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美 청소년 중독 빠뜨린 쥴(JUUL)…무방비로 노출된 한국 청소년

김수형 기자 sean@sbs.co.kr

작성 2019.06.16 07:22 수정 2019.06.16 09:5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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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청소년 흡연 비상사태' 만든 쥴(JUUL) "흡연 연령 올리자" 신문 광고
0615 쥴 신문 광고최근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미국 유력 일간지에 전자담배 회사 쥴랩스의 전면 광고가 거의 매일 실리고 있습니다. 유력지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렇게 대대적인 광고를 하려면 상당한 광고비를 집행해야 할 텐데, 마다치 않고 있습니다. 신문 광고라고 하면 제품의 특장점을 설명하는 게 보통인데, 전혀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청소년들의 전자담배 흡연에 반대한다', '아예 흡연 연령을 21세로 올리자'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전통적인 담배를 피우던 성인들의 흡연 대체재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광고는 뒤집어보면 미국 청소년들이 그만큼 쥴을 많이 피우고 있고, 제조사까지 이를 두고 볼 수 없는 수준이 됐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 흡연율 떨어졌지만…쥴 때문에 치솟는 美 청소년 전자담배 흡연 경험
0615 미 청소년 흡연률 cg미국에서 청소년들에 대한 흡연 억제 정책은 나름 성공을 거뒀습니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40% 가까운 흡연율 때문에 미국 사회는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하지만 이 수치는 꾸준히 떨어져 지난해는 7.6%까지 내려갔습니다. 문제는 전자담배 흡연율이었습니다.

쥴은 둔탁하게 생긴 기존 전자담배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이 실제 애플에서 근무했던 디자이너 출신이었는데, 담배라기보다는 USB 메모리같이 생겼습니다. 정말 최신 아이폰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에, 쥴은 청소년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게 됐습니다.
0615 쥴 이미지지난 2017년 출시된 이후, 미국 전자담배 시장 규모를 11억 6천만 달러까지 키워놨습니다. 시장의 75%는 쥴이었습니다. 쥴이 인기를 끌면서 사실상 새로운 전자담배 시장을 창출한 것입니다. 기존의 흡연을 의미하는 스모킹(Smoking)이 아니라 쥴링(Juuling)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습니다. 고3 학생들을 상대로 최근 30일 이내에 흡연을 해봤냐고 묻자 2017년 11%였던 응답률이 21%로 폭등했습니다. 두 배 가까운 폭등이었습니다. 쥴이 출시돼 인기를 얻은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청소년 흡연 비상사태'라고 할만한 이런 증가세에 FDA도 놀라고, 제조사도 놀라고 말았습니다. 흡연은 몸에 해롭지만, 쥴링은 나쁘지 않다는 착각을 가진 청소년들도 많습니다.

FDA는 청소년들의 전자담배 흡연이 니코틴 중독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습니다. 스콧 고틀립 전 FDA 국장은 "이렇게 전자담배에 중독된 청소년들이, 결국 담배를 피우는 실제 흡연자가 된다는 증거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 미 청소년 "쥴링은 너무 멋져 보인다"…"쥴링이 한국에서도 큰 문제가 될 것"
0615 쥴 판매대 앞에 있는 기자전자담배 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실제 물어봤습니다. 중·고등학생들도 쥴에 대해서 모두 잘 알고 있다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쥴을 피우는 건 멋있어 보인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는 쥴링을 하면서 예술적으로 연기를 뿜어내는 걸 자랑하는 미국 청소년들의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학교에서 피워도 선생님이 잘 모른다"는 말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메릴랜드의 한 학교는 화장실에 출입문을 없애버렸다고 합니다. 화장실 안에서 쥴링을 하도 해서 선생님들이 연기가 나면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뉴저지에 있는 한 학교는 연기 감지기를 단 곳도 있다고 합니다. 쥴이 만들어낸 진풍경입니다.

오프라인에서 쥴을 살 수 있는 곳은 쥴랩스 홈페이지에 보면 친절하게 설명해놨습니다. SBS 워싱턴 지국에서 가까운 곳에 실제 가봤는데, 이곳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 주류, 담배를 전문으로 파는 곳이었습니다. 잠시 서서 지켜봤는데, 실제 쥴을 사 가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 사장님과 얘기를 해봤는데 "쥴을 사람들이 정말 많이 사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향을 첨가한 액상이 많이 나왔는데, 하도 많이 팔리니까 이제는 오프라인에서는 살 수 없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에도 쥴이 최근 들어왔다고 하니까 "앞으로 청소년들이 쥴링을 많이 해서 큰 문제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전문점은 신분증 검사를 철저하게 하기 때문에 흡연 가능 연령 이하는 담배를 아예 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인터넷을 통해 나이를 속여 쥴을 사고, 그걸 나눠 피워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0615 쥴 광고 이미지쥴은 출시 초기 젊음, 열정, 섹시함을 강조한 이미지 광고를 대대적으로 했습니다. 젊은 층을 명확히 대상으로 한 광고였습니다. 유명 연예인이 등장하는 것도 있고, 뉴욕 한복판에 큰 옥외 광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렇게 멋있는 사람들이 쥴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청소년들이 하게 만들었습니다. 청소년 흡연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쥴은 이런 광고를 중단했습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계정까지 없애버렸습니다. 이미 충분히 잘 팔리기 때문에 욕먹어가면서 그런 광고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노스캐롤라이나, 쥴 상대로 소송…美 의회, 쥴 조사 착수

쥴이 대대적인 신문광고를 하면서 자신들이 청소년 흡연의 주범이라는 걸 물타기 하고 있지만, 미국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는 지난달 미국 주 정부 가운데 처음으로 쥴랩스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정부는 소송을 내면서 "의도적으로 니코틴의 위험을 축소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망고나 오이향은 물론 잘 팔리는 민트향까지 오프라인에서 아예 팔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이메일, SNS 광고를 전면 금지하는 건 물론 스포츠나 공연, 심지어 자선 행사에 대한 협찬도 금지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는 "새로운 세대가 전자담배에 중독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습니다.
美 의회에서 쥴에 보낸 편지미 하원에서 경제, 소비자 정책을 담당하는 소위 위원장인 라자 크리슈나무시 의원은 쥴에 대한 의회 차원의 조사를 예고하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크리슈나무시 의원은 이 편지에서 "니코틴 함량이 높은 쥴이 청소년 중독을 부추기고 있으며, 아이들이 중독 치료를 받게 된다는 보도에 대해 극도로 걱정이 된다"고 밝혔습니다. 또 "미국 청소년의 안전과 건강은 파는 물건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쥴에 방대한 자료를 요구했습니다. 이 자료에는 쥴의 마케팅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가 총망라돼 있습니다. 일단 의회 차원의 조사가 시작된 만큼, 의회에서 쥴랩스 대표가 증언해야 할 가능성도 커졌습니다.
전자담배 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쥴의 한국 출시…무방비로 노출된 한국 청소년

이미 미국 시장을 석권한 쥴은 한국에서도 흡연 시장에 상당한 지각 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들이 광고하는 대로 담배를 피우던 성인들이 쥴로 갈아타는 일만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건 미국 사례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호기심과 세련된 외관에 끌린 우리 청소년들이 니코틴에 중독돼 사회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미국에서는 9개 주에서 더 성숙하고 자신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나이에 흡연을 하도록 하자며, 흡연 가능 나이를 21세로 올리기도 했습니다.

쥴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인지 우리 청소년들의 니코틴 중독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미국은 잠깐 방심한 일 년 사이 쥴이 청소년들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중독시켜버렸습니다. 니코틴에 한번 중독되면 끊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건 수많은 흡연자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어린 청소년들이 잘 모르고 쥴링을 시작했다가 니코틴에 중독된다는 건 더 불행한 일입니다. 더 늦기 전에 정부 기관과 국회, 시민단체 등이 머리를 맞대고 청소년들을 니코틴 중독에서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