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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날개라는 혁신에 필요한 것은?

이정모 | '청소년을 위한 과학관' 서울시립과학관의 초대 관장

[인-잇] 날개라는 혁신에 필요한 것은?
누가 가장 먼저 하늘을 날았을까? 후보들을 떠올려보자. 새, 박쥐, 익룡. 새는 조류, 박쥐는 포유류, 익룡은 파충류로 알려져 있다.

이 셋 가운데 익룡이 자연사에 가장 먼저 등장했다는 것은 상식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익룡은 2억 2천만 년 전 브라질에 살았던 팍시날립테루스(Faxinalipterus)다.

익룡의 날개는 구조가 간단했다. 아주 긴 다섯 번째 손가락과 몸통 사이에 날개막이 달라붙어 있었다. 익룡에게는 비행을 조절하는 근육이 없었다. 아마 급상승하는 기류를 타고 이륙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을 지배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생대의 막바지인 6천8백~6천6백만 년 전은 그야말로 익룡의 시대였다. 날개폭이 10m에 달하는 거대한 익룡이 존재했을 정도다.

익룡에 이어서 새가 하늘을 날았다. 가장 오래된 현생 새는 6천6백만 년 전 지금의 남극에서 살았던 베가비스(Vegavis)로, 중생대 끝 무렵이지만 이미 공룡의 시대에 현생 조류와 비슷한 공룡들이 많이 살았다. 그러니까 새는 공룡의 후손이 아니라 그냥 공룡인 것이다. 현생 새와는 아주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익룡은 긴 뼈와 얇은 막으로 하늘을 먼저 날았다. 혁신이었다. 그런데 새는 혁신을 답습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왜냐하면 새와 익룡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새는 익룡이 아니라 두 발로 걷는 공룡에서 진화했다. 새는 익룡과 달리 팔과 손가락이 짧다. 대신 긴 깃털이 달린 날개가 있다. 게다가 팔과 손가락에는 강력한 근육이 붙어 있어서 날개를 큰 각도로 펄럭이며 익룡보다 더 힘차게 비행한다.
익룡, 공룡 (사진=픽사베이)
새의 진정한 혁신은 내온성 동물 즉, 온혈동물로 진화한 것이다. 덕분엔 공룡이 사라지는 다섯 번째 대멸종을 견뎌냈고 다양한 종으로 분화했다. 지금도 약 1만 4백 종이 살고 있다.

포유류도 새와 함께 대멸종을 견뎌냈다. 공룡이 활개 치던 시절 포유류는 생쥐만 한 크기를 유지한 채 야행성 생활을 했다. 괜히 공룡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6천6백만 년 전 육상의 공룡과 하늘의 익룡 그리고 바다의 어룡이 사라지면서 온 지구 표면이 무주공산이 되자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점점 몸집을 키우면서 육상의 지배자가 되었고, 바다로 진출한 고래는 지구 역사상 가장 커다란 생명체로 성장하였다.

남은 곳은 오직 하나. 하늘이었다. 이때 박쥐가 등장했다. 가장 오래된 박쥐 화석은 5천6백만 년 지금의 포르투갈에 살았던 아르케오닉테리스(Archaeonycteris)와 지금의 프랑스에 살았던 마르네닉테리스(Marnenycteris)다.

익룡과 새는 모두 손가락 하나가 날개에 붙어 있다. 그런데 박쥐는 짧은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기다란 네 개의 손가락이 모두 날개를 지지한다. 덕분에 새보다 더 유연하게 날개의 모양을 바꿀 수 있어서 기동성은 높아지고 에너지는 절약됐다.

하늘을 나는 척추동물은 익룡, 새, 그리고 박쥐가 전부였다.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비행하는 동물이 새롭게 등장한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그 존재는 바로 박쥐공룡이다.

2015년 중국 쥐라기 지층에서 깃털이 달린 작은 공룡이 발견되었다. 손목에 엄청나게 큰 뼈가 뒤쪽을 향해 뻗어 있고, 이 뼈와 손가락 사이에 박쥐 날개와 같은 막이 붙어 있었던 흔적이 남은 작은 공룡 화석이었다. 중국 과학자들은 이 공룡에게 '이상한 날개'라는 뜻의 이치(Yi qi, 奇翼)라는 이름을 붙였다.

2019년 5월 11일자 <네이처> 표지에는 또 다른 박쥐공룡인 암보프테릭스(Ambopteryx)를 복원한 그림이 실렸다. 암보프테릭스는 1억 6천3백만 년 쥐라기에 살았던 공룡인데, 투명한 날개막과 깃털을 모두 가지고 있다. 마치 새와 박쥐를 합해놓은 모습이다. 과학자들은 암보프테릭스가 새보다는 박쥐처럼 날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익룡과 새 그리고 박쥐공룡과 박쥐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날개를 진화시켰다. 이들 사이에는 조상과 후손 관계가 없다. 우연히 날개가 만들어진 것이다. 모양과 방식도 다르다. 이렇게 전혀 관계없는 집단에서 동일한 결과가 얻어지는 것을 '수렴진화'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작 원조 비행 생물은 따로 있다. 바로 곤충이다. 가장 오래된 비행 곤충은 3억 1천4백만 년 전에 북아메리카에 살았던 하루살이 또는 강도래다. 척추동물이 원래 있던 팔다리를 변형시켜서 날개를 만든 것처럼 곤충은 가슴등판과 아가미를 변형하여 날개를 만들었다.

이 모든 동물의 날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기존에 있던 기관을 환경에 적응시키는 과정에서 날개를 얻게 된 것이다. 혁신이란 없는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있는 것을 변형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환경과 필요, 무엇보다도 돌연변이가 필요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게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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