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정자로 인공수정해 낳아도 친자식?…'친생추정 예외' 논쟁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작성 2019.05.22 16:38 수정 2019.05.22 18:4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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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2일) 대법원에서 남편의 동의하에 타인의 정자로 인공 수정한 자녀를 법적으로 친자식으로 볼 수 있는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쟁점은 다른 사람의 정자로 임신 및 출산했다는 사실이 인정된 경우에도 민법상 친생자 추정 원칙을 고수해야 하는 지였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오늘 대법정에서 A씨가 자녀들을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 소송 상고심 사건의 공개 변론을 열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했습니다.

A씨 부부는 A씨의 무정자증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자 1993년 다른 사람의 정자를 사용해 인공수정으로 첫째 아이를 낳은 뒤 두 사람의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마쳤습니다.

이후 1997년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무정자증이 치유된 것으로 착각한 A씨가 이번에도 부부의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했습니다.

2014년 가정불화로 아내와 이혼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둘째 아이가 혼외 관계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고, A씨는 두 자녀를 상대로 친자식이 아니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이 시행한 유전자 검사결과 두 자녀 모두 A씨와 유전학적으로 친자관계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2심이 기존 판례에 따라 "친생추정 예외사유에 해당하는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고, A씨는 상고했습니다.

현재 판례는 부부가 동거하지 않았을 때 생긴 자녀만이 친생자 추정 원칙의 예외로 인정되는데, 이 사건 재판에서는 이 예외사유를 남편과 자식의 유전자가 달라 혈연관계가 아닌 사실이 확인된 경우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는지가 쟁점입니다.

오늘 공개 변론에선 "인공수정에 동의한 남편이 뒤늦게 친생자 추정을 부정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과 "인공수정에 대한 동의는 아이를 낳기 위한 의료행위에 동의한 것일 뿐이지 친생자라는 법적 효력까지 동의한 것은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맞붙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83년 판결에서 '부부가 동거하지 않았다는 사실 등 명백한 외관상 사정이 존재한 경우에만 친생자 추정이 깨질 수 있다'며 예외사유를 좁게 인정했습니다.

유전자 확인기술이 발달한 현재 사정을 고려할 때 이 같은 36년 전의 판례를 바꿀 필요가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A씨 사건이 회부됐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친생추정의 예외를 인정할 필요가 있고, 그 범위는 과학적 방법으로 혈연관계가 성립하지 않음이 명백하게 확인된 경우로 한정함이 타당하다"면서도 "'제삼자 인공수정'에 남편이 동의한 경우에는 신의칙과 금반언의 원칙에 따라 친생 부인 주장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의견을 냈습니다.

반면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상담사례 중 친자관계 관련 상담이 꾸준히 늘고 있고 그 중 민법상 친생추정 규정으로 출생신고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녀의 복리, 인권 보호 등을 고려해 법원이 친생추정의 예외를 인정하는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대법원은 공개변론에서 논의된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올 하반기에 판례변경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