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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개봉의 악수…'악질경찰'·'우상', 배급의 참사

돈
2018년 추석의 악몽이 재현되는 걸까.

지난 20일 한국영화 3편이 동시 출격해 희비가 엇갈렸다. 개봉 첫 주말이 지난 현재 '돈'(감독 박누리)은 누적 관객 수 153만 명, '악질경찰'(감독 이정범)은 18만 명, '우상'(감독 이수진)은 13만 명을 기록 중이다.

'돈'만 웃었다. '악질경찰'과 '우상'은 충격적인 성적을 기록하며 흥행에 빨간 불이 켜졌다.

지난해 추석 연휴를 겨냥했던 '명당', '협상', '안시성'은 9월 19일 동시 개봉했다. 세 영화 모두 100억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이었다. 각기 다른 색깔과 경쟁력을 자부하며 양보 없는 경쟁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같은 날 개봉은 악수(惡手)가 됐다. 세 편의 영화가 스크린 싸움을 벌이다 '안시성'만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지금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추석 연휴 시즌은 일일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극장을 찾는 성수기다. 하지만 3월 극장가는 명백한 비수기다. 세 영화가 개봉한 3월 셋째 주 평일은 하루 관객 수가 20만 명 이하였다. '캡틴 마블'이 개봉한 2주 전에 비해서도 50% 이상 감소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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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20만 명의 관객을 두고 싸우는 형국이다. 불행히도 세 편의 한국 영화 중 신작 효과를 본 영화는 '돈' 뿐이다. 나머지 두 편은 개봉 3주 차의 '캡틴 마블'에도 밀렸다.

네 영화가 맞붙은 첫 주말의 경우 일일 관객 수가 100만 명 가까이 늘어났지만, 확장된 박스의 수혜를 본 영화는 흥행에 가속도를 붙인 '돈'(주말 관객 111만 명)과 뒷심을 발휘한 '캡틴 마블'(주말 관객 38만 명)뿐이었다. 이미 박스오피스 3,4위로 쳐진 '악질경찰'(주말 관객 12만 명)과 '우상'(주말 관객 8만 명)은 평일과 비교해 관객 수를 약 15% 밖에 늘리지 못했다.

영화에 투입한 총 제작비는 '우상' 98억 원, '돈' 80억 원, '악질경찰'이 90억 원이다. 손익분기점은 각각 260만 명, 200만 명, 250만 명이다. 지난해 동 시기에 개봉해 흥행했던 '리틀 포레스트'(제작비 35억, 관객 수 150만 명), '사라진 밤'(제작비 40억, 관객수 131만 명), '곤지암'(제작비 22억, 관객 수 267만 명)과 비교하면 시장 규모 대비 사이즈가 큰 영화들이 개봉 라인업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시장이 쪼그라든 상황에서 이 많은 제작비를 회수하려면 갈 길이 멀다. 세 영화는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고 상업성도 갖췄다. 게다가 티켓 파워를 갖춘 스타들이 포진하고 있는 작품이다. 같은 날 개봉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는 더 괜찮은 성적표를 받아 들었을 것이다.

물론 세 영화가 같은 날 개봉하게 된 데는 공통된 이유와 각각의 사정이 있다. 공통의 이유는 더 이상 개봉을 미룰 수 없는 상황에서 '캡틴 마블'을 피해 개봉일을 잡아야 했다. 적어도 2주 간격은 벌려야 경쟁에서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렇다면 왜 같은 날 개봉이라는 무리수를 뒀을까. 먼저 '돈'은 지난해 4월 크랭크업해 개봉 적기를 찾고 있었다. 투자배급사인 쇼박스가 '마약왕' 개봉을 여름에서 겨울로 미루며 개봉 라인업의 조정이 있었다. 기대작 '마약왕'과 '뺑반'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뒀고, 완성도와 상업성에서 괜찮은 평가를 받았던 '돈'은 가장 먼저 업계에 개봉일을 3월 20일로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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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경찰'은 2017년 여름 촬영을 마쳤다. 약 2년 가까이 묵힌 영화다. 소재의 민감성 때문에 개봉 시기를 잡기가 여의치 않았다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악질경찰'은 비리경찰이 주인공인 범죄 드라마지만 세월호 이슈를 관통하는 영화다. 지난해 개봉은 시기적으로 너무 빠르게 느껴졌을 것이다.

투자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코리아는 올 여름 '장사리 9.15'의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이 작품에 앞서 이미 촬영을 마쳤지만 민감한 이슈 때문에 개봉을 미뤘던 어떤 영화의 개봉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일찌감치 촬영을 마친 '악질경찰'의 개봉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결국 3월 20일 개봉을 확정했다.

'우상'도 개봉일을 두고 내부에서 큰 고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비 규모로 봤을 때는 성수기에 개봉하는게 맞지만 상업성보다는 예술성이 두드러지는 영화다. 지난 2월 폐막한 베를린국제영화제 초청의 효과를 이어가기 위해 3월 개봉을 택했다. 그러나 영화 안에 은유와 상징 많아 이해가 쉽지 않을 뿐더러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 단점도 있는 작품이라 관객의 호불호가 나뉘고 있다.

'우상'은 CGV 아트하우스가 투자배급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제작비(98억)가 투입된 영화다. 지난해 제작비 80억을 투입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누적 관객 52만 명)이 흥행에 실패하며 큰 타격을 입었기에 '우상'의 성적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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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는 이수진 감독의 전작인 제작비 2억의 독립영화 '한공주'(누적 관객 수 22만 명)보다 못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개봉 영화 편수가 많아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흥행의 명운이 결정되는 시간도 짧아졌다. 상업영화의 경우 사실상 개봉 첫 주말에 흥행 여부가 결정된다. 개봉 첫날과 첫 주말 박스오피스 1위가 중요한 것은 잠재 관객이 영화를 선택하는 하나의 기준인 예매율과 극장의 스크린 배분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신작이 3,4위권에 자리 잡았다면 먹구름을 안고 레이스를 펼치는 것과 같다. 더욱이 SNS 등을 통한 입소문이 발 빠르게 퍼지면서 한 번 경쟁에서 뒤처진 영화는 반등을 이뤄내기 쉽지 않다.

각각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일정 변경이 여의치 않은 외화도 아닌 한국 영화가 최소 일주일 간격의 개봉일 조율도 하지 않은 것은 큰 아쉬움이다. 수준급의 개성과 재미를 갖춘 이 영화들이 관객과 폭넓게 만나지 못한 채 이대로 퇴장한다면 배급이 빚은 참사로 기록될 것이다.

개봉 2주차에 접어든 세 편의 한국 영화는 '문화의 날'(3월 27일)과 주말(3월 30일~31일), 두 번의 기회가 있는 이번 주 관객몰이에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오는 27일에는 '겟 아웃' 감독의 신작 '어스'가, 4월 3일에는 DC 히어로 무비 '샤잠'이 경쟁에 가세해 박터지는 싸움이 예상된다.


(SBS funE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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