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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한국 학교, 덴마크 학생…무엇이 날 힘들게 했나

에밀 라우센 | 한국인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15년째 한국서 살고 있는 덴마크 남자

[인-잇] 한국 학교, 덴마크 학생…무엇이 날 힘들게 했나
18살의 나이에 고국 덴마크를 떠나 홀로 '미지의 땅' 한국에 오기로 결심했던 건 나의 남다른 성향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다른 학생들과는 조금 다른 아이였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오른쪽을 선택할 때 나는 왼쪽에 더 끌리는 식이었다.

당시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거다. 어떤 면에서 나의 10대는 가혹한 시기였다. 14살 때 뇌종양을 앓았고, 18살 때는 암을 진단받고 투병을 시작해야 했다. 병마와 싸우며 긴 시간 동안 우울증도 피하지 못했다. 18살의 나는 '아픈 에밀'이 아닌 새로운 정체성을, 새로운 곳에서 찾고 싶었다.

처음엔 YMCA를 통해 한국에 와서 사회복지 관련 봉사 활동을 하며 1년을 보냈다. 이후 다시 덴마크에 돌아갔지만, 곧 한국이 너무나 그리워졌다. 그즈음 한국 대학에서 장학금 제의를 받게 됐고, 나는 새 인생에 대한 기대를 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적응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나의 존재가 '에밀'보다는 그냥 '이방인' 혹은 '외국인' 같다고 느끼던 때도 있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데도, 사람들은 나를 '미국 사람' 취급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국 대학에서의 수업은 내가 덴마크에서 받아온 것과는 많이 달랐다. 덴마크에서 나는 선생님이 알려준 모든 것에 질문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또 만약 선생님의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드러내 말하도록 교육받았다.

학교에서는 동의하지 않을 때 언제 반대 의견을 말해야 할지, 그리고 언제 멈춰야 할지를 배우고 연습했다. 감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나의 의견과 감정을 전달하고, 상대에게 초점을 두는 대신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며 토론하는 것이 수업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러한 토론은 가끔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고 미숙해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선생님들이 도움을 준다.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개진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돕고, 필요할 때에는 개입해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교육 환경에서 자란 나는 한국에 와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교육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한국의 대학 수업에서 나는 지식 외에 내 주변의 권위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같은 한국적 예의와 규범을 배워야 했다.
필자 에밀 라우센 (본인 제공)
교육 환경뿐 아니라 그 내용과 방식도 적응이 쉽지 않았다. 특히 암기 위주의 단답형 시험은 자주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암기 중심 수업에서 나는 늘 최악의 점수를 받았고, '한국 친구들은 정말 잘 외우고 점수를 잘 받는데 나만 왜 이럴까?' 하며 나를 탓하게 됐다. 학교에 대한 소속감마저 잃을 지경이었다.

아뿔싸! 어느새 나는 시험 점수로 나의 가치를 평가해버리기 시작했고, 배움 자체에 회의가 들기도 했다. 이런 어려운 시기 다시 나를 일어서게 한 것은 대학 친구들과 교수님들이었다. 교수님들은 학문적인 가르침뿐 아니라 인생의 길을 인격적으로 보여줬다. 나의 삶을 궁금해하고 진심으로 염려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서서히 한국에서 '외국인'이 아니라 '에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정체성을 회복해갈 수 있었다. 한국의 학교 시스템은 낯설고 어려웠지만, 그 속의 사람들은 나를 위로하며 새롭게 도전하고 적응할 힘을 줬다.

돌이켜보면 7년 동안의 한국 대학, 대학원 시절은 힘들었지만 소중한 시간이었다. 따지고 보면 덴마크에서 교육을 받았더라도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있었을 거다. 덴마크의 교육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사실 덴마크에서는 한국의 학구열과 교권 존중을 부러워한다).

그래도 나의 어린 딸 리나를 위해서라도 한국의 교육 방식과 내용이 좀 더 창의력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했으면 한다. 시험을 통한 경쟁과 '맞고 틀리고'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 토론을 통해 '함께 어떻게'를 고민하는 교육이 될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내가 대학 생활을 처음 시작한 때가 벌써 13년 전이니, 한국 교육에 이미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은 언제나 도전과 노력을 멈추지 않는 나라이기에. 한국의 모든 학생들이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 이 원고는 인-잇 편집팀의 윤문을 거쳤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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