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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나는 '애완동물'이 불편하다

이학범 | 수의사. 수의학 전문 신문 『데일리벳』 창간

[인-잇] 나는 '애완동물'이 불편하다
운전 중에 라디오를 많이 듣는 편이다.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여느 때처럼 라디오를 들으며 운전하던 중이었는데, 거슬리는 문장이 귀에 들어왔다. "요즘 집집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많잖아요. 저도 그렇고요."

사연을 보낸 이는 어릴 때 초등학교 앞에서 100원에 사서 키웠던 병아리부터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반려견에 이르기까지 동물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사연에 담았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사연 중간중간 나오는 '애완동물'이라는 단어가 자꾸 귀에 거슬렸다.

라디오를 들은 뒤 일주일간 집중해서 주변을 살폈다. 마트 정문에서, 인터넷 기사에서, 심지어 동물원 안내문에서까지 곳곳에서 '애완동물', '애완견'이라는 단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대체 왜 '애완동물'이라는 단어가 거슬리는 것일까? 나는 프로불편러일까? 이유는 애완의 '완'자에 있다.

● 애완동물의 '완'이 문제다

애완의 '애'는 사랑 애(愛)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그런데 '완'은 희롱할 완(玩)이다. 심지어 희롱하다는 뜻 외에 장난하다, 놀이하다, 깔보다, 업신여기다, 얕보다, 장난감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완구할 때 '완'이 바로 이 희롱할 완이다.

결국, '애완동물'은 '사랑스러운 장난감 동물'로, '애완견'은 '사랑스러운 장난감 개'로 해석된다.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애완동물의 속뜻을 알고 나니 그 뒤부터는 '애완'이라는 단어가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 애완동물 대신 반려동물

그렇다면, 애완동물 대신 어떤 단어를 사용하면 좋을까? 우리에게는 이미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라는 좋은 단어가 있다. 반려동물의 '반려'는 짝 반(伴)과 짝 려(侶)다. 평생 함께하는 짝, 동반 동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동물행동학자였던 콘라드 로렌츠 박사가 처음으로 'pet' 대신 'companion animal'이라는 단어를 쓰자고 제안했고, 우리나라에서는 companion animal을 어떻게 해석할지 '동반동물'과 '반려동물' 2개 후보를 놓고 투표까지 한 끝에 '반려동물'이 최종 선정됐다.
(사진 출처=유토 이미지)
● 반려동물 사육 인구 1500만 명 시대에 아직도 애완동물이라니!?

2017년 한국펫사료협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림축산검역본부가 각각 2000명에서 5000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반려동물 사육 현황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펫사료협회 설문에서는 563만 가구, 농촌경제연구원 설문에서는 574만 가구, 검역본부 설문에서는 593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으로 조사됐다. 평균을 내면 577만 가구다. 여기에 가구당 평균 인구를 곱하면, 반려동물 사육 인구는 약 1481만 명에 이른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바야흐로 약 600만 가구 1500만 명에 이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매년 10만 마리 이상의 동물이 버려지고 있다. 매일 300마리의 동물이 반려동물에서 유기동물이 되는 것이다. 자동차에 개를 묶어 끌고 다니는 사람, 새끼 강아지가 변을 먹는다고 분양샵에 다시 가서 강아지를 집어 던진 사람, 호텔이라고 해서 맡겼더니 동물을 던지고 발로 찬 업주 등 잔인한 동물학대도 끊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반려동물 사육 인구 1천500만 명 시대에 맞는 동물 존중 의식을 갖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동물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애완동물', '애완견'이 아니라 '반려동물', '반려견'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춘수 시인은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에게 본질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제부턴 의도적으로라도 애완동물, 애완견 대신 반려동물, 반려견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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