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딸능돈' '푸뢰시된틋'…아, 대한제국!

홍지영 기자 scarlet@sbs.co.kr

작성 2019.02.14 14:0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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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는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으로 일제가 조선 침략과 약탈을 위해 지난 1899년 완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10여 년 전에 조선이 미국을 이용해(?) 경인선을 건설하려고 계획했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구한말 초대 주미공사관의 외교 문서에서 이런 사실이 드러났는데요. 구한말의 외교를 비롯한 자료들이 거의 없었던 학계에서 아주 반색을 하며 의미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이 문서들은 독립운동가였던 월남 이상재 선생의 후손이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미국공사왕복수록>이라는 문헌에 수록된 <철도약정>을 보면 1조에서 철도 문제를 의논하고 있습니다.
미국공사왕복수록제1조: 우리가 철로를 조선 경성 제물포 사이에 설치하는데, 무릇 해당 개설 도로와 역사 건축 부지의 토지는 특별히 정부에서 면세를 허용할 일

미국과 협상 중이었는데 미국 측 주체는 '뉴욕 법관 딸능돈'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어떤 이름을 이렇게 적었을까? '딸능돈'은 '달링턴'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쌀능돈<미국공사왕복수록>에는 당시 미국과 협상 중이던 현안과 공사관 운영, 공관원들의 활동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어 당시의 '외교편람'이라고 일컬을 만합니다. 미국 대통령 이름을 클뢰뷘란듸(클리블랜드), 대통령은 영어 발음 그대로 푸뢰시된틋(프레지던트)이라고 적었습니다.
푸뢰시된틋그밖에도 각국 공관장 이름과, 주소 등을 꼼꼼히 기록하고, 미국의 국경일 등을 기록하고 있어서 본격적으로 외교를 펼칠 준비를 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초대 미국공사관의 궁핍한 살림살이도 알 수 있습니다. 이건 공식 문서가 아니라 이상재 선생이 미국 부임 기간에 가족들과 주고받은 38통의 편지 중에 적혀 있습니다. 예산은 적은데 미국 물가는 너무 비싸다는 하소연을 가족들에게 한 것이죠. 쌀과 고기 배추값 등을 예로 들었는데, 당시 미국에서 그런 재료를 구하기도 힘들었을 상황을 생각하면 가격이 얼마나 비쌌을지 짐작할 만합니다.
궁핍한 살림하지만 자주외교를 하기에는 여전히 힘이 벅찼습니다. 조선을 속국으로 여겼던 청나라는 사사건건 시비를 겁니다. 여기에 굴할 수 없다는 의지도 보입니다.

"중국 공사는 매번 우리 위에 서고자 하고…. 이 나라에 주재하는 각국 공사는 30여 개국으로 모두 부강한 나라이고, 오직 우리나라만 빈약하지만 각국 공사와 맞서 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때 만약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꺾이면 국가의 수치이고, 사명을 욕보이는 것이다"
국가의 수치당초 청나라는 조선 외교관을 미국에 파견할 때 <영약삼단>이라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조선 공사가 미국에 도착하면 먼저 중국 공사를 만나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중국과 협의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초대 공사 박정양과 서기관 이상재는 중국 공사를 방문하지 않고 바로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려 했던 사실이 문헌에 기록돼 있습니다. 동국대 한철호 교수는 "주미 공사가 국제관계에 따라 자주국으로서 외교를 전개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기록한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이상재이렇게 청나라의 눈엣가시처럼 굴었던 박정양과 이상재는 결국 미국에 1년도 머물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