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한국의 결혼식 이대로 괜찮나요?

에밀 라우센 | 한국인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15년째 한국서 살고 있는 덴마크 남자

SBS 뉴스

작성 2019.06.19 11:03 수정 2019.07.05 17:0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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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를 떠나 한국에 온 후 내 삶 전체를 영원히 변화시킨 소중한 경험들을 많이 했다. 그중 가장 특별하고 귀한 경험은 2012년 4월 14일 서울 명동에서 있었다. 아내 유민과의 결혼이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내 몸에서 새로운 종양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을 떠나 덴마크로 돌아가 투병을 해야 했고, 아내 유민이 혼자서 모든 결혼 준비를 해야 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는데 아내는 너무나 잘 감당해주었다.

그동안 나는 수술을 잘 마치고 건강을 회복하여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꽃 피는 4월, 명동의 한 예식장에서 많은 분들의 축복 속에 감동적인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7월에는 덴마크에서 소규모 결혼 파티도 열었다. 굉장히 의미 있었고 평생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글을 통해 '결혼식'에 대한 나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고 싶다. 물론 내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 것이기에, 나와 다른 경험과 생각을 가진 덴마크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 우리가 원했던 것은?

한국에서 치렀던 결혼식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 이유는 한국에 우리가 긴 시간 사용할 수 있는 예식장이 있었고, 멀리 덴마크에서 온 친지와 하객들을 위해 따로 저녁을 대접할 수 있는 훌륭한 공간도 찾았기 때문이다. 많은 돈은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다음 예식 때문에 급하게 진행되는 예식이 아니라 제약 없이 편안하게 결혼식을 진행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하객들이 우리 부부가 걸어갈 앞으로의 인생을 충분히 축복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두 분 목사님과 동시통역으로 2시 반에 시작된 예식은 4시 반에 끝났고 피로연은 7시까지 이어졌다.

그 하루가 함께 마음껏 대화하며 부부라는 이름으로 하나 된 우리 두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손님들은 지금까지 가본 어떤 결혼식과도 다른 색다른 경험이었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씀해주셨다.

● 누구를 초대할까?

이미 한국에서 결혼식을 했지만 우리 부모님은 나와 유민을 위해 특별하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떤 파티를 원하는지, 누구를 초대하고 싶은지 여러 번 물어보셨다. 덴마크에서는 정말 가까운 친지만 초대해서 소규모 결혼식을 진행하기 때문에, 가족이 함께 앉아서 누가 이 자리에 함께 했으면 좋을지 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결혼식 준비의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소규모 결혼식의 특성상 정말 가깝지 않으면 그 결혼식에 초대되기 어렵다. 그리고 모두 이해를 한다. 예를 들면 나와 아내는 내 사촌의 결혼식, 즉 작은 아버지의 아들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했고 부모님만 초대받았을 뿐이다.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리다 보면 이 사람들이 지금까지 우리의 삶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깨닫게 된다. 인생을 함께해온 사람들, 서로를 이미 잘 알지만 늘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관계 속에 있는 사람들만이 그 리스트에 오른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함께하여 결혼식은 더욱 특별하고 감동적인 시간이 된다.

● 어떻게 대접할까?

부모님과 덴마크 결혼 파티를 구상할 때 어머니는 "예버(사촌동생)에게 결혼 파티 때 예버네 밴드랑 같이 와서 재즈 음악을 연주해달라고 부탁해보면 어떨까?"라고 아이디어를 내셨다. 우리 모두는 좋아했다. 그의 음악이 우리 결혼 파티의 분위기와 어울렸고 무엇보다 나와 유민을 위한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즐겁게 낸 아이디어들로 파티 준비가 이루어졌다.

음식 준비도 마찬가지다. 초대를 할 때 각자 집에서 케이크를 하나씩 만들어 오도록 부탁했다. 그래서 결혼 파티에는 60개가 넘는 다양한 홈메이드 케이크가 놓여졌고, 배경으로는 라이브 재즈 음악이 흐르면서 파티의 분위기를 편안하고 따뜻하게 살렸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파티였다.

한국 결혼식과 다른 또 한 가지는 덴마크에는 축의금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랑과 신부가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 하객들은 대신 선물을 준비한다. 결혼식 전에 예비 신랑 신부가 미리 '위시 리스트'를 만들어서 보내준다. 그래도 때로는 다섯 개의 커피 메이커를 받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덴마크에서는 물건을 구입할 때 선물용인지 아닌지를 늘 묻고 교환 영수증을 함께 주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 부부의 가치를 드러내는 결혼식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결혼식, 때로는 알바까지 동원해서 하객 수를 채우는 결혼식, 이미 뿌려놓은 축의금을 수거하는 듯한 결혼식.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모습들은 한국인들이 느끼기에도 속상한 부분일 것이다. '어차피 다 똑같은데' 하며 결혼식 중간에 밥을 먹으러 갔다가 나중에 사진에 얼굴만 남기는 하객들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충격을 받기도 했다.

인생 단 한 번의 특별한 시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무리하게 결혼 예산을 잡는 것은 덴마크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덴마크에선 아무도 결혼식의 성대함으로 부모의 경제적 수준이나 집안을 평가하지 않는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에서도 허례허식을 줄이고 결혼식의 본질적 의미에 집중하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용기 있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젊은 세대와 그 뜻을 존중해주는 어르신들이 계시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신랑 신부들이 자신만의 가치가 드러나는 개성 있는 결혼식을 용기 있게 하는 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 손님들은 결혼식에 참석하고 나서 이 새로운 가정을 충분히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고, 신랑 신부는 충분히 축복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는 그런 결혼식 말이다.

※ 이 원고는 인-잇 편집팀의 윤문을 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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