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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길고양이가 싫다고요? 그럼 오히려 캣맘을 응원해야죠!

이학범 | 수의사. 수의학 전문 신문 『데일리벳』 창간

[인-잇] 길고양이가 싫다고요? 그럼 오히려 캣맘을 응원해야죠!
3색 코숏(코리안 쇼트헤어, 한국 길고양이) '루리'와 함께 산 지 벌써 12년이 됐다. 수의대학생 시절 동물병원 실습을 나갔었는데, 어떤 분이 눈도 못 뜬 새끼 고양이가 울고 있다며 주어오셨다. 일명 '냥줍'이었다. 자꾸 그 고양이에게 눈길이 가는가 싶더니 결국 그날 바로 집으로 데려오게 됐다.

부모님은 난리가 났다. "개도 있는데 고양이까지 데려오면 어떻게 하느냐?"부터 시작해서 "나는 고양이 눈이 싫다", "고양이는 무섭다", "고양이는 요물이다", "이거 도둑고양이 아니냐?" 등 계속해서 꾸지람을 들었다.

하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빨리 바뀌었다. 부모님 두 분이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진 것이다. 그러더니 "주차장에 길고양이가 한 마리 있는데…", "교회 건물 뒤에 사는 길고양이가 임신했나 봐…"처럼 갑자기 주변 길고양이들 얘기를 하기 시작했고, 기어이 캣맘, 캣대디의 길로 들어섰다. 많이 올 때는 7마리의 길고양이가 우리 집 길고양이 급식소를 찾았다.
(인잇용) 길고양이 급식소
우리 부모님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주변엔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이 꽤 많다. 그리고 이러한 선입견 때문인지,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분도 많다. 길고양이를 잡아 죽이거나 길고양이에게 해코지를 했다는 뉴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길고양이뿐만 아니라 캣맘과의 갈등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던 캣맘을 일방적으로 폭행하고 음식물 쓰레기통에 거꾸로 집어넣은 '인천 캣맘 폭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가해자들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고양이 수가 늘어나잖아요", "길고양이는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뜯어놓잖아요", "길고양이가 새벽에 울음소리를 내서 잠을 잘 수 없어요", "고양이들끼리 싸울 때 내는 소리가 너무 무서워요" 같은 불만을 토로한다.

이해 가능한 이유들이다. 하지만, 이런 불만이 있다면, 길고양이를 해코지하고 캣맘을 폭행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캣맘의 활동을 응원'해야 한다. 캣맘이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챙겨줌으로써 길고양이로 인한 일반의 불만과 민원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정해진 위치에서 안정적으로 사료를 먹게 되면 길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뜯을 일이 없어진다.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사업(TNR 사업)이 더 수월해지므로 길고양이 개체 수도 줄일 수 있다.

TNR은 포획(Trap)-중성화 수술(Neuter)-방사(Return)의 약자인데, 길고양이들을 포획하여 중성화 수술을 시킨 뒤 다시 그 장소에 풀어주는 사업을 뜻한다. 중성화 수술을 받은 고양이는 발정이 오지 않기 때문에 발정 울음소리를 내지 않게 되고, 영역 다툼도 덜 하게 되며, 무엇보다 더는 새끼를 낳지 않게 된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흔한 이유인 '발정 소리, 다툼 소리, 개체 수 증가'를 모두 해결해 주는 셈이다.

그리고 이 TNR 사업의 첫 번째 과정인 '길고양이 포획'에서 캣맘이 큰 역할을 한다. 캣맘들이 일정한 장소에 꾸준히 사료를 줘야 길고양이가 그곳에 모이게 되고, 포획이 쉬워진다. 그러니, 길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싫고 길고양이 수가 늘어나는 게 싫다면, 캣맘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캣맘들의 활동을 응원해야 이치에 맞다.

길고양이도 골칫거리만은 아니다. 길고양이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유행성출혈열, 렙토스피라 등 쥐가 전파하는 질병이 많다. 해외에서는 여전히 페스트도 발생한다. 그런데, 쥐의 가장 큰 천적이 바로 길고양이고 길고양이는 하루 최대 4마리의 쥐를 사냥하니, 쥐가 사람에게 질병을 전파하는 것도 막아준다.

길고양이에 대해 불만이나 두려움을 느끼고,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캣맘을 싫어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길고양이와 캣맘은 죄가 없다. 길고양이는 TNR 사업을 통해 충분히 지역주민들과 공존할 수 있는 존재이며, 역설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길고양이가 싫다면 오히려 캣맘의 활동을 응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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