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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팀장님, 말씀대로 하면 곤란한 일이 생깁니다"

김창규│입사 20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직장인 일기를 연재 중

[인-잇] "팀장님, 말씀대로 하면 곤란한 일이 생깁니다"
'결국 꼰대' 2편: "팀장님, 말씀대로 하면 곤란한 일이 생깁니다"

'김 차장. 명. 이노베이션 팀장'

얼떨결에 본사 팀장이 되었다. 그동안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프로크루스테스, 그러니까 꼰대 팀장은 되지 않을 거야 하고…

다시 본사로 그것도 팀장 자격으로 첫 출근하는 날, 2월 초 새벽 출근길인데 더는 거리가 음산하지도 마음이 심란하지도 않았다. 사람 참 간사하다. 1년 만에 돌아온 본사는 내가 짐을 챙겨 나올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 동료, 선배들과 눈인사를 하고 바로 사업부문장실로 들어갔다.

"어, 왔니. 그동안 서운했지."
"아닙니다. 현장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 그런 목적으로 널 보냈던 거야. 지금부터는 네가 할 일이 많아."
"예. 그런데 이번 인사 발령 좀 놀랐습니다. 부담도 되고요."
"뭐? 부담되면 반납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한마디 하지. 당신, 팀장이 뭐 하는 사람인 줄 알아. 성과를 내는 사람이야. 그걸 명심해. 부질없이 착한 팀장 되려고 하지 마. 나가 봐."

사업부문장은 목표 달성 주의다. 어떻게 하든 부여받은 목표는 달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목표에 미달하면 죽음이다, 죽음.

다음은 직속 상관으로 모셔야 할 담당 임원 방으로 들어갔다. 사업부문장과는 달리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다.

"1년 만인가? 팀장으로 복귀를 환영해요. 앉지. 이제 자네 성격 좀 죽었나?"
"예? 아, 예. 그렇습니다."
"사실 난 당신 컴백하는 것 반대했어요. 그런데 사업부문장님이 당신의 추진력, 적극적 업무처리 태도 때문에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발탁 인사를 하신 거예요. "
"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잘 해보자고요. 아. 그리고 한가지 명심해줘요. 김 팀장, 전처럼 험한 꼴 당하지 않으려면 상사의 의도 파악을 잘 할 수 있어야 해요. 김 팀장 생각을 나와 맞추란 얘기예요."

앞으로의 길이 순탄치 않음을 직감하며 약간 굳은 얼굴로 "예" 하고 나가려는 순간 담당 임원이 한마디를 더 했다.
"아 참 한 가지 더.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해 주세요. 문제 일으키면서 잘하지는 말고."
다시 알겠다고 하고 나와 드디어 내 팀으로 갔다.

팀원은 5명. 대리 2명, 사원 3명이다. 모두 다 젊은 직원들이다. 중간 간부급인 차장 혹은 과장이 1명이라도 있으면 더 좋을 텐데 하며 아쉬워는 했지만 젊은 피들과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도 X세대의 대표주자로서 젊은 친구들과 여태까지 경험으로 보건대 잘 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같이 일하게 됐네요. 반가워."
직원들은 긴장된 얼굴 표정을 부자연스럽게 감추면서 반가운 것인지 싫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로 "예" 하고 흐릿하게 답변을 했다.

"갑자기 나도 발령을 받아서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고 있지만 잘해 봅시다. 나 알죠? 아닌가? 내가 없는 동안에 본사로 전출 온 박 대리, 그리고 저기 신입사원 2명은 나를 모르나?"
"얘기는 들었습니다."
"하하, 무슨 얘기. 궁금한데?"
"추진력이 강하고 화끈하시다고…"
"그거 칭찬이지요. 하하."

웃음기 있는 목소리를 빼고 얘기를 이어갔다.
"나도 어제까지 여러분처럼 실무자였어요. 여러분의 고충을 내가 잘 안다는 얘기지. 애로사항은 언제든 얘기하세요. 그리고 난 기본적으로 잔소리하기 싫습니다. 여러분도 똑똑한 성인인데 일을 알아서 해야지요.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역할은 여러분들을 최대한 서포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팀원들로부터 좀 더 밝아진 표정과 목소리로 알겠다는 답변을 들은 뒤 회의를 마쳤다.

이후 인수인계 서류를 꼼꼼히 봤다. 혹시나 뭔가 빠진 것이 없는지 살펴봐야 했다. 어, 그런데 우리 팀이 주관하는 비용 항목은 있는데 사용내역과 잔액은 찾을 수가 없었다. 급하게 서류를 만드느라고 누락했나 싶어서 담당자인 윤 사원을 불러서 자료를 요청했다. 그리고 서비스 혁신을 위해 가맹점 서비스 지표를 관리하는 곽 대리를 불렀다. 현장에서 있을 때 서비스 지표 산출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기에 이것부터 손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곽 대리. 전년 대비 VOC(고객의 소리) 유입이 확 줄었는데 이거 어떻게 이렇게 개선된 거예요."
"과거와는 달리 엄격하게 벌과금을 부여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요? 잘했네요. 그런데 단순 불만 유입 건도 이 결과치에 포함되어 있는 거예요? 과거에는 그것도 서비스율 산출 때 포함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뭔가 찔리는 것이 있는지 곽 대리는 대답을 하지 않고 약간 얼굴을 붉혔다. 나는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허위로 눈속임을 하면 안 된다, 실질적인 서비스율 개선이 중요하다고 좋은 말로 설명하고, 다시 산출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그에게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팀장님, 말씀대로 하면 곤란한 일이 생깁니다."

- 다음 편에 계속 -

※ 프로크루스테스: 그리스 신화 속 악당. 행인을 붙잡아 철 침대에 눕히고 행인이 침대보다 길면 다리를 잘라 죽이고 침대보다 짧으면 다리를 늘려 죽였다는 일화의 주인공.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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