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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부가 만든 법, 정부가 어긴 법② 수천억 과소지급 사태의 전말

청약저축 이자 수천억 과소지급 사태의 전말

(기자 주: 3,600억 원 규모의 '주택청약이자 과소지급 사고' 연속 보도에 대해, 국토부 해명은 한 줄로 요약됩니다. "6년 전, 이미 법적으로 '면죄부'를 받았다." 이 해명의 타당성을 따지기 위해 국토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든 '법적 면죄부'가 어떤 과정을 통해 나왔는지 취재 순서대로 되짚어 보겠습니다.)

● "국토부 지시로 청약이자 과소지급 은폐"…국민은행 전직 직원 제보가 단서
주택청약 이자 135만 원 소송에 대형 로펌 선임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3,600억원대 주택청약 이자 미지급 금융사고를 저지르고 이를 은폐했다."

한 국민은행 전직 직원으로부터 정인화 민주평화당 의원실이 내부 제보를 입수했습니다. 의원실을 통해 받아 본 제보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정부가 법령을 어기고 국민에게 청약저축 이자를 수천억 미지급했다. 2006년 2월 개정된 청약저축 이자율 관련 정부 규칙을, 정부가 스스로 어겼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앞선 취재파일에서 보신 대로 규칙 개정 전의 가입자에겐 규칙 개정 전의 이자율 6%를 보장한다는 규칙을 만들어 놓고, 정작 시행할 땐 모두에게 개정 이후의 인하된 이자율 4.5%를 적용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에게 마땅히 줘야 될 돈을 덜 줬단 거죠.

둘째, 뒤늦게 문제제기 한 사람이 있었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이자를 물어주는 대신 문제제기 한 사람에게 소송으로 대응했다. 당시 주택 청약은 이자율이 아니라 우선순위가 최대 관심사였던 상황. 오랜 기간 규칙과 다른 이자를 지급받았는데도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다가, 2011년에 와서 한 가입자가 청약을 해지하다 규칙을 살펴보고 은행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런데, 국토부는 은행에 덜 준 이자를 물어주지 말고 소송으로 가입자를 제압하도록 했다는 겁니다.

셋째, 국토부가 소송 막바지에 문제의 규칙을 삭제해 금융사고를 은폐했다. 재판부에서 연달아 문제의 규칙이 종전 가입자에게 4.5%가 아니라 6%를 보장해주라는 게 명백하다고 판단하자 재판 도중 해당 규칙을 삭제해 문제의 소지를 만들었던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겁니다.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면 큰 일이었습니다. 규칙을 어겨 미지급했다는 이자의 규모도 어마어마했지만, 그보다도 문제제기를 한 국민이 있었는데 정부가 청약저축 상품 취급 수탁기관인 은행을 동원해 이를 무마하고, 또 문제의 규칙을 슬쩍 바꿔서 사안을 은폐하려 했다는 게 정부 관료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라고 판단 됐습니다.

내부 제보를 검증하기 위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문제의 규칙(이 규칙 시행 전에 가입한 청약저축을 해지할 경우에는 제5조의2 제5항의 개정규정에 불구하고 종전의 규정에 의한다.)은 곧바로 문구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핵심은 실제로 관련 소송이 있었는지, 그리고 당시 국토부가 실제로 은행에 해당 가입자에 대한 소송을 지시하고 소송에 적극 개입했는지를 규명해내는 일이었습니다.

해당 소송이 있었다는 사실은 판결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11년 덜 준 이자 135만원을 돌려 달라는 한 소송이 있었고, 여기에 국민은행 측이 율촌과 김앤장이라는 대형 로펌을 선임해 대응했던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2심 소송 보조참가인으로는 국토해양부의 이름까지 올라와 있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민원인은 1심에서 승소했지만 2심에서 패소했고, 대법원 상고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2심 패소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이자 135만 원을 돌려 달라는 사람에게 정부와 은행이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려 대응했다는 사실, 석연치 않았습니다. 판결문에 드러난 단서를 바탕으로 탐문 취재한 끝에 소송 당사자를 찾아냈습니다. 다행히 소송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기록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가입자의 진술과, 소송 기록을 맞춰 보니 국토부가 법적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던 과정의 윤곽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 "정부 규칙과 다른 이자에 합리적 의심…문제제기에는 '악성 민원인' 취급"
주택청약 이자 '미지급'
해당 가입자는 2011년 8월 청약저축을 해지하면서 처음으로 규칙을 살펴봤다고 합니다. 그전까진 은행에서 주면 주는 대로 맞겠거니 했답니다. 그런데 직전에 다른 은행에서 근로자우대저축 상품을 해지하면서 약관과 다른 이자율이 적용됐던 사실을 발견, 문제 제기를 통해 덜 받은 이자를 환급받았던 걸 계기로 이자율 관련 규정을 꼼꼼히 살펴보게 됐다고 했습니다.

찾아본 규칙(이 규칙 시행 전에 가입한 청약저축을 해지할 경우에는 제5조의2 제5항의 개정 규정에 불구하고 종전의 규정에 의한다.)이 너무 명백해서 문제제기 했을 때만 해도 이 때문에 오랜 기간 고통받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는 군요. 그런데 은행이 이를 묵살하고 악성 민원인 취급을 하면서 상황이 변합니다. 이 가입자는 은행을 상대로 소액심판(3천 만 원 이하 금액에 관한 민사 소송일 경우 1회 변론으로 곧바로 권고이행결정을 내리는 심판. 상대가 결정에 불복하면 정식재판 시작)을 청구합니다.

소액심판에서 곧바로 승소합니다. 국민은행 전직 직원에 따르면, 이때 은행 내부에서 대책 회의가 열렸다고 합니다. "물어주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는 게 회의 참석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고 하는데, 국토부 보고 뒤 상황이 급변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된다, 소송으로 막아라"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면 전체 가입자에게 물어줘야 할 금액이 수천억 원이 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이때부터 '법적 면죄부'를 받기 위한 정부의 총력 대응이 시작됩니다.

● 창고 뒤져 찾아낸 '대출 서류', 정부-은행 회심의 한방
주택청약 이자 135만 원 소송에 대형 로펌 선임
본격적인 소송전이 시작됩니다. 은행에선 1심에서 대형 로펌 율촌을 선임하고 "그 규칙은 종전 가입자의 이자율을 보장한다는 뜻이 아니다"라는 정부 의견서까지 받아 법정에 제출했지만 패소합니다. 패소 이유는 간단합니다. 해당 규칙(이 규칙 시행 전에 가입한 청약저축을 해지할 경우에는 제5조의2 제5항의 개정규정에 불구하고 종전의 규정에 의한다.)이 너무 명백해서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없다는 겁니다. 6%를 보장해주라는 규칙이 맞으니 물어주라는 두 번째 법적 판단입니다.

1심까지 패소했단 소식에 은행과 정부는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해당 가입자에 대한 서류를 모두 찾아내라는 정부 지침에 은행의 소송 대응팀이 움직입니다. 고객의 서류는 일정 기간 동안 파쇄하지 않고 각 지점 창고에서 보관하는데, 자리가 부족하면 일부는 국민은행 독산동 지점에 '집중창고'라는 곳에 보관한다고 했습니다. 쥐 잡듯 샅샅이 뒤진 끝에 은행은 독산동 창고에서 해당 가입자의 청약저축 담보 대출 서류를 발견합니다. 서류에는 해당 가입자가 청약저축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서 대출금리를 4.5%에 근거해 산정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은행은 이게 해당 가입자도 4.5% 이자를 인지하고 동의했다는 증거로 활용합니다.

2심에선 정부도 소송 보조참가인으로 가세합니다. 전략도 바뀌었습니다. 규칙이 4.5%를 의미한다고 의견을 냈던 1심 전략에서 선회해, "문구를 쉽게 바꾸려다 문제의 규칙이 들어갔다"고 주장한 겁니다. 한 마디로 규칙이 6%를 보장해주는 걸로 읽힐 수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이는 법령 개정 과정에서 사소한 '작문 실수'를 했을 뿐이란 겁니다. 그러면서, 정부의 사소한 실수를 문제 삼는 가입자가 이자로 재테크를 하려는 파렴치한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합니다.

정부 측이 소송 때 주장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뒤늦게 소송을 제기한 것은 법령의 빈틈을 파고들어 일종의 '세금 도둑질'을 하고자 하는 저의가 담긴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고(해당 가입자)의 부당한 주장이 인정되면 이미 시중보다 높은 이자율과 소득공제 등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일부 청약저축 가입자들에게 기대치도 않았던 불로소득을 안겨주는 데 (정부 돈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법령을 개정하면서 '3,600억원짜리 실수'를 저질렀다고 주장해 놓고, 스스로의 잘못에 대해선 "규칙 해석에 모호함을 야기해 유감"이라는 말이 전부였습니다.

● 항소심도 "6% 보장 규칙 명백"…그러나, "이자 돌려줄 필요는 없다"
법원, '청약 저축 6% 이자 적용
2심에서 드디어 정부 뜻대로 '법적 면죄부'가 나옵니다. 2심 역시 규칙(이 규칙 시행 전에 가입한 청약저축을 해지할 경우에는 제5조의2 제5항의 개정 규정에 불구하고 종전의 규정에 의한다.) 에 대해선 6%를 줘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새로 추가된 청약저축 대출서류와 4.5% 이자율에 대한 은행 안내 자료 등을 근거로, 은행과 해당 가입자들 사이에 이자율에 대한 '묵시적 합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때문에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결론 내립니다.

쉽게 비유를 해보면 이렇습니다. 정부 법령은 학교 앞 슈퍼마켓에서 불량식품을 못 팔게 합니다. 법령 자체는 명확해 해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불량식품 판매가 일어납니다. 거기서 불량식품을 실컷 사 먹은 사람이 갑자기 정부 법령을 근거로 들어 슈퍼에 돈을 안 낸다고 주장할 경우, 안 낼 순 없습니다. 해당 법령은 정부가 슈퍼마켓을 단속하고 계도할 원칙인 건 맞지만, 슈퍼마켓과 개인 사이 충분한 '판매 계약 동의' 과정이 있었다면 이를 무효화 시킬 수 있는 효력까지 가진 법령은 아니란 겁니다.

같은 이유로, 2심에서 해당 가입자와 은행 간의 4.5% 이자율 동의가 중요 변수로 다뤄졌고, 새로 제출된 청약저축 대출서류가 이 동의를 증명하는 핵심 역할을 해 정부 승소를 이끌어냈습니다. 이 가입자는 "4.5% 이자율에 명시적으로 동의한 적 없다"고 상고하지만, 소액심판 법상 대법원 상고 사유를 갖추지 못해 2심은 논리 변경 없이 그대로 확정됩니다. 재판 막바지 정부는 해당 규칙(이 규칙 시행 전에 가입한 청약저축을 해지할 경우에는 제5조의2 제5항의 개정규정에 불구하고 종전의 규정에 의한다.)을 슬그머니 삭제합니다.

"가입자들에게 4.5% 이자율을 적용해도 된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았다"는 정부 주장 속 법원 판단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정부는 여전히 다 해결된 일인데 왜 문제제기를 하느냔 입장입니다. 문제 제기의 실효성이 있냐는 거죠.

해당 법원 판단은 해당 가입자에 대한 판결일 뿐, 모든 가입자에게 똑같은 효력을 미치는 판결이 아니라는 당연한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보도의 목적은 바로 정부의 이런 태도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함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시행령과 시행규칙 같은 정부 법령은 그 자체로 국민의 삶을 규율하는 원칙이자 약속입니다. 정부는 이 사건을 법령 제정 과정의 미숙함에 대해 반성하고 돌아볼 기회로 여겼을까요? 해당 가입자는 소송에 패소해 소송 비용을 모두 물어내야 했지만 정부 측은 '3,600억원짜리 실수'를 고백한 담당자에게조차 가벼운 문책도 없었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잘못은 잘못이 아니라는 정부의 태도는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지적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또 국민이 오롯이 입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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