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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DMZ 둘레길, 안전 우려"…靑 인사 "허망한 말장난"

[취재파일] "DMZ 둘레길, 안전 우려"…靑 인사 "허망한 말장난"
지난 11일 저녁 청와대 행정관 A 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성 DMZ 둘레길을 소개하는 정부 게시물을 링크했습니다. "길이 열린다, 평화를 걷는다. DMZ 평화둘레길"이라는 카피가 적힌 정부 공식 DMZ 둘레길 포스터와 함께 "고성 DMZ 둘레길이 얼마나 멋있는 곳인지, 직접 가보면 알 것"이라는 취지의 글도 남겼습니다. 말미에는 "환경파괴와 북한군 사정권 운운하는 건 허망한 말장난"이라고 일갈했습니다.

DMZ 둘레길을 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입니다. 분단의 상징인 금단의 땅이 열린다는 의미에서 평화의 기운을 북돋우는 뜻있는 시도로 보는 이들도 있고, 안전이 100% 담보되지 않은 위험천만한 남측만의 DMZ 이벤트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특히 정부가 애초에 동시 개방하기로 했던 파주, 철원, 고성 DMZ 둘레길 중에 파주와 철원은 철책 넘어 GP까지 민간인들을 들여보낸다는 계획이어서 우려와 비판이 뒤따랐습니다.

그런 주장들이 일리가 있었기에 정부는 3곳 중에 철책선 이남으로 조성되는 고성 DMZ 둘레길만 이달 말 열기로 방침을 급히 바꿨습니다. 이런 사정인데도 청와대 A 행정관은 안전을 걱정한 목소리를 '허망한 말장난'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 청와대 안보실의 생각도 그와 같은가

청와대 행정관 혼자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페이스북에 본인 주장을 담은 글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 안보의 사령탑인 청와대 안보실 소속 행정관입니다. 게다가 DMZ 둘레길 개방 계획을 주도했습니다.

DMZ 둘레길과 관련된 국방부, 통일부, 행안부, 환경부, 문체부의 실무자들을 호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부 부처 실무자들은 A 행정관의 페이스북 해당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며 호응했습니다. 이쯤 되면 A 행정관의 페이스북 글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페이스북 게시물은 고성 DMZ 둘레길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동시에 DMZ 둘레길에 대한 비판이 잘못됐다고 웅변했습니다. "이토록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에 북한군을 욱여넣어 안전 운운하는 지적은 허망한 말장난"이라는 그의 생각이 안보실의 합치된 의견일지도 모릅니다.
DMZ  철책 둘레길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고성의 전방 지역
● DMZ 둘레길 왜 비판받나

철원과 파주 DMZ 둘레길의 경우 철책선 넘어 GP까지 길을 내고 있습니다. 북한군 GP와 1km 안팎 거리까지 민간인들이 접근하게 됩니다. 북한군 중화기의 사정권 안에 민간인들이 들어간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겁니다.

철원과 파주는 물론이고 고성 전방의 육군 부대도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철원과 파주 둘레길에서는 민간인들이 철책을 넘는 순간 경호 병력이 따라붙고, 경계 병력은 대북경계를 강화해서 이중으로 민간인들을 지킨다는 게 정부 계획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민간인들에게 방탄헬멧과 방탄조끼를 지급한다는 복안을 정부는 세웠습니다.

정부 계획이 잘못된 이유 첫째는, 민간인 안전이 100% 확실하지 않다는 겁니다. 완전무장 병력의 이중삼중 경호와 경계를 받으면서도 민간인 관광객들이 방탄헬멧, 방탄조끼를 소지해야 할 정도라면 둘레길 탐방이 아니라 공포 체험입니다.

둘째, 그러잖아도 과중한 전방 장병들의 경계, 경호 부담이 커집니다. 그들은 북쪽을 주시하기에도 힘에 부칩니다. 거기에 더해 민간인까지 지키라는 건 가혹한 처사입니다. 몇몇 국방부 당국자들에게 조용히 물어봤더니 "이런 사정을 설명했는데도 안 먹히더라"고 호소했습니다.

셋째, 북한과 협의는커녕 통보도 안 했습니다. 이 점도 위기와 긴장을 촉발할 수 있는 위험 요소입니다. 남한 단독 사업인 둘레길 조성에 '남북협력'기금 44억 원이 투입된 근거도 모호합니다. DMZ를 관할하는 유엔군 사령부의 승인도 받지 않았습니다. 유엔군 측이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만 했을 뿐입니다. 이런 수준에서 발표된 나랏일은 전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넷째, 남북 정상이 원칙적으로 합의한 DMZ의 평화적 이용은 남측 홀로 지뢰밭에서 벌이는 이벤트가 아닙니다. 남북이 함께 손 맞잡고 할 일입니다. 남측 민간인들만 위험 무릅쓰고 군사분계선 이남 DMZ에서 산보한다고 해서 북측이 걸어 내려와 손 내밀지 않습니다.

또 DMZ 평화적 이용은 DMZ 안에 있는 남북의 중무장 GP 200곳을 완전 철수하고 지뢰를 걷어낸 뒤에야 가능합니다. 고난도의 상호 군축이 선행 조건이라는 뜻입니다. 정부는 무서운 것에 쫓기기라도 하는 양 과도하게 서두릅니다. DMZ 둘레길이 4·27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 이벤트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 '말 장난'인가, '안보 장난'인가

지난 2일 국방부 기자실에서 진행된 DMZ 둘레길 사전 설명회에서 위와 같은 비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정부는 그제서야 상황을 직시하고 이튿날인 3일 다급하게 철원과 파주 둘레길은 보류한 뒤 고성 둘레길만 이달 말 시범개방한다고 수정된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발표 한 달 전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비무장지대는 국민의 것"이라고 발언한 내용을 실천하느라 허겁지겁 내놓은 정책이어서 그런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정부 스스로 정책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잡았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DMZ 둘레길 계획을 관장하는 청와대 안보실 A 행정관은 철원과 파주 DMZ 둘레길을 급히 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 듯 비판과 지적의 목소리를 '허망한 말장난'이라고 꾸짖었습니다. 그의 페이스북 게시물에는 그제(12일) 오전 "안보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항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날 오후 A 행정관은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습니다. 민간인들을 철책 넘어 GP까지 들여보내고야 말겠다는 안보실 쪽의 생각도 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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