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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써보지도 않고 '안 된다'는 공무원들을 위한 팩트체크

친환경 종량제 봉투 취재 한 달, 씁쓸한 뒷이야기ⓛ

우리가 매일 쓰고 버리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는 일회용 비닐입니다. 각종 생활 쓰레기를 담은 이 비닐 봉투는 땅에 매립돼 분해되거나 (혹은 썩지 않은 채 묻혀있거나) 태워집니다. 일주일에 2~3번씩 쓰레기를 가득 채워 종량제 봉투를 내다 버리면서도, 종량제 봉투도 일회용 비닐이란 사실을 인지하진 못했습니다. 최근 종량제 봉투 관련 취재를 시작하며 '아 일회용이었지' 깨닫게 됐습니다.

혹시 이 사실은 알고 계셨나요? 종량제 봉투를 만드는 비닐은 상당수 '새 비닐'입니다. 종량제 봉투 제작을 위해 새로 만들어진 비닐 봉투라는 뜻입니다. 그게 뭐 그렇게 대수냐 싶으실 수도 있는데, 여기서 생각해볼 지점이 있습니다.

종량제 봉투를 꼭 새 비닐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버리는 각종 비닐 쓰레기, 이런 버려진 비닐을 재활용해서도 종량제 봉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비닐도 플라스틱 원료로 만드는지라 폐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이 알려진 대로 썩는 데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고 태워도 완벽히 소각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엔 국내 폐플라스틱 쓰레기를 해외로 불법 수출했다가 국제적 망신을 당한 일이 있었죠.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종량제 봉투를 폐비닐 쓰레기를 재활용해 만드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판매된 쓰레기 종량제 봉투 (음식물 폐기 전용 용기는 제외)는 약 10억 장(9억 5천700만 장)입니다. 10억 장에 달하는 '일회용' 종량제 봉투를, 폐비닐을 재활용한 제품으로 사용한다면, 10억 장의 일회용 '새 비닐' 쓰레기를 줄이는 효과가 발생한단 뜻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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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자체 공무원 "약해서 못 써요"…진짜일까? 검증해보니
 
물론 전제가 있습니다.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재활용 제품의 품질이 떨어져서 쓰레기 폐기에 문제가 있다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취재를 해봤습니다. 서울과 지방 일부 지자체에 전화를 돌려봤습니다. 대답은 비슷했습니다. 일단 대부분의 지자체는 재활용 원료가 '일부 섞인' 종량제 봉투를 쓰거나, 아니면 아예 '새 비닐'로 만든 종량제 봉투를 쓰고 있었습니다. 재활용 원료가 섞인 비닐을 쓰는 곳 지자체는 비율이 10~20% 정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재활용 제품을 많이 쓰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공통적인 답변은 "약해서 못 쓴다"였습니다. 한 지자체 담당자는 "약해서 불량이 많이 나온다. 아무리 재활용이라도 불량인 제품을 내놓을 순 없지 않겠냐"라고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습니다.

검증을 해봤습니다. 일단 정부 기준을 확인해봤습니다. 정부의 <녹색지침 구매촉진에 관한 법률>이 규정하는 '친환경' 종량제 봉투의 기준은 재활용 원료가 40% 이상 섞인 제품입니다. 지자체 담당자들의 말에 따르면, 정부 기준에 맞춰 종량제 봉투를 제작할 경우 불량이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또 정부가 이런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기준을 높게 잡았단 뜻이기도 합니다.

수도권의 한 비닐 제조 업체를 찾아가 봤습니다. 36년 동안 비닐 봉투를 만들고 있고, 재활용 원료를 섞은 비닐 봉투 제작도 20년 넘게 하고 있다는 업체 대표는 '재활용 원료를 사용해 생산한 비닐의 90%는 해외로 수출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업체는 재활용 원료를 60% 이상 사용한 종량제 봉투 제작이 가능한 곳인데, 쓰겠다는 지자체가 없어서 납품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약해서 그런 건 아닐까요?' 기자의 물음에 대표는 정부 공인 기관의 시험 성적서를 보여줬습니다. 정부의 쓰레기 종량제 시행지침이 규정하는 종량제 봉투의 인장강도(당기는 힘을 견디는 정도)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 결과였습니다. 정부 기준보다 튼튼하단 이야기입니다.

다음 편 취재파일에서 좀 더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지만, 재활용 원료 100%로 만든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는 지자체도 있습니다. 그중 한 곳이 충북 제천시인데요, 제천시 종량제 업무 담당자는 "지난 2010년부터 모든 종류의 종량제 봉투를 재활용 비닐로 사용하고 있지만 봉투 품질에 대한 민원은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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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써보지도 않고 '안 된다'…'재활용 원료 종량제 봉투' 존재 모르는 담당 공무원도

다시 '약해서 못 쓴다'라고 답했던 지방자치단체들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담당자에게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재활용 원료로 만든 종량제 봉투를 사용해본 적이 없으신데 약하다는 건 어떻게 아시냐. 직접 시뮬레이션을 해보셨냐"라고요. 돌아온 답은 이랬습니다.

"실험을 해본 적은 없는데, 우리가 제품을 납품받는 제조업체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재활용 원료로 만든 종량제 봉투는 만들 수도 없고 약해서 사용하기 어렵다고요"

재활용 원료로 만든 비닐 봉투의 품질이 떨어졌다는 건 사실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공무원들의 말이 아예 틀린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동안 기술 개발이 많이 이뤄졌고, 앞서 언급한 사례들처럼 이제는 재활용 원료로만 만들어도 품질이 좋은 제품 제작이 가능합니다.

환경부 종량제 업무 담당자는 '왜 지자체들이 이런 오해를 하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예전에는 분명히 제품 질의 차이가 있었을 겁니다. 담당 공무원이 예전에 혹시 민원을 겪었거나 하면 아무래도 새 비닐로 만든 종량제 봉투가 더 튼튼하다는 선입견이 생길 수 있겠죠. 주민들이 한 번씩 민원을 제기하게 되면 (공무원들이) 행정편의적으로 (새로운 제품으로) 바꾸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재활용 원료로 만든 종량제 봉투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동문서답하는 담당자도 있었습니다. 한 지자체 담당자는 기자의 질문을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종량제 봉투'로 착각하고 "이제는 그런 봉투를 만들지 않는다"라고 답했다가 "내용을 잘 알지 못했다"며 정정하기도 했습니다.

● 뒷짐만 지고 있는 환경부…지자체 전수 조사하고도 발표 못 하는 이유는?

지자체 잘못만 있을까요? 환경부에도 적잖은 책임이 있었습니다. 환경부는 <쓰레기 종량제 시행지침>을 통해 "지자체가 종량제 봉투를 제작할 때는 재활용 제품을 우선 제작 구매 사용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재활용 제품의 기준은 앞서 언급한 <녹색지침 구매촉진에 관한 법률>이 규정하는 '재활용 원료 40% 이상'입니다.

하지만 이런 지침을 만들어 놓기만 했을 뿐 지자체가 제대로 지키는지 관리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환경부 담당자는 "생활폐기물에 대한 책임이 지자체에 있기 때문에 환경부는 원칙 정도만 법으로 다루고 있고 세부 사항은 지자체가 조례를 만들어서 운영해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무조건 지자체에 맡겨 놓을 수는 없으니 쓰레기 종량제 시행 지침을 배포하고 표준조례안도 내려보내면 지자체가 여건에 맞게 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자체가 시행지침에 맞게 조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지 정부가 확인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세부적으로 하진 못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환경부는 최근 언론의 지적이 이어지자 전국 229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재활용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는지 여부를 전수 조사했지만,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서울의 현황은 집계조차 하지 못했고, '재활용 종량제 봉투를 쓰고 있다'라고 답한 지자체의 경우도 각각 재활용 원료를 어느 정도 사용하고 있다는 건지, 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지 못해 전수조사를 하고도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의 경우, 소비자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자체가 '선택'한 종량제 봉투를 무조건 구매해야 합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종량제 봉투를 꼭 '새 비닐'로 만든 제품만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자체와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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