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호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하이에 세운 이유는

송욱 기자 songxu@sbs.co.kr

작성 2019.04.11 21:35 수정 2019.04.11 22:0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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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00년 전 오늘(11일),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만들어졌습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지사 29명이 모여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임시정부를 세운 겁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의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정했습니다. 대한은 더 이상 왕의 나라가 아니라 국민의 나라라는 뜻인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임시 헌장, 즉 최초의 헌법도 함께 발포됐습니다.

하지만 임시정부의 역사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일제 탄압이 중국에서까지 계속되면서 임시정부는 상하이에서 난징으로, 그다음 창사로, 광저우로 이렇게 보시는 것처럼 중국 여기저기를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그리고 1940년, 충칭에 마지막 거처를 자리 잡은 뒤 1945년 그토록 그리던 해방을 맞았고 이후 정부 수립의 기초가 됐습니다. 보신대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100년 전 오늘, 1919년 4월 11일부터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그럼 대한민국의 역사가 출발한 곳, 임시정부가 처음 세워진 중국 상하이로 가보겠습니다.

송욱 특파원, 지금 있는 곳이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인가요?

<기자>

네, 저는 상하이 마당로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안에 있습니다.

1926년부터 윤봉길 의사 의거 직후인 1932년까지 사용한 청사입니다.

이곳에는 보시는 것처럼 당시 사용했던 태극기와 함께 조국의 독립만을 소원했던 김구 선생의 흉상이 있습니다.

앞서 앵커가 전한 대로 100년 전 오늘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지사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오늘 상하이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이어졌는데, 정부와 국회 대표단도 오늘 이 자리에서 김구 선생 흉상에 묵념하고 대한민국 임시헌장 선포문을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독립유공자 후손과 대표단은 상하이 시내의 융안 백화점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1921년에 신년회를 열고 기념촬영을 했던 곳인데, 아직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임시정부 요인들과 같은 모습으로 사진 촬영을 하면서 100년 전 지사들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주춤하던 독립운동의 불씨를 살려낸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인 상하이 루쉰 공원에서도 기념행사가 열렸고, 지금은 상하이 시내에서 임정 100주년 공식 기념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로부터의 독립과, 국민이 주인 되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염원 위에 만들어졌습니다.

100년 전 이곳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탄생하게 된 과정을 되짚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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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남창로의 허름한 2층 집,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춧돌 예관 신규식 선생이 머물던 곳입니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에 절망해 독약을 마셨다가 한쪽 눈을 잃은 신규식 선생은 1911년 독립운동가의 발걸음이 닿지 않던 이곳 상하이로 망명했습니다.

[쑨커즈/중국 푸단대 역사학과 교수 : 신규식 선생은 상하이를 중국 혁명운동의 중심으로 생각했고, 한중이 혁명의 힘을 합치면 제국주의 침략에 맞설 수 있을 것이라 보았습니다.]

청나라를 무너뜨린 중국 신해혁명에 참가했던 신규식 선생은 독립운동단체 동제사와 교육기관인 박달학원 등을 조직했습니다.

이를 구심점으로 상하이 독립지사들이 속속 모였고, 1917년 7월 신규식·조소앙 등 14명은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합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국민 주권론과 함께 독립운동의 중심기관 설립을 주장한 역사적 선언문이었습니다.

[배경한/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리적인, 사상적인 기반이 대동단결선언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족자결주의의 거센 흐름 속에 독립의 염원은 마침내 1919년 3·1운동으로 분출됐습니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더욱 일깨웠고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이 상하이로 집결했습니다.

[스위안화/중국 푸단대 교수 : (프랑스 조계지였던) 상하이는 중국 정부도 관여할 수 없었고, 프랑스는 자유와 민주를 강조했습니다. 상하이를 택한 건 역사의 필연이었습니다.]

상하이에 모인 독립지사 29명은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 첫 회의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임시정부 수립을 결의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다" "대한민국 인민은 모두 평등하다"고 천명한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 '임시헌장'도 함께 제정됐습니다.

[김용달/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 이제는 국민이 주권을 갖고 주권을 가진 국민이 서로 화합해서 세운 나라, 공화국이 되는 것이죠.]

1919년 9월 한성, 연해주 정부와 통합해 재탄생한 상하이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구심체로서 그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영상취재 : 이국진, 영상편집 : 박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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