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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포항지진, 피할 수 있었던 4차례 기회 놓쳤다

세계 학계에 '포항 교훈'이라는 신조어 등장

[취재파일] 포항지진, 피할 수 있었던 4차례 기회 놓쳤다
지난 2017년 11월 15일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은 인근에서 건설 중이던 지열발전소에 의해 촉발됐다는 최종 조사 결과가 나왔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지진이 아니라는 뜻이다. 학계에서는 무지와 부실한 지질조사, 안전 불감증, 그리고 사전 경고를 무시해 발생한 인재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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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발생 당일부터 지열발전소 건설로 인한 유발지진 가능성을 주장했던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이진한 교수는 포항 지진을 피할 수 있었던 4차례의 큰 기회를 놓쳤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의 주장의 중심으로 피할 수 있었던 4번의 기회를 다시 한번 짚어 본다.

1차 경고, 2015년 10월 주입한 진흙물 수천 톤 누수

1차 경고음은 시추 작업이 한창이던 지난 2015년 10월 울렸다. 시추 작업을 할 때는 시추공의 수압을 낮추기 위해 진흙과 물을 섞은 진흙물[이수, 泥水, mud fluid]을 시추공에 넣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시추공에 넣은 수천 톤이나 되는 많은 양의 진흙물이 땅속에서 어디론가 사라지는 이른바 누수(mud loss) 현상이 발생했다. 진흙물의 누수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시추공이 단층대를 건드렸고 주입한 진흙물이 단층대의 틈으로 흘러 들어가 사라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따라서 이때 시추 작업을 멈추고 시추공이 단층대를 건드렸는지 안 건드렸는지 정밀조사를 했어야 했는데 정부와 지열발전소 측은 이를 그냥 넘겨 버렸다. 1차 경고를 무시한 것이다.

2차 경고, 2016년 1월 규모 2.1 지진

2차 경고음은 처음으로 시추공에 소량의 물을 넣은 뒤 울렸다. 2016년 1월 처음으로 시추공에 적은 양의 물을 넣은 뒤 생각지도 못했던 규모 2.1의 지진이 발생했다. 규모 2.1 지진은 주입한 물의 양에 비해 너무나도 큰 지진이었다. 이때 포항 지열발전소 건설에 참여한 스위스 지오에너지(GeoEnergy) 사의 CEO인 페터 마이어(Peter Meier) 박사가 의문을 제기했다. 주입한 물의 양에 비해 너무 큰 지진이 발생한 만큼 2차 물 주입을 하기 전에 정밀조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Peter Meier 박사가 강력하게 정밀조사를 주장했지만 이 역시 무시되고 2차 물 주입을 강행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또 한 차례 포항 지진을 피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이다.
포항지진, 지열발전 물 주입 촉발
3차 경고, 미소지진 분석 부실

3차 경고는 미소지진의 경고였다. 지열발전소 시추공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자료는 바로 고압의 물을 이용해 암반에 틈을 만드는 수리자극(hydraulic stimulation) 시 발생하는 작은 지진 즉, 미소지진의 정확한 위치다. 미소지진의 위치를 가장 정확하게 잡아내는 것은 시추공에 달려 있는 지진계다. 미소지진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야 암반에 틈을 내는 작업이 원하는 대로 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고 또한 물을 집어넣는 주입정과 뜨거워진 물을 끌어올리는 생산정이 서로 수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포항 지열발전소 측은 시추공에 지진계를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리자극 시 발생하는 미소지진 분석을 거의 안 했거나 부실하게 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정부조사단, 특히 해외조사단은 이 미소지진 자료를 정밀하게 분석했고 그 결과 단층대에 물을 거의 직접 주입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따라서 물을 주입하고 수리자극 시 발생한 미소지진 자료를 제대로 분석했더라면 단층대에 물을 주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게 됐을 것이고 그러면 작업을 중단하고 정밀조사를 했었을 것이라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하지만 분석이 부실했던 만큼 미소지진의 경고는 무시됐다.

4차 경고, 2017년 4월 규모 3.1 지진

4차 경고음은 2017년 4월 15일 울렸다. 2017년 4월 15일 포항에서는 규모 3.1이라는 이례적으로 매우 큰 지진이 발생했다. 규모 3.1 지진의 위력은 규모 2.1 지진의 위력보다 30배 이상 강력하고 규모 1.1 지진의 위력보다는 1,000배 정도 강력한 지진이다. 기존의 미소지진보다 수십 배에서 수백 배, 1천 배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큰 지진이 발생했다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물 주입을 중단하고 정밀조사부터 했어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렇게 큰 지진이 발생한 뒤에도 제대로 된 정밀조사 없이 물 주입은 계속됐다. 지진 발생 가능성이 있는 단층에 물을 계속해서 주입하고 있으면서도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거나 무시했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 인근에서는 규모 3.4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열발전소에 물을 주입한 뒤 규모 3.4의 지진이 발생하자 스위스 정부는 곧바로 지열발전소 운영을 전면 중단했다. 이후 바젤에서는 규모 3.4보다 더 큰 지진은 발생하지 않았다. 포항의 경우는 규모 3.1 지진 이후에도 계속해서 물을 주입하는 작업을 한 것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잇따른 경고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무시한 결과는 참사로 나타났다. 2017년 11월 15일 규모 5.4의 지진이 바로 그것이다. 최고 전문가의 주장이지만 일부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은 물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 진상조사에서는 이 같은 부분을 꼭 확인하고 누구의 책임인지도 함께 규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열발전소를 건설한다고 땅속의 지열만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정작 지진 발생 위험이 있는 단층 조사는 소홀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
포항 지진 조사결과발표
'포항 교훈(Pohang lesson)'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신조어 등장

지난 3월 5일에서 8일까지 스위스 다보스에서는 유발지진 관련 세계적인 워크숍이 열렸다. 여기에는 국내 전문가뿐 아니라 세계적인 지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이번 정부조사단의 해외조사단원인 Giardini 교수와 Ellsworth 교수도 참석했다.

워크숍의 가장 큰 이슈는 단연 포항 지진이었다고 한다. 포항 지진에 대해 모두 9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워크숍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나 지열발전소 측이 지진 발생 가능성이 있는 단층을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한다. "They did not know that they were stimulating a critically stressed fault." 잇따른 경고나 사실을 무시했다고 표현하지 않고 몰랐을 것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한편으로는 조금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계 지진 학계에 새로운 단어가 등장했다고 한다. 바로 '포항 교훈(Pohang lesson)'이라는 단어다. 사전에 충분한 조사도 없이, 이어지는 경고도 모르거나 무시하고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단층에 계속해서 물을 주입하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고 한다. 워크숍에 참석했던 국내 전문가들은 워크숍이 열리는 기간 내내 더없이 창피함을 느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개인 교신>
* 이진한 교수,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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