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중국 대륙 휩쓰는 아프리카돼지열병…9개월 지났지만 '속수무책'

송욱 기자 songxu@sbs.co.kr

작성 2019.05.29 15:3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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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돼지고기 사랑은 대단합니다. 중국인들이 '고기를 먹는다(吃肉)'라고 할 때 고기(肉)는 돼지고기를 의미합니다. 수치로 봐도 전 세계 돼지 소비의 소비량의 절반을 중국이 차지합니다. 역사도 깊은데, '동파육(東坡肉)'으로 유명한 중국 북송의 문인 소식(蘇軾)은 천 년 전 <저육송(猪肉頌)>이라는 돼지고기 예찬 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깨끗이 씻은 그릇에, 물을 조금만 붓고 약한 불로 달군다. /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익히고, 불의 세기가 충분하면, 자연스레 맛이 난다. / 황주의 맛 좋은 돼지고기는 값이 진흙처럼 싸다. / 부자는 거들떠보지 않고 가난한 이는 요리할 줄 모르네. / 아침마다 두 그릇씩 배불리 먹으니 누가 이 맛을 알까."
淨洗鍋, 少著水, 紫頭奄煙焰不起
待他自熟莫催也, 火候足時他自美
黃州好猪肉, 價賤如泥土
貴人不肯喫, 貧人不解煮
早晨打起來打兩碗, 飽得自家君莫管) 


● 진화됐다더니…9개월 만에 중국 본토 전역으로 확산

그런데 중국의 '값싸고 맛있는 돼지고기'에 큰 이상이 생겼습니다. 대륙을 휩쓸고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문입니다. 치사율이 최대 100%인 바이러스 출혈성 돼지 전염병인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지난해 8월 랴오닝성 선양에서 처음 발병했습니다. 그리고 9개월이 지난 현재 중국 32개 자치구, 직할시, 특구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했습니다. 본토에서 마카오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발병한 것입니다. 
송욱 취파용위캉전 중국 농업농촌부 부부장은 지난 3월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사례가 급감했다면서 '잠정적인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중국 최남단에 위치한 섬인 하이난성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한 데 이어 이달 홍콩에서도 발병 사례가 보고되면서 사태의 심각성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일주일 사이만 하더라도 닝샤후이족자치구와 윈난성, 광시좡족자치구 등 3곳에서 발병이 확인됐습니다. 타이완의 경우도, 해변가에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걸린 돼지 사체들이 계속해서 떠내려오고 있어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 영세한 사육 환경…"길거리에 돼지 사체가"

중국 전문가들은 정부의 방역 노력에도 아프리카돼지열병의 기세가 꺾이지 않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가장 큰 것은 낙후된 돼지 사육 환경입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중국에서 출하되는 돼지의 70%는 어미돼지 500마리 이하의 소규모 양돈장에서 나옵니다. 중국의 소규모 농장은 질병을 예방하는 방역 시설이 기업형 농장에 비해 미비합니다. 또한 대두 등으로 만든 돼지 사료가 아닌 잔반을 사료로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바이러스에 오염된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물 찌꺼기가 돼지 사료로 쓰이면 감염 가능성이 커지겠죠.
송욱 취파용특히 일부 영세한 돼지 농장들은 돼지 전염병이 의심돼도 신고를 하지 않고, 불법으로 유통하거나 사체를 유기하고 있습니다. 최근 광시TV 시사 프로그램은 난닝시 등 광시좡족자치구의 여러 마을에서 돼지 사체들이 도로변과 산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모습을 촬영해 고발했습니다. 인터넷에서 회자가 되면서 중국 방역 당국이 서둘러 조사에 나섰습니다. 당국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아니고 다른 질병이나 사육 환경 때문에 죽은 것 같다면서 부랴부랴 사체 수거에 나섰습니다. 죽은 돼지들은 당국에 신고해서 처리해야 하지만, 일부 농가는 그런 과정이 번거로운 데다, 혹시나 관리 대상이 될까, 처리하는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병균이 전염될까 봐 몰래 유기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송욱 취파용돼지 유통 시스템 또한 주요 전염 경로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돼지 수송 차량 상당수는 방역에 취약한 영세 자영업자들이 맡고 있습니다. 여기에 중국은 지역이 크다 보니 생돈 돼지 가격이 지역마다 다르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돼지 수송 차량이 장거리 이동하는 경우가 많고 그만큼 질병 전파 가능성도 키우게 됩니다.
송욱 취파용최초 발병 이후에도 이처럼 전염 우려를 키우는 일이 계속되자 중국 정부는 사체 유기 등 방역 지침을 어기는 농민들에 대해서는 행정구류 처분을 내리고 있습니다. 또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에 심각한 허점을 드러낸 지역의 당과 정부 간부들에 대해서도 감사와 문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돼지 사육 규모 20% 감소…달걀 가격까지 '들썩'

최근 중국 농업농촌부는 지난해 8월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이후 돼지 112만 9천 마리가 살처분됐고, 사육 농가에 지원된 보조금 규모가 6억 3천만 위안, 우리 돈으로 약 1080억 원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4월 말 기준 중국 전국 돼지 사육 규모를 보면, 전년 동월 대비 20.8%, 전월 대비 2.9% 감소했습니다. 전월 대비 감소 폭은 3월의 1.2%에 비해 커졌습니다.

공급 감소는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5월 8일 기준으로 전국 평균 생돈 가격은 kg당 15.16위안으로 연초 대비 8.9% 올랐고, 전년 동월 대비로는 45.8% 상승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전년 동월 대비의 경우 1년 전 돼지 값이 kg당 10.4원으로 2011년 이후 가장 낮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2015년 초부터 평균을 내보면 오히려 지금 가격이 2.1%가량 낮다고 강조했습니다.
송욱 취파용전문가들은 돼지 사육 규모 감소에 비하면 가격 상승세가 예상보다 가파르지는 않다면서, 수요가 일부 감소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우려하는 소비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어미 돼지의 감소세가 크고,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하반기 돼지고기 가격은 큰 폭의 상승이 예상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중국 달걀 가격도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5월 10일 기준으로 달걀 도매가는 1달 전보다 19%, 1년 전보다 20% 올랐습니다. 지난해 달걀 가격 급락으로 계란 낳는 닭 양식을 포기하는 농가가 늘어난 상황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인한 돼지고기 불신, 가격 부담 때문에 달걀 수요가 증가한 게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 중국 "백신 개발 중"…관건은 시간 단축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지금까지 예방백신이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에 따르면 하얼빈수의학연구소가 최근 백신을 개발하고 있고, 실험실 연구에서 생물학적 안전성과 면역 보호 효과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국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후 긴급히 과학기술 프로젝트 조직을 꾸려 연구를 해왔습니다. 중국 정부는 실험실 단계의 연구 진전을 바탕으로 임상시험과 백신 생산 연구를 추진하고, 백신 기제와 진단검사, 소독 기술 등 방면의 연구도 빨리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송욱 취파용중국신문주간에 따르면 해외 전문가들은 통상 연구 개발부터 백신 출시까지 5년에서 길게는 8년이 걸린다고 설명합니다. 백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보장하기 위해 대량의 동물실험이 필요하고, 그 이후에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데 돼지의 면역 기간으로 볼 때 최소 반년 이상 걸립니다. 또한 심사기관의 검증을 거치고, 업체가 생산한 백신 또한 검사에 합격해야 대량 생산이 가능합니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다면 완제품 생산까지의 기간이 상당 부분 단축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중국에는 '주량안톈샤'(猪粮安天下)라는 말이 있습니다. 돼지고기와 식량이 천하를 편안하게 해준다는 뜻입니다. 올 하반기에 돼지고기 가격이 최대 70%까지 오른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가운데 백신이든, 방역이든, 수입이든 인민들의 동요를 막을 수 있는 묘수가 중국 정부에게 절실한 시점입니다.

(사진=광시 TV라디오방송국, CC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