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上) - 회담 앞두고 쏟아진 장밋빛 그림들

손석민 기자 hermes@sbs.co.kr

작성 2019.03.11 15:32 수정 2019.03.17 11:5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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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안팎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사실상 빈손 회담으로 끝났다.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주고받는 구체적 진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북미가 마주한 냉정한 현실의 벽 앞에서 멈춰 섰다. 다만, 북미가 서로 원하는 바를 실무 선을 넘어 정상 간의 대화 속에서 주고받았다는 점은 향후 회담을 위한 한 가닥 희망의 끈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진일보를 위해 하노이 회담 전과 회담 진행, 그리고 이후를 3편으로 나눠 정리해봤다.

모든 이야기에는 결과론적이라는 주석이 붙여질 것이다. 누구를 탓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시점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왔든 하노이 회담 결과와 맞춰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추정과 분석의 근거는 최대한 등장인물의 공식 언급을 중심으로 했다.
김정은 트럼프2차 정상 회담을 향한 기대치는 새해 초부터 북미 정상이 키웠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월 1일 신년사에서 "언제든 미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고 선언했다. 전제 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용의도 밝혔다. 자신의 선의에 대한 꼬리표도 달았다. "미국이 오판해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하노이 회담 결렬 전후로 보인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의 움직임과 오버랩되는 대목이다.

미국의 첫 반응은 예상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통해서였다. 현지시간 1일 "나도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고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이 위대한 경제적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깨닫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루 뒤 새해 첫 각료회의에서는 김 위원장으로부터 받았다는 '훌륭한 친서'를 들어 보이면서 "매우 좋은 관계를 만들어왔다"고 화답했다. 그런데 트럼프 역시 단서를 달았다. "우리는 잘 지내왔지만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서두를 필요도 없다"고 했다. 내용만 떼놓고 보면 김정은의 신년사처럼 하노이 회담 이후에 내놓은 발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두 정상의 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한 '톱다운' 방식의 2차 회담 추진은 보름 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미로 본격화했다. 김 부위원장이 1월 17일 워싱턴에 도착했을 때 마중을 나간 사람은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였다. 지난해 8월 임명된 이후 북측의 외면을 받았던 비건은 이 자리에서 김영철은 물론 자신의 협상 상대, 카운터파트로 새로 등장한 김혁철 전 스페인 대사와도 처음 만났다. (김혁철의 등장과 이전 북미 협상 대표 선수였던 최선희 부상의 2선 후퇴(?)는 다음 편에서 기술할 것이다)
북한 김영철과 미국 폼페이오, 비건(사진=미 국무부 제공/연합뉴스)
▲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

김 위원장의 친서(지난해 1차 회담 전보다는 작은 크기의)가 동반된 김영철의 방미에서 2차 정상회담의 윤곽이 잡혔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영철 간 90분 동안의 면담 후 보도자료를 통해 "2차 정상회담이 2월 말에 개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베트남이라는 말이 파다했지만 회담 장소는 공개하지 않았다. 서로 간에 밀고 당기기가 끝나지 않았던 건데 이 즈음 미국은 항구도시인 다낭을, 북한은 대사관이 있는 하노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날짜부터 잡고 시작한 2차 회담, 하지만 정작 회담의 성패를 가를 의제 협상은 회담 20일 전인 2월 6일에야 시작했다. 개문발차(開門發車) 형식의 불안한 시작이 1차 싱가포르 회담에 이어 재연된 것이다.

2차 정상회담 개최가 공식화하면서 우리 정부는 회담의 핵심인 의제 협상을 뒷받침하기 위한 각종 장치들을 본격 거론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같은 남북 경협 사업이었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1월 11일에 대량 현금의 북한 유입 없이 개성공단을 재개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에 대해 연구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2월 19일 한미 정상회담 통화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견인하기 위한 상응조치로 한국의 역할을 활용해달라"고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전화 통화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다면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부터 경제협력 사업까지 그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하노이 회담 이틀 전, 청와대는 북미가 하노이에서 종전 선언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김의겸 대변인은 "어떤 형식의 종전 선언이라도 환영"이라면서 "종전선언은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 본질적 의미"라는 풀이도 했다. 우리 입장에서 북미를 견인할 공약수로 남북 경협 카드를 뽑아 든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은 유엔 제재 전반을, 미국은 영변 플러스알파 카드를 던졌다. 남북 경협 정도로는 북미가 원한 카드 값을 메울 수 없다는 현실적 간극을 보여줬다.

반면, 1월과 2월 워싱턴 조야에서는 회담 준비 부족과 부실한 합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과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적인 주류 언론이 회의론을 키웠지만, 여당인 공화당 내 대북 불신론도 상당했다. 상원 군사위 민주당 간사인 잭 리드 의원은 "북한이 핵 시설과 물질에 대해 밝힌 게 없기에 구체적인 결과가 도출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예견했다. 상원 외교위 민주당 간사인 밥 메넨데스 의원은 "성공한 회담을 위해 필요한 준비 작업, 특히 한반도 비핵화 정의에 대한 합의조차 제대로 이뤄지는 것 같지 않다"고 우려했다. 공화당 소속 코리 가드너 상원 외교위 동아태 소위원장은 "비핵화를 향한 구체적인 조치가 없고 북한의 거짓된 약속만 반복될 정상회담이라면 취소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지만 결과를 보면 향후 의회의 목소리가 더 커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됐다.

이 지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회담 전 협상 전략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실무 협상을 이끈 비건 대북 특별대표는 대표 취임 후 처음으로 1월 31일 스탠퍼드 대학 강연에 나섰다. 비건 대표는 강연에서 "지난해 10월 폼페이오 장관 방북 시 북한이 영변 플러스알파에 대한 이행 의사도 밝혔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방북 실무협상을 1주일 앞둔 시점에서 북한에 미국의 목표를 분명히 전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도 비건 대표는 '상대가 모든 걸 하기 전까지 미국이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며 북한에 동시적 병행적 추진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또 당초 미국이 북한에 강력하게 요구해왔던 선(先) 핵 신고도 "어느 시점에는 얻어낼 것"이라며 후 순위로 미뤄뒀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비건 대표의 '조건부 영변 플러스 알파' 언급은 2차 회담을 위한 절대 선결 조건보다는 함께 풀어가야 할 장래의 '로드맵' 성격으로 여겨졌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북한이 가장 바라는 선물이자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경제 제재 완화 가능성도 솔솔 흘러나왔다. 폼페이오 장관은 2월 15일 동유럽 순방에서 "대북 제재 완화의 대가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미국의 목표"라며 운을 뗐다. 회담을 닷새 앞둔 2월 21일 고위 당국자는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모든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북한은 실무 협상에서 이에 대한 확답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비건 대표조차 2박 3일간의 방북 협상 후 "미국은 선택했지만 북한이 선택할지는 북한만이 알고 있다"고 답답함을 나타냈다. 이런 모든 상황의 종합판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로 떠나기 전 "2차 회담은 성공할 것"이라면서도 한 자리에서 5번이나 밝힌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결과적으로 볼 때 미국은 회담 시작 전 이미 퇴로를 열어두고 있었다.

(사진=미 국무부 제공,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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