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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019 IRE 참관기 ① - '천조국'의 기자들은 무엇이 다를까?

'사람'이 주인공인 '스토리'를 쓴다

12시간이 넘는 비행이 끝났다. 활짝 열린 비행기 문이 반갑다. 문을 나서 공항과 비행기를 연결해 주는 다리를 빨리 건너고 싶어진다. 건너기 시작하자 오랜 시간 짓눌렸던 엉덩이에서 뿜어져 나오던 통증도 조금씩 사라져 갔다. 독특한 냄새와 함께 나를 둘러싼 생경한 공기가 미국임을 느끼게 했다.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해 공항을 걷다 보니 로봇 같은 미국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사가 귀찮다는 표정에 느릿한 행동과 친절함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 같은, 항상 불편한 느낌을 주는 그에게 당당하게 외치며 보이지 않는 미국 국경을 자신 있게 넘었다.

"I will visit IRE conference. (IRE 컨퍼런스 왔습니다.)"
[취재파일] 2019 IRE 참관기 ① - '천조국'의 기자들은 우리랑 달라?
IRE 컨퍼런스는 탐사보도 좀 한다는 '탐사보도장이'들이 모이는 일종의 교류의 장이다. (IRE는 Investigative Reporters & Editors의 약자로, '탐사보도 기자 및 편집자들'이라는 뜻이다.) 탐사보도라는 주제로 전 세계에 있는 기자, PD 등이 모여 서로 취재 노하우도 공유하고, 좋은 보도에 대해서는 수상도 한다. IRE는 올해 24개국에서 약 2천여 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2019년 IRE는 미국 휴스턴에 열렸다. 지난 6월 13일부터 나흘간 열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마련한 탐사보도 디플로마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국 기자들도 2019년 IRE에 참여했다.
[취재파일] 2019 IRE 참관기 ① - '천조국'의 기자들은 우리랑 달라?
IRE 컨퍼런스에는 하루에 수십 개의 세션(session)이 있다.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세션을 선택해 듣는 방식으로 컨퍼런스는 진행된다. 우리에게도 세션을 선택해야 하는 과제가 떨어졌다. 뭘 들을까 한참을 세션의 제목과 내용을 보다 보니, 주제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주제를 따라가니 최근 미국 탐사보도의 트렌드가 보였다.

'트럼프'와 '이민'이었다.

2019년 IRE 컨퍼런스에서는 '이민 분과(Immigration track)'가 있었다. 매일 이민을 주제로 하는 세션이 오전 오후에 열렸다. 이 주제에 관심이 많았고, 그만큼 탐사보도 주제로 많이 다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민은 소수자의 이야기이자 약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에서는 트럼프 정부의 반 이민정책이 이런 이미지를 더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었다. 순간 '제주 예멘 난민' 이슈가 떠올랐다.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에 대해 '인권'이라는 가치에 치중한 보도도 있었지만, 제주 예멘 난민들의 이야기는 '혐오'로 소비되기도 했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과 '단일민족' 국가인 우리나라가 이민을 바라보는 시각은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이민이라는 주제는 분명 우리와 다르게 소비되고 있었다. 미국 내에서도 일부는 이민자들에 대해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존재,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런 심리를 적극 활용해 반 이민정책을 밀어붙이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미국에서의 이민은 주로 인권 문제로 다뤄지고 있는 듯 보였다. 궁금했다. 이민에 대해 우리보다 우호적인 환경적인 요인 이외에도 다른 이유가 분명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이민을 주제로 하는 세션을 들으면서 호기심을 풀어줄 수 있는 하나의 팁을 얻을 수 있었다. 기사의 형태였다. 전달 방식의 차이였다. IRE에서 발표된 이민과 관련된 탐사보도 사례들은 대부분 트럼프의 반 이민 정책으로 갈라지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미국 탐사보도장이들은 '사람'에 집중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사라는 형태로 전달했다. 그들은 이민자들의 언어(예를 들어 스페인어)로 접근했고,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아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전달했다. 이런 전달 방식은 보는 이들에게 머리가 아닌 마음을 움직이기에 효과적이었다. 이런 탐사보도들은 핍박받는 이민자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켰고, 인권의 문제로 확대시켰다. 미국 탐사보도장이들은 이런 방식으로 이민을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 문제로 접근하고 있었다.
지난달 13일(현지시간)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IRE(미국 탐사보도협회·Investigative Reporters & Editors) 2019 콘퍼런스에서 트럼프 정부의 반 이민정책을 심층 보도한 기자들이 취재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뉴욕타임스의 카이틀린 딕컬슨, 탐사보도 매체 리빌의 아우라 보가도, 휴스턴 클로니클의 로미 클리엘.
흔히 뉴스를 전하는 기사에는 새로운 사실(fact)가 담겨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사실보다는 이야기(story)가 중심인 기사에 대해서는 뉴스가 아니라는 인식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자들은 조금이라도 새로운 사실을 찾기 위해 쫓아다닌다. 그러다 보니, 우리 기사에는 '사람'이 없다. 사건 당사자들의 속 깊은 이야기가 없다. 그들을 바라보는 공공기관의 정책만 있고,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만 담겨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사실이 없는 기사를 독자나 시청자들이 보지 않을 거란 두려움이 있다. 보지 않는 기사는 쓸 이유도, 쓰고 싶어도 회사에서 쓸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일부 신문에서는 '사람 이야기'가 있는 기사를 쓰고 있지만, 확대되지는 않고 명맥만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 쓰는 이도 보는 이도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 소속 이장욱 기자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마련한 탐사보도 디플로마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국 기자를 대상으로 탐사보도 전달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9.6.21.뉴욕 타임즈 본사
미국 방문 중 뉴욕 타임스에서 26년 넘게 일하고 있는 한국인 사진 기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이장욱 기자다. 최근에는 뉴욕 타임스의 이민 관련 탐사보도의 사진과 영상을 담당했다. 이 기자는 이민자들의 시선에서 국경을 넘는 모습 등을 재연하는 영상물로 기사의 몰입도를 높였다. 이 기자가 말하는 탐사보도의 전달 방식은 숙제로 남았다.

"탐사보도는 단순히 뉴스, 새로운 소식이 아니에요. 누군가의 경험이에요."

2019 IRE 컨퍼런스의 또 하나의 키워드인 '트럼프'에 대한 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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