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경제] '세계 1위' 한국 라면시장 빨간불…저출생이 불러온 위기

권애리 기자 ailee17@sbs.co.kr

작성 2019.03.22 09:54 수정 2019.03.22 15:42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앵커>

친절한 경제, 권애리 기자와 생활 속 경제 이야기 나눠봅니다. 권 기자,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믿기가 어려운 소식인데, 라면 시장에 최근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고요?

<기자>

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세계에서 인스턴트 봉지라면을 가장 자주 먹는 사람들이기는 합니다. 한 사람이 평균 닷새에 한 봉지꼴로 소비합니다. 2위인 베트남과도 크게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없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라면 시장에도 최근에 위기감이 감돕니다.

늘 늘어나기만 했던 라면 소비가 2017년에 처음으로 꺾였거든요. 연간 2조 원어치 넘게 팔렸던 라면이 이때 그 2조 원 선이 깨졌습니다. 역성장했습니다.

2018년에 다시 2조 원 조금 넘는 수준을 회복하긴 했지만 3년째 라면시장 크기가 커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비단 식품제조업뿐만 아니라 어느 제조업 분야에서나 마찬가지지만 시장규모가 3년째 정체라는 건 이미 빨간 불이 들어온 겁니다.

아직은 큰 시장이지만 그 시장이 늘어나는 규모에 맞춰서 성장하고 노하우도 쌓아온 업계로서는 애가 타는 상황입니다.

<앵커>

아침부터 이렇게 라면 끓이는 화면 보내드리면 시청자들이 괴로워하시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라면의 인기가 이렇게 전 같지 않은 이유는 어떤 게 있을까요?

<기자>

네, 간편식들이 많아지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실 하나가 더 있습니다. "라면이 전처럼 안 팔리는 것도 이거랑 관련이 있단 말이야?" 싶은 게 있거든요.

아이들이 줄어드는 것, 그러니까 저출생이 심각해지는 게 라면에도 위기를 불렀습니다. 라면은 특히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내가 어느 정도 나이가 있다 하면 가만히 돌이켜 보시면 어렸을 때보다는 덜 찾지 않나요? "라면 좋아했는데, 이제는 든든하게 밥이 좋다." 이런 얘기 많이 하십니다.

실제로 라면 소비를 책임진 건 10대입니다. 우리나라 사람 한 명이 1년에 라면을 평균 68개 정도 먹는데요, 연령대별로 세분해 보면 10대 남성이 연간 117개, 10대 여성도 91개는 소비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지금 보시는 표에서 바로 보이지만 나이가 많아질수록 남녀 할 것 없이 라면 먹는 날은 뚝뚝 줄어듭니다.

50대를 넘으면 남성은 10대 시절의 절반 미만, 여성은 3분의 1 수준입니다. 아무래도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라면 맛은 좀 얼큰하고, 빨갛고, 기름기도 있고 그렇죠.

먹고 싶은 유혹이 생겨도 나이를 먹을수록 자주 찾긴 힘든 맛입니다. 그러니까 노인은 점점 늘어나는데 아이들이 줄어드는 사회에서는 라면 인기가 전 같을 수 없는 겁니다.

어제도 마침 저출생이 앞으로 우리 경제 모든 면에 영향 미칠 거라는 말씀을 잠깐 드렸는데, 좀 엉뚱하게 들릴 라면까지도 그 불똥이 벌써 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아까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워낙 먹을 게 많고, 간편 가정식도 많이 나오고, 특히 건강을 중시하고 짠 거 매운 거 조심하자는 트렌드가 자리 잡으면서 자극적인 맛에 대한 선호가 덜해지는 경향이 점점 커지는 것도 분명히 작용하고 있습니다.

<앵커>

그래서 라면시장이 손 놓고 있을 거 같지는 않고요, 어떤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까?

<기자>

라면시장이 또 하나 특이한 것이 있었던 게 워낙 길들여진 입맛대로 찾는 시장이라 신제품이 발붙이기 힘든 게 희귀한 특징이었는데요, 그 공식이 요새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난달에 나온 라면 신제품 하나가 한 달 만에 1천만 개가 넘게 팔려서 업계에선 큰 화제입니다. 정체된 시장에서 신제품이 너무 잘 나가니까 다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거죠.

이 라면은 이른바 건면, 안 튀긴 면입니다. 얼큰한 쪽 맛은 포기하지 않는 대신 라면 특유의 기름진 맛은 조금 줄여서 열량을 줄였습니다.

그랬더니 라면은 먹고 싶은데 다이어트도 하고 싶은 젊은 사람들에게 주효한 겁니다. 건면은 사실 20년 전부터 시장에 꾸준히 나오긴 해서 지금은 시중에 37종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장 비중이 그 20년 동안 계속 조금씩 커진다고 해도 2년 전만 해도 다 합쳐서 4%대였거든요. 이번 달로 6% 가까이 비중이 커졌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제품만큼 히트하진 않았지만 라면에서 흔히 기대하지 않는 맛들, 미역국이나 멸치국수 맛 같은 것을 표방한 제품들도 건면으로 계속 출시되면서 비중을 늘리고 있습니다.

만약 오늘 장을 보러 가신다면 이런 것도 라면으로 나오는구나 싶은 제품들 쉽게 보실 겁니다. 먹을 게 다양해진 초고령화 사회에 적응하려는 시도들이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