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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기타 음미(吟味) 사용서

이세형|퓨전 재즈밴드 '라스트폴'의 기타리스트

[인-잇] 기타 음미(吟味) 사용서
요리를 업으로 살다 보면 음식 맛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악기 연주도 마찬가지다. 나 또한 기타 연주를 업으로 살아오다 보니 '기타 소리 맛'에 그만큼 민감해지는 게 당연하다. '듣기 좋다', '듣기 싫다' 같은 표현으론 다 담아낼 수 없는, '기타의 맛'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전통적인 기타는 클래식 기타이다. 주로 클래식 음악의 연주에 쓰이지만, 해외에서는 스페니시 음악에, 우리나라에서는 트로트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줄은 나일론으로만 되어 있거나 나일론에 얇은 금속이 감겨있다. 나일론 줄을 손가락이나 손톱으로 치는 소리의 느낌이 따뜻하다.

음량이 다른 악기에 비해 크지 않은 데다 솔로 연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합주보다는 솔로로 많이 연주된다. 특유의 따뜻한 소리 때문에 재즈나 팝 음악에서 활용하기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앰프라는 현대 장비의 도움이 필요하다. 양념을 곁들이기보다는 재료 자체로 맛있는 오래된 음식, 자극적이지 않고 몸에도 좋은 음식의 느낌이다.

두 번째로 이야기할 기타는 통기타이다. 요즘은 어쿠스틱 기타로 더 많이 불린다. 클래식 기타를 제외한 모든 기타는 금속 재질의 줄을 사용한다. 서정적인 곡을 연주할 때는 클래식 기타와는 다른 따뜻함이 흡사 향 좋은 아메리카노를 연상시키고, 피크라는 도구를 활용해서 시원한 소리를 낼 때는 짜릿한 탄산수를 마시는 느낌이다.

노래를 반주하기에도 좋고 다른 악기와도 잘 어울리는 소리이다 보니 워낙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드레싱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고 몸에도 좋은 샐러드에도 비유할 수 있을까.

세 번째로 이야기할 기타는 전기기타이다. 전기기타부터는 앞의 두 기타와는 차원이 달라진다. 앞의 두 기타는 줄의 재질과 연주 방법에 따라서만 소리의 맛이 달라지지만, 전기기타는 현재 우리가 즐기고 있는 수많은 음식의 향연에 비유할 만큼 다양한 소리의 맛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결은 앰프라는 장비에 있다.

기존의 두 기타가 단순한 모닥불로만 조리하는 방식이었다면 앰프를 쓰는 순간부터는 가스레인지, 오븐, 전자레인지 등 수많은 조리 기구를 활용한 것과도 같다. 거기에 이펙터라는 보조 장치까지 더하면 향신료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다양성이 펼쳐진다.

가장 대표적인 전기기타 소리의 맛을 두 가지만 소개하자면, 첫 번째는 기타와 앰프 본연의 소리만을 활용한 생톤(生tone)을 들 수 있겠다. 클래식 기타나 어쿠스틱 기타에 비하면 현대적인 소리이지만, 나름 오븐이나 화덕에서 요리한 깊은 맛이 배어있다. 울림통을 가진 할로우(Hollow) 기타의 소리가 촉촉함이 배어있는 식빵 같은 느낌이라면 울림통이 없는 솔리드(Solid) 기타의 생톤은 바싹 말랐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바게트 같은 느낌이다.

또 다른 전기기타 소리의 맛은 앰프와 이펙터를 활용한 디스토션 톤(Distortion tone)이다. 록이나 메탈 음악을 들을 때 주로 나오는 강렬하고 자극적인 소리이다. 기타 본연의 소리보다는 어떤 앰프와 이펙터를 썼는지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에 재료 본연의 맛보다는 양념 맛으로 먹는 음식과도 같다. 흡사 캡사이신을 넣은 매운맛이나 온갖 인공감미료를 넣은 탄산음료와도 같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기타의 맛은 기타 신시사이저이다. 얼마 전 분자요리를 보는 순간 기타 신시사이저와의 유사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요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재료의 질감과 조직을 다른 형태로 변형시키는 것이, 기타에서 나오는 소리의 파형을 분석해서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시킨 후에 그것을 미디(MIDI) 음악의 재료로만 사용하는 모습과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이다.

딸기로 만든 캐비어는 흡사 기타로 피아노 소리를 내는 것과도 같다. 사실 이 정도가 되면 누가 말해주기 전에는 듣고 있는 음악이 기타로 연주됐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된다. 즉 기타로 다른 악기 소리를 낸다는 사실에 흥미가 생길 뿐 기타의 소리를 맛으로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똑같은 커피 맛도 자꾸 마시다 보면 원두의 차이를 알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알게 된다. 처음에는 비슷하게 들리는 기타 소리도 자꾸 듣다 보면 어떤 기타에 어떤 앰프를 누가 연주했는지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다양한 기타의 맛을 알아가는 기쁨을 더 많은 이들이 느껴보시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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