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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호기심 때문에 그랬다"는 불법 촬영범…그들은 왜 '몰카'를 찍을까

[취재파일] "호기심 때문에 그랬다"는 불법 촬영범…그들은 왜 '몰카'를 찍을까
● 하루 18건 꼴로 발생하는 '불법촬영' 범죄
2019년 5월 3일 SBS 8뉴스
지난 5월 2일 오후, 서울 지하철경찰대는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던 여성의 다리 부위를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하던 한 남성을 불법촬영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이 남성의 휴대전화에서는 다른 여성들을 몰래 촬영한 영상 여러 개가 더 나왔다. 왜 그랬냐는 질문에 체포된 남성은 "호기심 때문에 그랬다"라고 답했다.

포털 사이트에 '불법촬영' 혹은 '몰카'라는 낱말을 넣어 검색해보면 최근 사건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5월 7일에는 부산에서 '몰카'용 휴대전화 공기계로 여성의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한 30대 남성이 붙잡혔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 남성은 작년 7월 같은 범행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받았는데 1년도 지나지 않아 또 범행, 체포됐다. 2017년 사법당국에 확인된 불법촬영 범죄는 6,615건, 하루 18건 꼴이었다.(아직 2018년 범죄 집계는 완료되지 않았다) 2016년 5,249건에서 25% 넘게 늘어났던 건데 2018년엔 더 늘었을까, 줄었을까.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이달 초 불법촬영 사건 판결문을 분석한 기사를 연속으로 내보냈다. 계기는 단순했다. 유명 연예인의 불법촬영 범죄와 유포 행태가 드러난 상황을 보니 불법촬영 전반의 실태가 궁금했다. 작년과 재작년 이미 불법촬영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정부까지 나서 특별대책을 발표했고(2017년 9월) 관계부처 수장들이 "불법촬영은 영혼을 파괴하는 반문명적 범죄"라며 합동 메시지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2018년 6월). 불법촬영을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게 과연 저 연예인들만의 문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가 내놓은 '특단의 대책' 이후 상황은 달라졌을까 아닐까. 불법촬영 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여러 이유 중 "처벌이 가벼워서 그렇다"라는 게 정말 그런지도 확인해보고 싶었다.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은 제외하고 확정판결이 난 사건을 살펴보는 게 확실하겠다 싶어 판결문을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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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불법촬영 판결문 432건 분석해봤더니…

불법촬영 범죄는, 정확하게는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14조 '카메라등이용촬영' 위반 범죄다. 판결문에 죄명이 명시되기 때문에 '카메라등이용촬영' 어구가 포함된 판결문을 전부 수집했다. 2018년 1월~12월 선고일 기준으로 서울 5개 지역 법원 판결문만 추리니 755건이었다. 전국 법원 판결문과 비교하면 30% 정도 분량이다. 항소심은 제외했고 주된 범죄가 불법촬영인 사건만 따로 골라냈다. 불법촬영보다 기본 형량이 높은 다른 범죄가 포함돼 있다면 선고형량을 분석하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예를 들어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여러 죄 중에 불법촬영도 있었고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는데(항소심에서는 무기징역) 이런 사건을 걸러낸 것이다.

2018년 서울 5개 법원 판결문만 분석한 또 다른 이유는 선행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2011년 1월~2016년 4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2017년 1년 동안 서울 5개 지역법원의 불법촬영 1심 판결문을 분석해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이전 판결과 비교할 수 있겠다 싶었다. 기자로서 연구자와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때로는 더 깊이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렇게 판결문 432건의 범죄 사실과 양형이유 등을 정리, 분석하고 취재해 "불법촬영 사진 1장에 죗값 7만9천 원-판결문 432건을 통해 본 '불촬' 대한민국" 시리즈 기사 3편을 출고했다. 취재하고 기사를 쓰면서 들었던 생각,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면... 놀라웠다. 불법촬영 범죄는 예상보다 훨씬 많았고 판결문에 담긴 범죄 사실은 때로는 추악했으며, 양형 이유 상당수는 기자 입장이든 시민 입장에서 읽든 이해하기 어려웠다.

● "범행이 처음" 아니라 "잡힌 게 처음"인 불법촬영 초범
[마부작침]
먼저 '초범'이다.

불법촬영의 '초범'은 전과 유무를 따지는 초범과는 좀 다르다. 통상 초범이라고 하면 처음 범행을 저질렀다는 의미. 호기심이든, 일시적 충동에 의한 실수든, 같은 범행을 여러 차례 하지 않았고 상습범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판결문은 사건기록과 달라 피고인에 대한 상세 정보가 담겨 있지 않고 더군다나 대법원은 판결문 열람서비스를 제공하며 피고인을 포함해 등장인물 대부분을 비실명처리했다. 따라서 <마부작침>은 판결문에서 이런 점은 피고인에게 유리하고(감경 요소), 이런 점은 불리하다(가중 요소)라고 적힌 양형 이유에 초범이라거나 동종 범죄 전력이 없다고 적시했다면 '초범'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불법촬영 판결문의 초범은, 초범 같지 않은 초범이었다. <마부작침>은 각 판결문에 나온 범죄사실을 근거로 범행 횟수를 따로 정리했는데 초범이라며 형을 감경받은 피고인의 범행 횟수가 오히려 전체 평균보다 더 많았다. 황당한 결과였다.(전체 평균 범행 횟수 12.5회, 초범 평균 15.0회) 또 범행 횟수가 2회 이상인 비율, 5회 이상인 비율을 따져봐도 역시 전체 평균에 비해 초범이 더 높았다. 불법촬영한 사진과 영상이 수십, 수백 개씩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잡힌 게 처음"일뿐, "범행이 처음"인 건 아닌데 초범으로 대우받았다.

● '묻지 마 불촬'...특정할 수 없는 피해자는 피해자가 아니다

다음은 피해자.

이른바 '묻지 마' 살인, '묻지 마' 폭행 등에 대해 대중의 공포가 큰 건, 평소 원한이 있거나 금전 문제로 인한 갈등 등의 이유가 없는데도 단지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기에 살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능한 데서 오는 공포다. 불법촬영 범죄의 상당수가 그렇다. '묻지 마' 불촬, 걸리는 대로 찍는다. 마지막 피해자의 신고로 인해, 혹은 범행 순간 검거됐을 때 과거 수십, 수백 회의 범행이 드러나도 피해자 신원이 확인되는 건 1-2명에 그치는 건 불법촬영 범죄의 대표적인 특성 중 하나다.

판결에 이를 반영하는 게 물론 쉽지는 않다. 그래서일까, 특정할 수 없는 피해자는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 같은 선고 결과가 나온다. 수십 명이 피해를 봤다는 증거는 확인됐으나, 신원 확인된 피해자 1명과 합의를 했다면 벌금형 선고. 피해자가 1명인 사건과 양형에 별 차이가 없는 결과가 빚어진다.

● 증가하는 불법촬영, 급증하는 용변 촬영
여자 화장실 따라가 천장서 몰카 찍다 걸린 군인의 황당한 변명…'만세 했다
이번 분석에서 눈에 띈 건, '용변 장면' 촬영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2017년 여성정책연구원의 분석에서는 비중이 크지 않아 탈의 장면과 함께 기타로 분류, 전체의 4.9%였던 용변 장면 촬영이, 2018년 <마부작침> 분석에서는 18.8%로 껑충 뛰었다.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불법촬영한 사건 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6건), 휴대전화를 이용해 용변 장면을 불법촬영한 사건은 432건 중 75건이나 됐다. 화장실에 침입해 불법촬영했다는 범행의 계획성과 적극성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양형은 썩 다르지 않았다. 실형과 집행유예 비율은 전체에 비해 조금 더 높지만(실형-전체 10.0%, 용변 장면 촬영 14.8%, 집행유예-전체 40.7%, 용변 장면 촬영 48.1%, 벌금형-전체 46.8%, 용변 장면 촬영 35.8%) 평균 형량은 실형의 경우 전체 평균보다 1.9개월, 벌금형은 45만 원 정도 더 많을 뿐이다. (집행유예는 비슷)

처음엔 여성의 다리 등 신체부위 불법촬영을 주로 하다가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용변 장면 불법촬영을 하다 적발된 사건 판결문은 피고인의 범행에 대해 "점점 대담해지는 양상"이라고 서술하기도 했다. '대담한 범행'에 대한 양형이 다른 범행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 그들은 왜 불법촬영하는 걸까?

불법촬영범 다수를 붙잡아 조사한 경험이 있는 경찰은 "일단 검거하면 저희가 확인하기 전까지는 '안 찍었어요' 하고 범행을 부인한다. 범행 사실이 확인되면 그다음에는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이런 얘기를 많이 한다. 조사 과정에서 왜 그랬냐고 질문하면 '호기심'이라는 변명을 많이 한다"라고 전했다.

<마부작침>이 어렵게 인터뷰한 불법촬영 피의자도 비슷하게 말했다. "정말 호기심에서 그랬어요. 어디 올리거나 그러지는 않았고 진짜 궁금해서요."

저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말 호기심 때문이라면... 이는 저들이 불법촬영을 범죄라고 인식하지 않거나 매우 희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렇다면 단기 해법은, 단속과 처벌 강화가 될 수밖에 없다.

"잡힌 게 처음"이라며 봐주고, "확인된 피해자가 한 명"뿐이라고 형을 깎아주고, "호기심에 그랬다"는 변명을 인정해주는 판결이 계속된다면 피고인조차 '재수가 없었네, 다음엔 걸리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물며 적발되지 않은 이들은 오죽하겠는가.

1년에 발생하는 불법촬영 범죄가 6천 건이 넘는데 그중 기소조차 되지 않는 범죄자가 3분의 2에 이른다는 점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적발도 쉽지 않고, 적발된다 해도 재판까지 가지 않을 확률이 66%, 설사 재판에 간다 해도 벌금형이 47%라면 범죄 예방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 성범죄는 지하철과 공중화장실 같은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서 누구나 쉽게 피해자가 될 수 있고, 확산의 속도만큼 인간의 영혼마저 빠르게 파괴할 수 있는 무서운 범죄입니다. 그것을 촬영하는 것, 유포하는 것, 그리고 보는 것 모두 명백한 범죄입니다."
-여성가족부 장관(2018.6)

"소위 '몰카'는 문명사회라면 있을 수 없는 차마 부끄러운 짓이며, 중대한 범죄행위입니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안심할 수 없고, 편안하지 않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 야만(野蠻)입니다."
-행정안전부 장관(2018.6)

저 말 그대로다. 불법촬영 근절을 위해, 처벌도 한 발 더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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