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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회사는 경쟁, 암투, 투쟁의 공간입니다"

김창규│입사 20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직장인 일기를 연재 중

[인-잇] "회사는 경쟁, 암투, 투쟁의 공간입니다"
'결국 꼰대' 6편: "회사는 경쟁, 암투, 투쟁의 공간입니다"

팀원의 요청으로 면담을 하는 것은 팀장 입장에서는 대부분 좋지 않은 것들이다. 개인사정으로 인한 업무조정, 사직, 전근 요청 등으로 이미 구축된 팀의 효율을 깨는 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들어줄 수는 없다. 팀원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것도 팀장의 업무이니 말이다.

"그만 울어요."

면담을 신청한 윤 사원의 눈물이 혹시나 악어의 눈물이지 않을까 의심했었는데 그것은 분명 아니었다. 정말 너무 억울해서 우는 눈물이었다. 곧 이성을 다시 찾았는지 울음을 그쳤지만, 면담실엔 어색함이 감돌았다. 나는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그렇게 마음이 약해서 어떻게 해요. 어쨌든 전근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난 모질게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위로하고 무마하는 건 올바른 처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근을 하려는 이유가, 다른 팀원들이 힘들게 해서 그렇다는 거잖아요. 맞죠? 그런데 팀원들이 왜 그럴까요?"

답을 하지 않았다.

"회사는 생활이 아니라 생존을 하는 곳이어서 그래요. 생존하는 곳! 그래서 회사가 겉보기에 조용하고 평화스럽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모든 구성원들이 자기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승진하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엄청난 경쟁, 암투, 투쟁을 이곳에서 벌인다고요. 이 사실은 전제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왜 팀원들이 윤 사원이 하는 언행에 건건이 시비 걸고 방해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저를 견제했다는 뜻인가요?"

"그렇죠. 너무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견제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아주 탁월한 업무실력으로, 어떤 사람은 대단한 사교력으로, 어떤 사람은 유머나 배려, 엄청난 노력 혹은 다른 무엇으로 그 견제를 무력화하거나 최소화하죠. 윤 사원에게는 그런 것이 뭐가 있죠?"

윤 사원은 골똘히 생각을 하는 것 같았지만 답변이 없었다.

"내가 보기엔 아직 없어요. 그렇다면 윤 사원이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요?"
"하지만 환경이 바뀌면 지금보다는 낫겠죠."

윤 사원은 냉랭한 목소리로 답변했다. 난 다시 응수했다.

"아닐 걸요. '돌아이' 보존의 법칙 들어봤죠. 어디서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있다고요. 그러니 환경, 주변 사람을 탓하지 말고 어떤 식으로든 그 힘듦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딴 곳에 가더라도 또 떠나야 할 거예요. 뜨내기 되는 거죠. 만약 윤 사원이 이 어려움을 이겨낸 이후 전근을 신청한다면 내가 적극 검토할게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윤 사원은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맞다는 듯 고개도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다짐했다는 듯이 우리 팀 일이 적성이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전근시켜 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난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지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꼰대처럼 주제넘게 훈계 아닌 훈계를 또 했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운 좋은 소수의 사람은 자신의 적성과 맞는 일을 하겠죠. 하지만 그 복 받은 사람들 중 99%도 금방 그 일에 질리고 그만하고 싶어 할걸요. 적성을 운운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생각일 수 있어요. 오히려 지금 하고 있는 내 일이 내 적성에 맞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정말로 살면서 좋은 것만 할 수는 없어요."

나는 윤 사원의 아버지도 삼촌도 아니지만 인생 선배로서 또 팀장으로서 그녀의 고충에 대해 진심을 다해 조언했다. 하지만 윤 사원은 다음날 인사팀에 전근 신청을 별도로 요청했고, 정말 백이 있어서인지 뭔지 며칠 뒤 다른 사업부로 이동했다.

윤 사원의 전근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팀원들에게 아무리 내가 정성을 다하고 좋은 말로 타일러도 그들은 절대 내 맘처럼 움직이지 않음을 절감해서 그렇다. 본인을 위해 업무 확장을 하라고 해도, 본인을 위해 불공평한 상황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라고 해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심지어는 좀 더 같이 있는 게 당신에게 더 낫다는 조언에는 아예 팀을 떠나 버렸다. 도대체 나는 뭘까?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덕(德)으로써 팀을 운영하려고 했던 것은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지 않았나를 말이다. (그렇게 좋은 인성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런데 덕으로 감화되어 나온 자율이 아니면 결국 法(법: 규정), 術(술: 인사), 勢(세: 위력)에서 나오는 통제, 강압, 강요로 팀을 운영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옛날 방식이다. 짜증이 밀려왔다.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내 믿음에 실금을 가게 했다.

이후 이 금은 더 선명해졌는데, 그것은 윤 사원 전근 후 새로 온 하 사원 환영 및 단합 목적으로 팀원들과 회식하면서 나왔던 대화 주제, "요즘 젊은 직원들은 어떤 유형을 '꼰대'라고 불러요?"에 대한 얘기를 하고 나서이다.

- 다음 편에 계속 -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인잇소개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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