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지미 헨드릭스의 생일

이세형 | 퓨전 재즈밴드 '라스트폴'의 기타리스트

SBS뉴스

작성 2019.05.16 11:00 수정 2019.05.17 18:0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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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한 형님과의 술자리에서 그 형님의 친구분과 합석을 하게 되었다. 인사를 드리고 하는 일을 소개하며 명함을 드렸더니, 자기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게 부럽다며 반겨 주셨다. 음악을 듣고 악기를 연주하는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취미이다 보니 음악을 만들고 기타 치는 것을 업으로 하고 산다고 하면 대부분의 반응이 이렇게 호의적이거나 신기해하는 편이다.

잠시 후 술이 조금 들어간 후 이 친구분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내가 기타 치는 사람이라 그런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와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이야기를 늘어놓으신다. 유명한 앨범과 곡들을 이야기하기에 음악에 조예가 깊은 편이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에게 지미 헨드릭스 생일이 언제냐고 물어보신다.

내가 모른다고 했더니, 뮤지션이 그것도 모르냐며 핀잔을 주고는 이내 뮤지션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 훈계를 시작하신다. 순간 약간의 짜증이 나긴 했지만 이러한 경험을 아주 가끔 하는 편이다 보니 이날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내가 음악 평론가이거나 음악사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지미 헨드릭스의 생일은 내가 알고 있어야 할 지식일 수 있다. 하지만 기타 치는 사람이 알아야 하는 지미 헨드릭스에 대한 지식은 그의 생일이 아니라 그의 연주가 왜 일렉트릭 기타라는 악기를 록 음악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올려놓았는지, 펜타토닉(pentatonic)이라는 가장 기본적이고 쉬운 음계를 사용함에도 그가 어떻게 현재까지도 기타의 신으로 추앙받는 독특한 연주를 했는지 등일 것이다.

사실 기타를 직접 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지미 헨드릭스에 대한 걸 지식으로써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의 곡을 직접 연주해봄으로써 체득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심지어 기타를 연주한다 하더라도 록이 아닌 재즈나 다른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미 헨드릭스는 그저 이름만 들어본 사람일 뿐, 그들에겐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나,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가 더 의미 있는 이름일 수 있다.

지식은 어떠한 대상을 이해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자신이 가진 지식에 스스로 권위를 부여하는 순간 오만으로 흐르기 쉽다. 게다가 어떠한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아무리 많은 지식을 습득한다 해도 그 대상을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온전히 안다고 할 수도 없다. 이성보다 감성과 경험을 중시하는 예술의 경우에는 더더욱 지식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게 위험할 수 있다.

유명한 기타리스트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는 것과 기타라는 악기를 치는 행위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한 분 때문에 나의 생각이 쓸데없이 여기까지 와버렸다. 오랜만에 지미 헨드릭스의 곡들을 연주해봐야겠다. 그것이 그를 기억하는 나의 방식이니까.

P.S. 참고로 지미 헨드릭스의 생일은 1942년 11월 27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생일보다 1969년 8월 17일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마지막 연주를 더 많이 기억하며,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약물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난 것을 안타까워하며 그를 추억한다.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