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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왜 스티브 잡스처럼 못하냐고요? 배운 적 없는데…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인-잇] 왜 스티브 잡스처럼 못하냐고요? 배운 적 없는데…
지난 글에서 스무 살부터 취업 준비를 하는 것이 '조기 준비'가 아닌 당연해지는 시대의 흐름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분명히 힘든 점이 있겠지요.

저는 이렇게 예측을 했었습니다. '학문에 대한 경험이나 탐색보다, 바로 취업 시장으로 뛰어들다 보면 진로에 대한 숙고의 시간이 부족한 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당사자들을 만나 상담해보니, 생각 외의 부분을 더 많이 토로하더군요. 이른바 '변신 시간'이 너무 짧다는 점이었습니다. 한 친구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아니, 그렇잖아요. 거의 고등학교 때까지는 수녀원 생활 같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이것도 안 해야 되고, 이것도 하면 안 되고. 정해진 룰을 잘 지키는 게 모범생인 거잖아요. 튀는 행동 하면 제재를 받고. 근데 취업할 때 보면 창의성을 제일 본다고 한단 말이에요. 뭐라고 해야 하지... 나는 열아홉 살 때까지는 수녀원 생활을 했는데, 스무 살이 되자마자 넌 왜 스티브 잡스가 아니냐고 질문을 받는 느낌. 아 잠시만요, 약간 이런 '짤'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 친구가 보여준 '짤'은 유명 개그맨 조세호 씨의 인기 유행어,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였습니다. 한 토크쇼에서 가수 김흥국 씨가 조세호 씨를 이렇게 나무란 적이 있지요. "안재욱 결혼식엔 왜 안 왔어?" 그리고 조세호 씨는 말합니다. "아니, 그분을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조세호 씨의 표정은 황당 그 자체였지요.

그녀는 이런 기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창의를 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해요?"라는 거지요. 특히 자소서에 반드시 들어가는 '창의적 아이디어로 도전한 경험'이라는 항목에서 가장 어이가 '털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친구의 말은 개인적인 느낌일 뿐일까요? 스무 살부터 잡스가 되기를 요구받는 기분이라고 한다면 그 요구를 하는 주체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국내 10대 기업의 인재상을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대략 기업 인재상은 3~5가지 가치를 열거합니다. 그렇다면 총 30~50개의 키워드가 도출될 텐데요, '협력', '글로벌', '혁신', '도전', '창의', '열정', '도덕성', '화합' 등 10여 개 안에서 대부분 나왔습니다. 그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이지요.

그중에서도 어떤 키워드가 가장 많았는지 살펴봤습니다. 무엇이 가장 많이 중복되었을까요? 10대 기업 중 7곳에서 채택하고 있는 1위의 키워드는 '창의' 또는 '창조'였습니다. 2위는 '도전'(5개 기업), '열정'(5개 기업)이었지요.

상위 3개 키워드를 종합해보면 이러합니다. 창의적인 시선으로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분야를 발견하고,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사람. 일반적으로 창업가나 사회 혁신가에게서 주로 발견되는 역량입니다. 공교육 프로그램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이기도 하고요.

도표를 만들다가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우리나라 10대 기업들은 중공업이나 기술산업 같이 특정 업종이 차지하는 경향이 있으니, 20대 기업으로 그 범위를 확대해 보면 조금 다를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20대 기업으로 확대할 경우 산업 분야는 문화, 소비재, 금융, 건설업 등 다양해졌지만 '창의'는 10곳, '도전'은 10곳, '열정'은 9곳으로 결과는 거의 같았지요. '열정'이나 '창의'라는 단어를 아예 쓰지 않은 기업은 D그룹과 B그룹, 단 2곳뿐이었습니다. 30대, 50대 기업으로 확대해서 더 찾아보기도 했지만, 1~3위의 키워드는 여전히 '창의'에 기반한 것들이라는 점엔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공교육, 특히 인성교육에서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들은 어떨까요? 규범이나 정도를 지키거나, 협력 또는 화합하는 가치들은 5~6위권으로 나타났습니다. 대략 인재상이 3개에서 5개 선이니,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비유하자면 '데뷔조'에도 간당간당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기업에서 '창의'나 '혁신'을 요구하는 것은 비판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격변하는 기업 환경에서 조직이 구성원에게 요구할 수 있는 역량이지요. 실제로 입사 후 그 역량들을 충분히 발휘할 환경이냐 아니냐는 그 다음 문제이니까요.

하지만 기업이 점점 더 '창의'와 '도전'이 '융화'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흐름 속에서, 교육은 얼마나 '창의'를 핵심가치로 다루고 있는지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물론 학교는 취업 준비기관은 아니지요. 하지만 공교육 졸업 이후 구직으로 즉시 이행되는 지금의 사회상 속에서, 스무 살에게 '재빠른 변신'을 개인의 과제로만 남겨두는 건 너무 어려운 숙제를 주는 것일지 모릅니다. 청첩장도 받은 적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 결혼식에 혼자 찾아가는 것, 그 이상으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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