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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라돈 침대, 1년을 돌아보다

'라돈 침대 사태' 1년…평가와 과제

[취재파일] 라돈 침대, 1년을 돌아보다
'라돈 침대'가 세상에 알려진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최초 보도부터 정부 조사, 매트리스 수거와 제도 개선에 이르기까지 여러 달 동안 꽤나 떠들썩했던 사건도 제법 잠잠해졌다. 이따금 TV에 보이는, '라돈 걱정 말라'는 공기청정기나 침대 광고를 접할 때마다 어렴풋이 사건을 반추해볼 뿐이다.

한때나마 세상을 시끄럽게 한 사건들은 시간이 지나도 대부분 칼로 자르듯 딱 끝나지 않는다. 라돈 침대 사건도 마찬가지다. 보도 후 반년만인 지난해 11월, 재발 방지를 위한 정부 종합대책이 발표됐지만 폐기물 처리와 피해 보상 등 많은 일들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보도 1년을 맞아 현재 상황을 점검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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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거 대부분 끝났지만…매트리스 처리는 "빨라야 올해 말"

우체국 집배원까지 동원돼 소동을 빚었던 문제 제품 회수는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 들어갔다.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순 없지만 정부와 업체 측이 파악한 제품 대부분이 수거됐다. 원안위에 따르면 대진침대를 기준으로 총 7만 18건의 수거신청이 들어왔고 현재 7만 284개의 매트리스가 수거됐다. 수거 대상이라 할 수 있는 라돈 검출 매트리스의 2010년 이후 추정 판매분은 7만 684개 정도다.
국내 라돈 침대 수거 현황 (2019.04.30, 원자력안전위원회)
소량이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수거가 계속되고 있다. 한때 잠깐 수거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재개됐다.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하면 대진침대와 용역계약을 맺은 물류 업체가 수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더 이상 새 제품으로 바꿔주지는 않는다. 대진침대 측은 지난 12월 홈페이지를 통해 현금 자산 소진을 이유로 리콜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대진침대 측과 손해배상 소송을 벌이고 있는 피해자들의 침대는 배상 문제 등을 이유로 수거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거된 매트리스 7만여 개는 분리·해체 작업을 거쳐 여전히 천안 대진침대 본사에 쌓여 있다. 한때 보관 장소를 두고 당진이냐 천안이냐 주민들이 장외 농성까지 벌였지만 천안 본사에 보관하는 걸로 정리가 됐다. 실내외 보관된 매트리스는 라돈 방출이나 오염을 우려해 비닐 천막으로 쌓여있는 상태다.
라돈 침대 (강창완 취재파일)
문제는 최종 처리다. 한때 이 침대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두고도 논쟁이 치열했다. 모나자이트가 함유된 매트리스를 방사성폐기물로 봐야 하는지 일반폐기물로 봐야 하는지가 쟁점이었다. 방사성폐기물이면 전문 처리시설에서 처리하면 되고 일반폐기물이면 그냥 매립·소각하면 되는데 이를 판단할 기준이 없었다. 지난 2011년, 세슘이 발견돼 문제를 일으켰던 공릉동 아스팔트는 원자력안전법상 방사성폐기물로 규정돼 전용 처분시설에서 처리된 바 있지만 매트리스는 전례가 없었다.

결국 정부는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 수거된 매트리스를 처리하기로 했다. 환경부에서 폐기물 처리법 관련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해야 하는데 조만간 초안이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초안을 바탕으로 의견 수렴 및 공식적인 법 개정 절차를 거치면 제도가 바뀌는 건 빨라야 올해 하반기부터다. 매트리스 처리도 빠르면 올해 말, 혹은 내년에나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매립이냐, 소각이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소각 쪽에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한때 "소각하면 라돈이 주변 대기 환경에 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그럴 가능성은 극히 작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앞서 원안위는 소각과 매립에 따른 방사선 안전성 평가를 실시했는데 소각의 경우 환경에 미치는 방사선량은 0.010mSV/년, 작업자에게 미치는 방사선량은 0.074mSv/년으로 확인됐다.
라돈침대 캡처
● 피해 보상은 막막…대진침대의 '완전 부인' 전략?

이처럼 수거와 처리 문제는 어느 정도 매듭이 지어진 반면 보상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보상을 원하는 소비자 측과 "보상이 어렵다"는 대진침대 측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의 개별 피해자 보상 방침은 현재로서는 없기 때문에 보상은 전적으로 민사 재판에 의존한다. 현재 개별적으로 여러 건의 집단 손해배상소송이 이뤄지고 있지만 뚜렷한 진전은 없는 모양새다.

흥미로운 건 대진침대 측의 전략(?)이다. 언론 보도와 정부 조사로 사실상 결론이 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대진 측은 유독 법정에선 '완전 부인' 모드로 나오고 있다. 한 예로 가장 최근 재판이었던 지난달 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손해배상 소송 첫 변론기일에서 대진 측은 "원안위(정부)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술 더 떠 당시 누가, 어떻게 조사했는지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라고 원안위 쪽에 사실조회 신청을 했다. "국내 전문가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진 측의 이런 전략은 사실 어느 정도 예상된 바 있다. 지난해 10월, 맨 처음 열린 손해배상 재판에서도 대진침대 측은 "당시 법령을 준수했기 때문에 과실이 없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위자료 30만 원을 지급하고 매트리스를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라"는 한국소비자원의 집단조정 결정을 최종 거부했다. 조정에 불응하면 남은 길은 민사소송밖에 없기 때문에, "차라리 법정가자"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이런 이유들로 재판은 사실상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사실 이런 상황은 이번 사안을 처음부터 취재했던 기자의 입장에선 상당히 의외인 대목이다. 취재 초기부터 대진침대 측은 그래도 나름대로 인정할 건 인정하고,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사태 이후에는 자체 비용을 들여 매트리스를 수거했고 (우체국 동원 등 일부 국가가 지원한 몫도 있지만) 해체한 매트리스는 본사 공장에 보관해왔다. 현금 자산이 동난 지금도 새 제품으로 교환은 못 해줄지언정 용역업체를 통해 수거는 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분통을 칠 일이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아예 폐업하고 "못하겠다" 나자빠지는 업체가 종종 있는 걸 감안하면 완전히 무책임하다고만 볼 수는 없는 것도 일부 사실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선 "승산이 있고 없고를 떠나 대진침대 입장에선 마땅히 다른 카드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보상을 위한 금전적 여력도 부족할뿐더러 딱히 다른 수가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소비자 집단손해배상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김지예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승패를 떠나 일단 재판에서 다툴 여지가 있는 것은 다 꺼내서 다투는 게 당연한 일이긴 하다"고 말했다. 재판부 역시 이왕 법정에 온 거, 결과를 떠나 '각자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다 해보라'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물론 여기에는 사건의 특성을 고려한 '노림수'도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라돈의 인체 위해성은 이미 과학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없을 만큼 연구가 진행됐지만, '라돈 침대'라는 사례 자체는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라돈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과 라돈이 나오는 침대를 어떻게, 얼마나 사용해서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입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만약 피해 보상액을 산정한다면, 구체적으로 사용자가 얼마나 건강에 위해를 입었는지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원자력 분야에서 통용되는 '방사선 노출에 관한 한 선형 모델(linear model)'에 따르면 100mSv의 방사선에 노출되면 1,000명 중 4명이 암에 걸리고, 10mSv로는 10,000명 중에 4명이, 1mSv로는 100,000명 중에 4명이 암에 걸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에서 라돈으로 인한 광부들의 폐암 발생 가능성을 입증할 때 오랜 연구가 이뤄졌다는 걸 감안하면, 역시 완전한 입증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대진침대 '라돈 피해 소비자에 30만원 지급' 수용불가 통보
물론 그렇다고 재판 결과가 뒤집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 라돈의 위해성은 이미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됐고, 여러 법령을 따져 봐도 라돈 침대는 '생산되어서는 안 될'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학적 입증이 쉽지 않긴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 대통령이 문제 해결을 지시할 만큼 사회적으로도 충분히 결론이 난 사안이다. 다만 충분한 보상 여력조차 없는 상황에서 대진 측이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동원해서라도 시간을 벌고, 보상 액수를 낮추고자 하는 의도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그 의도와는 반대로 재판은 곧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원안위 측은 SBS와의 통화에서 "대진침대 측에서 요청한 사실조회 요청서를 거의 완성한 단계"라면서 조만간 재판부 측에 이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수사도 지지부진…1년 가까이 감감무소식

검찰 수사도 지지부진하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5월, 소비자 132명이 라돈 침대 사용으로 신체적 피해를 입었다며 상해·사기 혐의로 대진침대를 청주지검에 고소했다. 비슷한 시기, 대한의사협회도 라돈 침대 소관 부서인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직무유기로 고발했다. 사건을 병합해 넘겨받은 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품조사부가 두 달 만인 지난해 7월, 충남 천안의 대진침대 본사와 공장을 압수수색했다. 당시 대진침대 실무자급 관계자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사실상 언론에 알려진 마지막 소식이다. 이후 1년이 다 되도록 검찰의 공식 답변은 "수사 중"이다.

사실 지지부진한 수사는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해당 수사의 관건은 '대진침대가 매트리스의 문제를 알고도 판매했는지' 여부다. 업체 측이 인체 유해성을 인지하고도 매트리스 제작과 판매를 계속했다면 사기죄로 처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검찰 측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미 보도된 대로 그럴 가능성은 처음부터 상당히 낮아 보였다. 당시 대진침대와 하청업체 측이 라돈의 개념조차 모른 채 그저 '음이온 효과'만 보고 원인물질인 모나자이트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검찰 일선에서도 이런 난감한 분위기도 읽힌다. 서부지검 고위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직 확인할 것이 남아서 수사가 길어지고 있다"면서도 "조만간 끝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검찰 관계자는 "원인 물질(모나자이트)을 사용해 침대를 제작한 하청업체는 몰라도 대진침대의 경우 재판에 넘기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결과가 크게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검찰에 "이렇게 될 거 무엇하러 이렇게 질질 끌었냐"는 비판이 쏟아질 가능성도 작지 않아 보인다.,

● '라돈 침대' 사용자 건강과 피해 조사는?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이 지점이다. 라돈 침대를 사용한 소비자들이 얼마나, 또 어떻게 건강에 피해를 입었는지 혹은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분야야말로 가장 진전이 없다. 사건 직후 사회적참사 특조위와 여러 환경 관련 시민단체가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사용자 전수조사 및 코호트(등록 및 추적관찰 시스템) 구축 등을 촉구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원자력의학원에서 침대 사용자들에게 건강 상담을 제공하는 게, 사실상 관련 조치의 전부다.

피해를 입증하고 혹시 모를 질병에 대비하는 것은 오롯이 소비자의 몫으로 남았다. 폐 질환을 염려하는 침대 사용자들의 경우 지금까지 계속 모임을 갖고 있는데 각자 민사 소송에 대비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다. 특히 5년 이상 해당 침대를 오래 사용한 장기 사용자들은 각자 알아서 병원에 다니며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자료를 축적하고 있다. 물론 비용은 100% 자기부담이다.
라돈침대 캡처
라돈의 특성상 질병이 금방 나타나지는 않는다. 문제는 시간이 지난 다음이다. 지난 1994년 북미와 유럽 등 11개국에서 지하 광부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라돈-폐암 발병 조사에 따르면 총 60606명 가운데 2674명이 폐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연구의 추적 기간은 최소 5년에서 20년이었다. 시간이 지나야 병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피폭량이 적은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라돈 노출이 100Bq/㎥만큼 늘어날 때마다 7~16% 정도 폐암 발생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문제가 된 침대의 경우 종류에 따라 최대 2~3천 Bq/㎥이 나오는 제품도 있었다. 확인된 라돈 침대의 피폭선량 자체로 봤을 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사실은 원자력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아직 피해가 명확히 드러난 것은 없고 우려만 되는 상황"이라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 이로 인한 불안은 고스란히 이용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최예용 사회적참사 특조위 부위원장은 이에 대해 "사용자 데이터를 구축하는 건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할 일이고 그것이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남긴 교훈"이라면서 "이대로라면 사실상 시민들이 우려하는 제2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이어지리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염려했다.

●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일

기자는 1년 전 이맘때 라돈 침대 사건을 처음 보도했다. 당시 라돈 관련 기획기사를 함께 준비하던 국회 비서관(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실 허준영 비서관)으로부터 처음 이야기를 듣고 약 한 달 동안 침대업계와 의료계, 학계 관계자들을 취재해 보도를 내보냈다. 정신없이 취재하고 기사를 쓰던 어느 날 한 피해자모임에 참석했던 경험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이를 업고, 부둥켜안은 채 전국에서 모여든 침대 사용자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보도의 무게를 실감했다. 1년이 지난 기사를 다시 꺼내 돌아보는 이유는 그래서다.

이 사건은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일이다. 국가로부터 방치된 유사과학이란 상술과 허술한 제도의 사각지대 사이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수년을 침대에서 보낸 이들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을 불안에 떨지 모른다.

비단 개인의 일만은 아니다. 지난 1년간 이 일로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 들어갔다. 나아진 게 있는가 하면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부분도 많다. 일부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기꺼이 비용을 지불해 온 건 적어도 건강과 안전에 관한 일이라면 더 나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시민의 바람 때문이었다. 지나간 일에서 교훈을 얻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라돈 침대'를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 '라돈침대 파문' 그 후 1년…여전한 '발암 음이온'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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