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승리, 정준영에겐 있었고 김학의에겐 없던 것

구속 결정 전 피의자 '계구(戒具)' 착용, 왜 그때 그때 다를까?

박수진 기자 start@sbs.co.kr

작성 2019.05.20 11:33 수정 2019.05.20 15:2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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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승리, 정준영에겐 있었고 김학의에겐 없던 것
구속 전 피의자 심문, 흔히 영장실질심사라고 불립니다. 피의자를 구속 수사하려면 '구속 영장'이 필요하고, 그 영장을 발부하는 권한은 법원에 있습니다. 수사기관으로부터 구속영장을 청구받은 판사는 피의자를 불러 직접 심문을 하고 영장의 발부 여부를 결정합니다. 판사가 직접 심문하는 이 과정이 영장실질심사입니다.
 
 
지난 14일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나오는 가수 승리의 모습(왼쪽). 지난 16일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나오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모습(오른쪽). ● 5월 14일, 가수 승리의 영장실질심사

외국인 투자자에게 성매매를 알선하고, 클럽 버닝썬 자금을 횡령한 의혹 등을 받아온 가수 승리. 승리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지난 14일 오전 10시 반,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습니다. 2시간 넘게 진행된 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원 밖으로 나오는 승리의 양 팔은 포승줄로 묶여 있었고, 그의 양 옆에 선 경찰은 승리의 묶인 팔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승리는 그런 모습으로 약 30초를 걸어 차에 올라탔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엔 답하지 않았습니다. 이 차는 대기장소인 서울 중랑경찰서 유치장으로 향했습니다. 승리에게 적용된 혐의는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식품위생법 위반 등입니다.

● 5월 16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영장실질심사

건설업자 윤중천 등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하고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김 전 차관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지난 16일 오전 10시 반,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습니다. 3시간 동안 진행된 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원 밖으로 나오는 김 전 차관의 양 팔은 자유로웠습니다. 양 옆에 검찰 관계자들이 서있긴 했지만 그의 팔이나 신체를 붙잡진 않았습니다. 김 전 차관은 그런 모습으로 약 30초를 걸어 차에 올라탔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엔 답하지 않았습니다. 이 차는 대기장소인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했습니다. 김 전 차관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입니다.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구속 결정을 기다리기 위해 대기 장소로 이동하는 '동일한' 상황, 게다가 승리와 김학의는 같은 법원에서, 같은 판사에게 영장실질심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요?
검찰과 경찰은 관련 법에 근거해 도주, 자해, 타인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우려가 있을 경우 포승줄이나 수갑을 사용할 수 있다.  ● 구속 결정 전에 포승줄을 묶는 이유는? "도주 우려"

일단 구속 여부가 결정되기 전에 포승줄을 묶는 이유부터 알아봤습니다. 검찰과 경찰 모두 '도주 우려'를 꼽았습니다.

검찰 측은 '검찰 호송·인치 업무지침'에 근거해 도주 우려가 있을 땐 수갑, 포승줄 등 계구(戒具· 피의자가 도주, 폭행 등의 우려가 있을 때 이를 억제 하기 위해 쓰는 도구)를 사용해 도주 방지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도주 우려'란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는 동안의 도주 우려라고 덧붙였습니다. 법원에 도착하고, 법원 안에서 심사를 받고, 법원에서 다시 대기장소로 이동하고, 대기장소(유치장 또는 구치소)에서 기다리는 동안 도망갈 가능성이 있는지를 따져서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경찰도 비슷합니다. 경찰 측은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에 근거해 도주 우려, 자해, 타인에 위해를 가할 수 있을 때 포승줄이나 수갑 등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인권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수갑이나 포승줄이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가리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검찰과 경찰의 설명대로라면, 김 전 차관의 수사를 맡았던 검찰은 김 전 차관이 도주 우려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고, 승리의 수사를 맡았던 경찰은 승리가 도망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셈입니다.

● '도망갈 가능성'은 누가, 어떤 근거로 판단할까?

그렇다면 '도망갈 가능성'은 어떻게, 또 누가 판단할까요? 정답은 수사기관의 '재량'입니다. 명문화 된 근거는 없습니다. 사건을 맡은 수사 담당자들의 재량에 따라 어떤 피의자는 포승줄에 묶고, 어떤 피의자는 묶지 않습니다.

김 전 차관은 왜 묶지 않았을까요? 검찰 관계자는 "김 전 차관은 검찰의 소환 조사에 응해 직접 출석해 조사를 받았기 때문에 도주 우려가 적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통상 검찰에서는 특수부 사건의 경우는 구속 전까진 통상 도주 방지 조치를 하지 않는다"고도 말했습니다. "강도, 살인 등 형사범들의 경우는 도주 우려가 높지만 특수부 사건의 피의자가 영장실질심사 진행 중 도망갈 가능성은 적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특수부 사건'이란, 검찰 특수부가 수사하는 사건을 의미합니다. 검찰 특수부는 주로 대기업, 정치인 수사 등 시쳇말로 '굵직한' 사건을 주로 수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승리는 왜 묶었을까요? 경찰 관계자는 "포승줄이나 수갑 사용 여부는 현재까진 수사를 진행한 담당자들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포승줄에 묶인 모습이 공개됐던 승리는 영장이 기각돼 '포승줄을 푼 모습으로' 집에 돌아갔습니다. 김학의 전 차관은 포승줄에 묶이지 않은 상태로 구치소로 이동해 대기하다가 구속영장이 발부돼 바로 수감됐습니다. 승리는 구속을 면했지만 '포승줄에 묶여있는' 수백여 장의 사진과 기록을 남겼습니다. 김 전 차관은 구속이 됐지만 아직까지(20일 오전 현재) 그가 포승줄에 묶인 모습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포승줄 묶여 법원 나오는 박유천 (사진=연합뉴스)비단 승리와 김학의 만의 사례는 아닙니다. 불법 촬영한 영상을 SNS 대화방에서 불법 유포한 가수 정준영, 마약 투약 혐의를 받은 배우 겸 가수 박유천도 포승줄에 묶인 채로 영장심사를 받았고 구속됐습니다. 반면, 사법 농단의 정점에 있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포승줄에 묶이지 않았지만 구속이 됐습니다. 올해 초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으로 영장심사를 받은 김경수 경남지사, 수행비서 성폭행 의혹으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도 영장심사 과정에서 포승줄을 묶거나 수갑을 채우지 않았습니다.

●수사 기관 재량 존중하지만…국민 공감 가능한 근거 있어야

검찰은 작년에도 계구 사용과 관련해 뼈아픈 논란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 해 12월, 세월호 유족 불법사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 투신 사망한 고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 사건입니다. 이 전 사령관은 숨지기 사흘 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했습니다. 당시 검찰은 이 전 사령관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고 이를 가리기 위해 검찰 로고가 박힌 검은 천을 씌웠습니다. 이 전 사령관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 됐지만, 그는 사흘 뒤 안타까운 선택을 했습니다.
세월호 유족 사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고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지난 해 12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이 전 사령관 측은 이를 두고 '검찰의 의도적 망신주기'라고 주장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은 물론 앞서 언급한 김경수, 안희정 전 시자의 영장심사 때는 포승줄, 수갑 등 어떠한 계구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였습니다. 검찰은 당시 "지침에 따라 원칙에 따라 집행 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모든 피의자를 다 묶어야 한다 혹은 다 묶지 않아야 한다, 모두 정답은 아닙니다. 사건의 내용을 가장 잘 알고, 또 도주 가능성을 포함해 피의자의 특성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수사 기관의 판단이 존중돼야 하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 판단엔 국민들도 공감할 수 있는 근거가 분명 있어야 합니다.

당장 '김학의 전 차관은 스스로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았기 때문에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검찰의 설명을 들은 사람들 중에 일부는 김 전 차관이 지난 3월 해외로 몰래 출국 하려다 저지 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저처럼 고개를 갸웃거릴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