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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정희 독재정권은 46년 전 왜 갑자기 중간광고를 금지했을까

오늘(21일)은 지상파TV방송의 중간광고가 금지된 지 정확히 만 46년째 되는 날이다. 1973년 3월 21일 박정희 정권이 의결한 중간광고를 금지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발효된 이후 지금까지 지상파TV의 중간광고는 금지돼 왔다. 그 이전까지 민영방송이던 MBC와 TBC는 프로그램 중간에 광고를 하는 데 어떤 제한도 받지 않았다. 다만, 과도한 중간광고에 채널이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적정한 수준의 중간광고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 중간광고를 박정희 정권은 왜 갑자기 금지했을까?

이상한 건 지금의 방송 관련 정부 정책 기관이나 입법 기관, 또는 방송학계에서 명확히 그 해답을 던져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중간광고를 철저히 금지한 데에는 46년 전 중간광고가 왜 갑자기 사라지게 됐는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인 이유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초 헌법기구가 만든 방송법과 방송법 시행령

박정희 독재정권은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하고 곧바로 국회를 해산한다. 그리고 국회를 대신하는 초 헌법기구인 비상국무회의를 설치한다. 비상국무회의는 박정희 대통령이 의장을, 김종필 국무총리가 부의장을 맡고,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위원들로 구성됐다. 이 비상국무회의를 초 헌법기구라고 한 이유는 그 역할이 지금의 국무회의를 대신한 게 아니라 해산한 국회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즉 비상국무회의는 국회를 대신해 입법 업무를 담당했던 기구였다. 국민이 선거로 뽑은 국회의원들이 아니라 박정희 독재 정권이 마음대로 법을 만들었던 것이다.

비상국무회의는 약 5개월 간 존재한 임시 기구였지만, 짧은 기간 무려 270건의 법안을 통과시켰다(경향신문, 1973.3.31, 3면). 특히 1973년 2월 6일 12개 법안을 의결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방송법 개정안이었다. 당시 개정방송법은 △사후 심의를 법제화하고 문화공보부가 심의 결과에 대한 제재 권한을 가진다는 내용과 △광고에 대한 제한을 시행령으로 정한다는 내용 두 가지였다. 이에 대해 야당인 민주통일당은 즉각 "언론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언론자유를 위축시키는 처사로밖에 볼 수 없다"는 논평을 냈다(동아일보, 1973.2.7, 1면).
비상국무회의, 방송법 개정 의결 (경향신문, 1973년 2월 7일자 1면)
비상국무회의는 방송법을 개정하고 한 달 여가 지난 1973년 3월 9일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한다. 주요 내용은 △교양 프로그램을 20%에서 30% 이상으로 늘리고 △광고는 프로그램 시간의 10% 이내로 제한하고 △스포츠 중계 이외에 중간광고는 금지한다는 것 등이다. 당시 윤주영 문공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민영방송은 지금까지의 지나친 상업성을 지양, 방송의 계도적 사명에 적극 기여토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경향신문, 1973.3.10, 1면). 비상국무회의는 이틀 후인 3월 11일 해산했고, 중간광고를 금지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은 3월 21일 공포 후 바로 시행됐다.
[취재파일] 박정희 독재정권은 46년 전 왜 갑자기 중간광고를 금지했을까
어떤 학자들은 1973년 석유파동(오일쇼크) 이후 과소비 방지와 에너지 절약을 위해 정부가 중간광고를 금지했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사실관계가 잘못된 주장이다. 석유파동은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이후,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1973년 10월과 1974년 1월 두 차례 유가를 인상하면서 시작됐다. 중간광고 금지는 1973년 3월, 석유파동의 시작은 1973년 10월이기 때문에 이 둘이 연관됐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석유파동으로 지상파TV방송에서 사라진 건 중간광고가 아니라 아침방송이었다. 심지어 위키백과에는 우리나라의 중간광고가 1974년 3월부터 사라졌다는 잘못된 정보가 올라와 있기도 하다.

● 방송 장악을 위한 유신 독재의 잔재

박정희 정권은 유신 선포 이후 방송법 개정과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방송을 대대적으로 손봤다. 심의를 통해 방송 내용을 규제했고, 상업성 지양을 명목으로 광고를 제한해 경영을 압박했다. 서슬 퍼런 유신 시절, 어떤 언론도 이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싣지 못했다.

그나마 경향신문은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는 칼럼인 '여적'을 통해 "이번 조치로 민방은 골탕을 먹게 되었다. 광고수입의 감소는 필연코 제작비의 감축을 가져오고, 이것은 곧 프로의 질적 저하로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청자는 '다른' 한쪽의 다이얼만을 돌리게 될 것이다. 만의 일이라도 당국의 의도가 이런 것이 아니기를 믿고 싶다"라고 조심스럽게 지적했다(경향신문, 1973.3.12, 1면).

당시 경향신문은 광고의 제한을 민영방송의 경영을 압박하고 그 해 3월 3일 국영에서 공사로 전환한 공영방송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라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하지만 경향신문의 이 같은 우려는 맞지 않았다. 민영방송사들은 중간광고를 못하는 대신 시간이 긴 프로그램을 없애고 프로그램 시간을 짧게 줄이면서 이 규제를 피해 갔다. 또 방송사가 3개밖에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경영 악화도 없었고, 당연히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로 이어져 시청자의 채널이 공영방송으로 돌아가는 일도 없었다. 당시 MBC와 TBC의 인기는 공영방송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지상파TV의 중간광고 허용은 차별규제 해소

그런데 경향신문의 이 지적은 반세기가 지난 현시점에서야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중간광고 허용을 비롯한 온갖 특혜를 가진 종합편성채널이 한꺼번에 4개가 생기고,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들이 유료방송 시장을 장악하면서 수준 높은 무료보편 서비스를 지향해 온 지상파방송사들은 위기에 처해졌다. 아직까지는 경쟁 매체들에 비해 지상파방송사들의 눈에 띄는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는 없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수익 악화는 언제까지 질 높은 프로그램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방송계의 한 유력 인사는 "지상파방송은 원래 무료보편적 서비스이기 때문에 중간광고를 금지해야 한다는 정책 입안자들이 아직도 존재한다. 이렇게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방송 정책을 좌지우지하는지 모르겠다. 지상파방송사들이 예전과 같이 모든 규제를 차별적으로 받으면서 계속해서 수준 높은 무료보편적 서비스로 시청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이다. 예전처럼 지상파방송사만 남기고 다른 방송사들을 없애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게 불가능한 얘기라는 건 모든 사람이 다 안다.

중간광고를 허용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1월 말 입법예고를 마쳤다. 입법예고 기간 중간광고 허용에 대해 유일하게 우려를 표한 정부 부처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다. 신문업계의 광고 축소를 이유로 지상파TV의 중간광고 허용을 우려한다는 내용의 의견을 냈다. 종합편성채널 4개가 한꺼번에 출범했을 때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게 신문업계의 광고였으니, 문체부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광고주들이 광고 효과를 보기 위해 신문에 광고 비용을 집행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도 부인하지는 못할 터이다.

이유가 마땅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문체부가 기어이 우려를 표한 건 어떻게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다. 1973년 유신 정권 당시 방송언론 장악의 선봉에 서며 방송법 개정을 주도했던 부처가 문체부의 전신인 문공부이기 때문이다(동아일보, 1973.1.27, 1면). 중간광고를 금지했던 문공부의 망령이 반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문체부에 남아 있지는 않겠지만.

또 다른 아이러니도 있다. 무료보편 서비스인 지상파방송의 위기 극복을 위해 마련 중인 중간광고를 허용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예고를 거친 지 두 달 여가 다 돼 간다. 하지만 여전히 방송통신위원회는 개정안을 최종 의결하지 않고 '계속 검토 중'이라고 한다. 전 세계에서 지상파TV방송의 중간광고가 전면 금지된 나라는 우리나라 말고는 달리 찾아보기가 어려운데, 46년 전 독재정권이 금지했던 지상파방송 중간광고를 지금은 대체 누가, 어떤 이유에서 막고 있는 것일까. 대통령령 개정 사안이니 국회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명확하다. 그것도 이명박 정부가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출범시킨 4개의 종편 채널이 중간광고는 물론 출범 때부터 누리고 있는 온갖 특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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