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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법원 노조가 주장하는 '법원-검찰의 유착 의혹'

● 대형 플래카드가 법원에 걸리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정동과 서울고등법원 법정동 외벽엔 지난달 말부터 노란색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습니다. 플래카드는 정치적 의사 표현의 방식 중 하나입니다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할 법원에 보란 듯이 걸려 있어서 궁금했습니다. 서초동에 출입하면서 한 번도 목격한 적 없는 풍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단순히 봄이 왔기 때문에 걸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플래카드는 '법원과 검찰의 유착 의혹'을 담고 있었습니다.
지난 달 25일부터 3주간 서울법원종합청사 법정 건물 위에 걸려있던 플래카드
● 법원과 검찰의 유착 의혹이라니?

이런 유착 의혹을 주장한 것은 다름 아닌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 본부였습니다. 누군가가 죄를 저질렀다면, 그 사람의 죄를 법정에서 입증하는 역할은 검찰만이 할 수 있습니다. 검찰이 법정에서 변호인의 논리를 깨부수고, 재판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수사 과정에서 필요한 사실관계를 탄탄하게 수집해야 합니다. 그래서 피의자를 상대로 압수수색도 하고 때로는 구속수사도 하는 것인데요. 수사하는 검찰의 모습만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검찰은 수사하는 조직으로만 보일 수도 있는데, 사실은 검찰의 수사도 궁극적으론 법정에서 재판부를 설득할 수 있는 증거를 찾기 위함입니다. 기소 전에 탄탄하게 수사를 하는 것도 검찰의 역할이지만,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기소 후 법정에서 죄를 입증하는 것도 검찰의 역할인 겁니다. 후자의 역할을 하는 검사를 '공판 검사'라 하는데, 지금 법원 노조가 문제 삼는 것은 공판 검사들이 법원 청사에 머물고 있는 점입니다.
법원 내에서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법원 노조 모습
● "전국 법원 중 유일하게 서울법원종합청사만 공판검사실이 남아있다"

법원 노조에 따르면, 전국 법원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법원종합청사에만 공판검사실이 남아있습니다. 실제로 서울법원종합청사 12층 공판검사실은 부장검사를 포함해 25명 검찰 직원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법원 노조 주장은 서울법원종합청사에 상주하는 공판 검사들이 일반 법원 직원들이 사용하는 이른바 '마스터키'를 이용하며 법원 청사 전역을 자유롭게 드나든다는 겁니다. 특히, 법원 노조는 공판 검사들이 마스터키를 이용해 재판을 하는 판사실을 드나드는 만큼 피고인의 방어권은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형사 재판의 대원칙은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것인데, 검사와의 잦은 접촉으로 재판부가 피고인보다는 검사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일 수도 있는 혹시 모를 가능성을 법원 노조는 우려하는 겁니다.
법원 내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법원 노조 모습
● "큰 불편을 초래하니 공판검사실 설치는 불가피하다"

지난달 말 법원 청사 위에 플래카드가 걸리고, 검찰 측은 곧바로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그 답변서에는 지난 1984년 12월 법무부가 법원행정처장 앞으로 보낸 <시설조정협의>란 제목의 문건이 첨부돼 있습니다. 문건에서 당시 법무부는 "법원과 검찰의 거리가 300m가량 떨어져 있어 형사재판의 관여, 서류 송달 등 법원과 검찰의 업무 협조에 큰 불편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법원 청사에 공판검사실과 공판사무실의 설치가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어 법무부는 "최소한 약 140평을 배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설명했습니다. 검찰이 추가로 첨부한 문건에는 당시 대법원이 법무부 장관 앞으로 보낸 <시설 조정 협의 회신>이란 제목의 답변도 첨부돼 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법무부의 요구에 응해 법정동 2층에 공판검사실을 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결과 서울법원종합청사 내 공판검사실은 준공일인 1989년 6월 29일부터 3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1인 시위 중인 법원 노조 모습
●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사실상 검찰은 법원 노조의 문제 제기에 대해 '공판검사실 사용'은 원활한 재판 업무를 위해 청사 준공 이전부터 대법원과 합의된 내용이라며 답을 내놨습니다. 30년 전에 법원과 검찰이 합의한 내용에 대해 현재 시점에서 법원 노조는 새로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공판 검사가 법정 안에서가 아니라 법정 밖에서 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재판부도 그러한 공판 검사의 빗나간 노력에 쉽게 설득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법원 노조의 생각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럼에도 법원 노조가 검찰과 법원의 유착 가능성을 제기하며, 공판검사실 철수를 주장하는 이유는 형식이 내용을 규정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법원 노조는 지난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내용이 형식을 규정할 수도 있지만, 형식 또한 내용을 규제합니다. 절차가 잘못됐다면 그 내용과 결과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특히나 재판 절차는 그 과정의 엄중성 때문에 극도의 중립성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원에서 검찰 사무실이 그것도 검사 10여 명이 근무하는 검찰 사무실이 존재한다는 그 하나만으로 어느 국민이 형사 재판 결과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단순히 검찰과 법원과의 감정싸움이 아닙니다. 사법농단으로 빚어진 검찰과의 조직 간 기 싸움도 아닙니다."

어쩌면, 이 문제는 재판의 공정성이란 가치의 문제 이전에 검찰과 법원의 합의에 따른 권리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2층을 사용하기로 했던 공판검사실이 청사 12층으로 올라간 이유도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복잡한 사건처럼 얽히고 뿌옇게 흐려진 문제인 만큼 법정 안에서 노력을 해왔던 법원이 이번만큼은 법정 밖에서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걸로 보입니다. 과연 법원은 어떤 답을 내놓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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