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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3대가 덕을 쌓아야 구한다'는 좋은 아이돌보미…대책과 해법은?

돌보미 아동학대 직접 겪어본 '워킹맘'의 조언

아이돌보미 아동학대 사건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부 아이돌보미 아동학대 사건, 내 아이는 안전합니까?' 긴급토론회에 패널로 참여했습니다.

금천구 아이돌보미 사건, CCTV 영상을 보면서 저 뿐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분노하셨을 겁니다. (관련 영상▶ 14개월 아기 뺨 때리고 발길질…'정부 돌보미'의 두 얼굴) 저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장면을 보는 부모님 마음은 어땠을까? 감정 이입이 되어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왔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돌보미 아동학대 사건
저는 세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다둥이 엄마'입니다. 막내는 이제 두 돌이 지났습니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면서 회사일도 계속하는 것을 보고 주변에서 '독하다', '대단하다'고 하지만, 사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절대로 제가 슈퍼우먼이어서가 아니라,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엄마를 대신해 아이를 키워줄 '대리 주양육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워킹맘에게는 '시터 복이 오복 중의 으뜸'이라고들 할까요? 물론 저도 처음부터 마음이 딱 맞는 시터를 만난 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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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민간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첫아이 때 CCTV를 통해 앞뒤가 다른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아침에 베이비시터가 와서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려고 하면 아이가 무척이나 떼를 쓰고 저에게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하던 차에 남편이 설치한 CCTV를 한번 보게 되었는데, 아침에 출근하면서 지하철에서 무심코 들여다봤다가 받은 충격은 지금도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당시 11개월 정도 됐던 제 아이는 종일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에 글로 다 하지 않겠지만 간단히 말해 '정서적 학대'가 있었습니다. 충격받았던 그날의 느낌이,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하철 타고 회사 가는 내내 넋 나간 사람처럼 휴대전화 들여다보면서 엉엉 울었습니다.

다행히 이후에 관심 써주고 잘 봐주는 베이비시터가 오신 다음에는 아이가 표정부터 달라지더라고요. 아침에 베이비시터가 오시면 거리낌 없이 다가가서 안기는 모습을 보고 그제야 마음을 놓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 사람에 대한 불신과 엄마로서의 자책감이 뒤엉켜 무척 괴로운 나날을 보냈었습니다.

● 아이 맡기는 부모는 '을'

아이돌보미와 아이와의 관계 속에서 '문제점이 보이면 엄마 아빠가 가려내면 되지 않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알게 된 것은 아이를 맡아주는 사람이 '갑'이라는 겁니다. 돈을 지불하는 건 나지만, 내가 '을'이 되는 느낌이 자꾸 듭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은 내 아이를 나보다도 더 오래 보고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싫은 소리를 하면 아이한테 안 좋은 영향이 갈까 봐 늘 조심조심 할 수밖에 없는 게 엄마, 아빠의 마음이다 보니 초반에 아주 사소한, 안 좋은 징후를 느꼈더라도 제때, 적극 대응하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아기 신생아 모유 영아 아이(사진=픽사베이)
사실,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아이돌보미 서비스는 민간 베이비시터에 비해서 불편한 점도 있습니다. 온전히 아이 돌보기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 청소나 집 정리, 요리 같은 가사 업무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유식이나 아이 밥 역시 엄마가 만들어 놓고 출근하면 아이돌보미는 먹여주는 역할만 합니다. 가사가 포함된 서비스라 하더라도 아이에 관련된 업무로 국한돼 있습니다. 소득 수준에 따라서 정부 지원을 받을 수도 있지만, 기준 금액은 시간당 만원 안팎입니다. 종일 아이를 맡긴다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금액입니다. (하루에 10시간씩 한 달 20일 기준으로 잡으면, 월 2백만 원 정도죠.)

즉, 엄마 입장에선 돈은 돈대로 들면서 육아 외의 가사 부담에선 여전히 해방되지 못하는 셈인데, 그런데도 정부 아이돌보미가 인기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정부에서 하는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아이 돌보는 걸 아무에게나 맡기긴 걱정되는데, 정부에서 채용하고 훈련시킨 사람을 보내준다고 하니까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기대와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친정 부모님이나 시부모님, 또는 친척 도움을 못 받고 온전히 남의 손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부의 아이돌보미가 유일한 희망이나 다름없습니다.
'영아학대' 50대 아이돌보미
보통 베이비시터를 부르는 말은 이모, 이모님, 아주머니, 할머니 등인데, 정부 아이돌보미들은 각 가정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립니다. 그만큼 자기 직업에 자부심이 있고, 전문성을 대우해 달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었던 돌보미 '선생님'이 아이 학대의 가해자라니, 이번 사건에 대한 맞벌이 가정들의 분노가 큰 이유입니다. 이번 금천구 피해 어린이의 가정에는 CCTV가 있어서 늦게나마 아이돌보미의 나쁜 행동에 대해 알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CCTV가 없었던 집들은 혹시 그동안 우리 아이에게도 이런 나쁜 일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뿐만 아니라 일종의 배신감까지 들었을 겁니다.

물론, 현재 아이돌보미나 베이비시터로 일하시는 분들 중에 문제가 된 케이스처럼 학대를 하는 도우미 같은 분들보다 그렇지 않은 분들이 훨씬 많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이런 좋은 분들도 이번 사건으로 인해 불신과 오해를 사게 되어 피해가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 베이비시터 구하기는 '복불복'?

정부의 아이돌보미 자격 취득은 어렵지 않아 보였습니다. 80시간 교육을 이수하면 시험 보지 않고 자격증을 딸 수 있습니다. 교육 항목 가운데 아동학대 예방교육받는 시간은 단 2시간입니다. 아이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어쩌면 영유아기 아이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인데, 심리 검사나 인적성 검사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단기간에 많은 수요가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이걸 고려하지 않은 건 참 아쉬운 부분입니다. 엄마 입장에서 볼 때는 '아이를 엄마 대신 잘 돌봐줄 사람을 어떻게 구할까'라는 기본적인 고민은 빠진 채 빠른 시간 안에 많은 가용인력을 공급하는 데 치중했다는 느낌이랄까요. 아이를 돌보는 사람을 뽑는 것이라면 '일자리 창출' 측면에 치우쳐서 바라볼 게 아니라 아이에 대한 사랑과 사명감을 가진 육아 도우미를 양성한다는 목적으로 접근했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이돌보미 서비스 (사진=여성가족부 '아이돌봄서비스' 홈페이지)
함께 토론에 패널로 참여한 김혜란 한마음나무 심리상담센터장은 우선 정부 아이돌보미 선발 기준을 강화하고 교육 내용을 개편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했습니다. 아이돌보미 교육 항목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이론적인 부분에 치우쳐 있는 데다 실제로 아이 돌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응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라고 분석하시더군요.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아동학대 예방 교육 시간을 늘려야 하고 영유아와 아동을 관찰하고 공감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 그리고 돌보미와 아이들과의 관계 소통기술이나 돌보미가 소명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교육, 아이돌보미의 스트레스 관리법 등에 대한 교육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또한 이러한 '교육'으로 해결 안 되는 부분, 즉 신경정신과적 문제들은 몇 가지 검사를 통해 선별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종종 도우미 본인의 가정이나 주변 사람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와 안 좋은 감정들을 약한 존재인 아이들에게 쏟아내는 경우가 학대로 이어질 수도 있는 만큼, 사전에 이런 위험성이 있는 사람을 검사 등을 통해 최대한 배제하는 일도 필요하다는 겁니다.

베이비시터가 아이들을 봐 주고 있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저보고 너무 용감하다고,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남의 손에 어떻게 그렇게 턱턱 아이들을 맡기냐고 말입니다. 물론 웃으면서 한 말이고 저를 걱정해서 해준 말이겠지만, 아이 학대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아이 맡기고 일하는 엄마들이 주변에서 이런 시선을 받아야 한다는 건 참 슬픈 현실입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산후도우미부터, 파트타임 도우미, 또 종일 베이비시터 등등, 아주머니들을 구할 때마다 느꼈던 거지만, 엄마를 대신해 아이를 키워줄 사람이 '복불복'이라는 사실이 화가 났습니다. 복불복으로 좋은 분을 만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엄마들 사이에서는 '삼대가 덕을 쌓아야 좋은 시터가 온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나오는 거겠지요.

● '보육 안전장치' 제대로 만들려면…

아이돌보미의 아동학대가 입증되더라도 6개월의 자격정지가 전부라는 이야기를 듣고 좀 황당했습니다. 여섯 달만 지나면 다시 누군가의 집에 가서 다른 아이를 돌보게 될 텐데, 학대 이력이 조회가 되는 것도 아닐 테고 잠재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걱정입니다. 베이비시터를 구할 때 가장 불안한 점이 이전에 어떤 집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봤는지 전혀 모른다는 겁니다. 본인에게 물어보는 방법이 전부입니다. 아이 학대가 분명히 입증되었을 경우에는 다시는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아이돌보미, 베이비시터, 산후도우미 등등 동종 업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강경한 조치가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신생아, 아기(사진=픽사베이)
영국의 아이돌보미(Childminder) 제도를 참고해 볼 만합니다. (이 부분은 토론회에서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이 제시했던 자료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물론 영국의 아이돌보미는 자신의 집으로 아이들을 데려와서 보육하는 형태라 우리나라와는 조금 사정이 다를 수 있습니다만, 자격 등록 자체가 훨씬 까다롭게 되어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법 행위에 대한 유죄판결뿐 아니라 낮은 수준의 주의 조치(견책 또는 경고)를 받은 경우라도 정부가 인증한 아이돌보미로 활동할 수 없고, 등록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지날 경우라도 등록 자격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기준이 엄격한 겁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아이돌봄 지원법' 제6조에서 규정하는 결격사유에 따르면, 아이돌보미 자격이 취소됐더라도 1년이 지나면 다시 활동이 가능합니다. 또,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았어도 집행 종료 3년 후부터,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나 아동학대 관련 범죄 경력이 있었어도 최소 10년이 지나면 다시 아이돌보미로 일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쉽지 않은 작업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정부 아이돌보미에 그치지 말고 민간 베이비시터 자격도 정부에서 인증하고 관리해 주는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부 아이돌보미의 대기 기간이 길다 보니 사설 베이비시터나 산후 도우미를 쓰는 가정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정부가 시행하는 80시간의 교육이 다소 미흡하다 할지라도 민간에선 그 정도도 받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사람을 뽑을 때 일일이 경력이나 자격을 검증하기 어려운 만큼, 최소한의 기준만 정부에서 걸러줘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갑자기 베이비시터를 바꾸게 되었을 때 구인 사이트에 광고를 내고 연락 온 수십 명 시터들을 전화로, 또 대면해서 면접을 보면서 소위 '멘붕'에 빠졌었습니다. 내 아이를 나보다도 더 오랜 시간 돌볼 사람이니 무엇보다 인품이나 성품이 중요한 것 같은데, 그걸 판단할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어떤 집에서 어떻게 아이를 봐 왔는지가 가장 궁금한데 그것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본인에게 물어보는 것' 뿐이었습니다. 엄마도 나름의 촉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고용하겠지만, 엄마를 대신해 아이를 돌볼 사람의 자격을 검증해 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때 많이 했습니다.
신생아 (사진=픽사베이)
합계 출산율이 1명이 안 되는 시대입니다. OECD 국가 최저 수준입니다. 저출산 문제, 급속한 노령화, 여성의 경력 단절을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 각종 TF가 생겨나고, 이런저런 대책이 쏟아지지만, 별 효과 없었습니다. 돈 10만 원 더 준다고 아이 낳을 사람 얼마나 될까요? 아동수당 추가로 준다고 둘째, 셋째 낳을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아이를 낳은 뒤에, 여성의 미래는 빤하다'고들 생각하는 게 통념입니다. 당장 아이 맡길 데 없고 맡길 사람이 있어도 믿을 수가 없다면… 결국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 당면할 마지막 선택지는 '엄마의 퇴직' 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둘째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접을 가능성이 크겠죠. 실제로 제 주위에도 첫아이를 낳고 나서, 아이 맡기는 일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결국 일을 놓아버린 친구나 선후배들이 많습니다. 지금까지는 저도 운 좋게도 잘 지내 왔지만, 혹시 아이를 봐 주시는 베이비시터 건강 문제나 다른 개인 사정이 생겨서 더 이상 지금의 공조 체제를 지속할 수가 없다면, 기준에 맞는 대체인력을 구할 수가 없다면, 과연 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를 종종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확신은 없습니다. 모든 워킹맘들이 이런 위태로움과 불안함 속에서 지금도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출산율을 높이고 싶다면, 또 여성의 경력단절을 줄이고 싶다면, 먼저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것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면 됩니다. 엄마를 대신해서 아이들을 애정으로 키워주고 아이의 발달 단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대리 양육자를 구할 수만 있다면, 많은 여성들이 뒤로 미뤄뒀던 자신의 꿈을, 인생의 목표를 다시 꺼내들 수 있지 않을까요.

여성가족부에서는 이미 이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면서, 긴급 대책 회의를 가졌다고 합니다. 전체 아이돌보미들을 대상으로 아동학대 예방 특별 교육도 실시된다고 하고요. '긴급회의'나 '추가 교육' 한 번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각 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깊이 고민해 주시길 바랍니다. 여가부는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제언과 의견들을 참고해 아이돌보미와 민간 베이비시터 제도를 보완, 개선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앞으로 잘 지켜보겠습니다.

(사진=여성가족부 '아이돌봄서비스' 홈페이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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