴 어려우니 서울시나 서울교통공사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이번 보도의 이유였습니다.

▶ [8뉴스 리포트] 승객 살린 지하철 보안관, '대기실 발령' 받은 이유는 (2019.07.01)

● '대기실 발령'이 동의 하에 이뤄졌다는 서울시

서울시는 SBS 보도 이후 하루 만에 관련 내용에 대한 설명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지하철 보안관들이 느끼는 무력감이나 업무 권한 부여 등에 대한 논의 계획이나 대책 마련에 대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대신,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자료를 통해 '대기실 발령'은 정 보안관의 동의 하에 이뤄진 조치였다고 밝혔습니다. 또, 지하철 보안관들의 애로사항을 잘 인지하고 있고, 이미 이에 대한 적절한 지원책이 마련되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교통공사 취재파일 관련
하지만, 서울교통공사가 '대기실 발령' 을 내면서 정 보안관에게 받았다는 '동의'는 인사 발령 공문 하단에 적혀 있는 '공람 확인' 자필 서명이 전부였습니다. 별도의 동의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정 보안관은 공문 하단에 이뤄진 서명은 내용 '확인'의 의미였지 인사 조치에 대한 '동의'의 의미는 아니었다고 밝혔습니다. 백 번 양보해서 해당 서명이 동의의 의미라고 하더라도, 인사권자가 공문으로 내린 인사 조치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라며, 거부할 수 있는 직원이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습니다. 공사 측의 변명이 궁색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이윱니다.

2011년 처음 도입된 이래, 현재 활동하고 있는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보안관은 총 284명.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변명으로 일관하기보다는 현재 상황을 개선할 구체적 계획 수립을 우선시할 때, 지하철 보안관은 비로소 초기 도입 취지를 되찾고 지하철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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