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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손해 보기 싫습니다"

김창규│입사 20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직장인 일기를 연재 중

[인-잇] "손해 보기 싫습니다"
'결국 꼰대' 4편: "손해 보기 싫습니다"


팀장은 팀원들의 능력과 성향을 고려하여 업무를 배분하고 조정해야 한다. 그래야 한 팀에서 누구는 일이 적어 놀고 누구는 일이 많아 헉헉거리는 그런 비효율적이면서 불공정한 상황을 없앨 수 있고, 그 조치는 결국 팀의 성과를 최대로 내게 할 것이다.

그래서 팀장이 처음 되었을 때 나는 누구의 업무를 빼고 누구에게 업무를 더 주어야 할지 생각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업무를 빼는 것은 더 고민해야 하지만 더 해야 할 팀원은 이미 알고 있었다. 2년째 같은 일만 하는 박 사원이었다.

나는 박 사원과 자연스러운 접촉을 시도했다.

"박 사원. 우리 회사 협력업체 자원 현황 좀 갖다줘요."
"여기 있습니다."

"와우 빠른데. 현황 업데이트도 다 되어 있네요. 평소에 잘 관리하는구나. 고마워요. 그런데 박 사원, 당신 이제 2년 차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너무 단순한 업무만 하는 것 같아요. 좀 더 업무를 확장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뭐 하고 싶은 업무 없나요?"

그는 내가 예상한 대로 머뭇거렸다.

"그럼 전에 내가 말한 대로 A 프로젝트 업무를 해보세요. 그 업무를 해보면 박 사원 역량이 지금보다 두 배는 늘 것 같은데, 어때요?"

부드럽지만 약간의 강제가 들어간 말투로 권하자 박 사원은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꾹 닫았던 입을 열었다.

"그 업무는 아직 저에게 무리입니다."
"그래요?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뭐 하고 싶은 다른 업무 있어요?"

또다시 침묵. 내가 다시 달래듯 말했다.

"계속 이 업무만 할 수는 없어요. 업무 확장을 해야지. 그게 당신한테도 좋아요.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나요? 내일 다시 얘기할까?"

박 사원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해도 내가 추가 업무를 줄 것임을 알아챘는지 포기한 말투로 답변했다.

"그럼 A 프로젝트의 설문조사 부분을 맡겠습니다."
"에이, 그건 너무 쉬워요. 지금 당신 업무의 연장선상이고. A 프로젝트 전체 추진 계획을 세워 보세요. 향후 성과 분석도요. 박 사원 실력이면 그 정도는 해야지."

그는 아연실색하며 "부담스럽다."면서 재고해달라고 재차 요청했다.

나는 대체 당신 능력에 이것을 왜 못하냐며 차근차근 따져 물었다. 박 사원이 이런저런 사유를 얘기하는 동안 서서히 그의 진심이 드러났다.

"팀장님. 제가 보니까요, 일하는 사람한테만 일이 몰립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한테 특별한 어드밴티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요. 제 동기들 중에도 마음이 약해서 이 업무 저 업무 받다가 지금 죽어나는 애들 많습니다. 저는 손해 보기 싫습니다."

손해. 누구나 손해 보는 것을 싫어하지만 특히나 젊은 세대는 이것에 진절머리를 친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손해 보기 싫어하는 것은 우리 세대도 그렇고 전 세대도 그랬다. 단지 차이점은 우리 때는 상대적으로 지금 세대처럼 격렬하게 저항하지는 않았다는 점뿐이다. 대부분은 손해 나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왜 그랬을까? 바보라서? 아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서다.

"갑자기 생각나는 일화가 있는데 한번 들어보세요. 내가 며칠 전 술을 마셔서 대리기사를 불러야 했어요. 그런데 우리 집이 워낙 외곽에 있어서 그런지 한참 만에 기사가 왔어요. 타고 가는 동안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해서 그 기사님에게 좋지 않은 지역에 걸려서 어쩌냐고 싱겁게 말을 걸었죠. 그러자 나이 지긋한 기사님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그렇긴 그렇죠. 하지만 어떻게 좋은 지역만 가나요?' 하며 이어서 말하기를 '이렇게 힘든 지역에도 가야 배차하는 곳에서 나를 좋게 보고 다음번에는 돈이 되는 곳을 주죠. 이게 나아요. 이익을 너무 따지는 신참 기사는 나쁜 지역 배차를 완강하게 거부하는데 결국 그거 지 손해예요. 배차계가 그것 기억했다가 나중에 절대 그 사람들에게는 좋은 구역을 콜 해주지 않거든요.' 하더군요. 나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공감하며 정말 세상 이치를 아는 분이구나 생각했어요. 이 얘기의 시사점이 뭘까요? 요는 박 사원이 손해 볼까 봐 더 일을 맡지 않겠다는 것은 당장은 모르겠지만 결국 당신에게 큰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입니다."

박 사원은 "알겠다. 고려해 보겠다."고 했으나 어쨌든 잔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안 좋은 얼굴로 풀이 죽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반면 나는 약간 '업'되었다. 이번에도 힘든 대화를 잘 이끌었다고 '자뻑'하면서 박 사원이 잘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머리도 식힐 겸 커피 한 잔 마시러 사내 휴게실로 갔다. 휴게실은 만원이었다. 젊은 직원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어서 혹시나 내 존재가 불편할까 봐 구석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쳇말로 짱 박혀서 커피를 마셨다. '난 역시 배려심이 많아' 생각하면서.

그런데 저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박 사원이다. 다른 팀의 친구와 같이 왔나 보다.

"손해를 보면 복이 온다네. 솔직히 일 더 시켜 먹으려고 날 현혹하는 거지 뭐. 짜증 난다. 정말."

의도치 않게 들은 그의 말 때문에 나는 상당한 속상함, 배신감을 느꼈다.

내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일방적으로 호통치며 지적질 하는 꼰대 팀장들과는 달리 나는 직원들을 배려하며 설득력 있게 얘기한다고 했는데, 왜 계속 뒤통수를 맞는 것 같지?'

- 다음 편에 계속 -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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