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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은둔의 워싱턴 출장…北 김영철 숙소에선 무슨 일이?

[월드리포트] 은둔의 워싱턴 출장…北 김영철 숙소에선 무슨 일이?
● "오긴 오는 거야?"…너무나 조용했던 北 김영철 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미국 방문은 처음부터 베일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김 부위원장의 베이징 도착이 임박해서야 정확한 미국행 항공 시간이 알려졌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까지 베이징 공항에 나타나 행선지가 어디인지 헷갈리게 만들면서 워싱턴 특파원들을 한동안 가슴 졸이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더욱 이상했던 건 백악관, 국무부 등 미국 정부 기관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문 사실 자체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던 겁니다. 북한 최고위급 관리가 역사상 최초로 워싱턴을 직항으로 방문한다는데 너무나 조용한 반응이었습니다. 국무부에 여러 차례 질의를 했지만, 그때마다 "발표할 면담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김영철 부위원장의 숙소가 어딘지는 더욱 오리무중이었습니다. 백악관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에 묵는다는 얘기부터, 백악관 근처 여러 호텔들이 후보지로 거론됐습니다. 미국 정부는 물론 우리 정부도 숙소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일이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SBS 취재팀은 처음에는 과거 클린턴 대통령 때 조명록 북한 인민군 차수가 묵었던 메이플라워 호텔을 가봤습니다. 일본 매체들이 나와 있기는 했지만, 김영철 부위원장이 묵는다고 보기에는 긴장감이 너무 떨어졌습니다. 보안 요원도 없었고, 직원들에게 문의를 해보니 "김영철이 누구냐?"는 물음이 되돌아왔습니다.

김영철 부위원장의 비행기가 내리기 직전에야 김 부위원장이 묵을 숙소가 듀폰서클 호텔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 가보니 보안 요원들이 이미 집결해 있었고, 현장에는 마크 내퍼 전 주한 미국 대사 대리가 국무부 직원들을 지휘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김영철 부위원장 워싱턴 도착
● 북한 대표단 동선 노출 최소화…美 국무부의 특급 경호

덜레스 공항에는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나가 김영철 부위원장 일행을 맞았습니다. 공항에서도 기자들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고, 김 부위원장은 국무부 요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호텔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호텔 경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호텔 직원이나 투숙객으로 보이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어폰을 착용한 사람이 점점 늘어났고, 자세히 보면 총기를 휴대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국무부 외교경호실(DSS) 소속이라고 추정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비밀 요원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주한미군으로 중대장 생활을 해서 한국에 대해서 잘 안다"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듀폰서클 호텔은 4성급으로 최고급 호텔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일반 투숙객과 뒤섞여 있어 다소 어수선하기도 했습니다. 1층 로비에 있는 행사장에서는 다른 일반 단체들이 행사를 하고 있었고, 관광객들도 자유롭게 드나들었습니다. 호텔 로비에서 투숙이 가능한지 물었는데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8층이 가장 높이 있는 숙소였는데, 8층은 이미 예약이 끝났고, 그 아래층은 방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김 부위원장과 똑같이 2박 3일 일정으로 투숙했는데 호텔 직원은 하루 지나 방이 나면 8층으로 옮겨주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100여 명의 기자가 호텔 1층에서 김영철 부위원장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도착했다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눈까지 내리고 기온이 많이 내려갔지만 기자들은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김영철 부위원장은 호텔 뒷문으로 들어가 버렸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뒷문으로 입장하는 걸 찍은 외신 기자도 있었습니다. 정문을 지키고 있었던 기자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국무부 직원들이 동선 체크를 다 해둔 상태였고, 기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피해 눈에 안 띄게 입장을 시켜줬던 겁니다.
[월드리포트] 은둔의 워싱턴 출장…北 김영철 숙소에선 무슨 일이?
● 金 부위원장 묵는 숙소 올라가 봤더니…분주한 회담 준비

일단 취재팀도 호텔 내부 숙소에 들어왔습니다. 호텔 내부 진입은 투숙객 카드가 없으면 불가능했지만, 방을 잡은 사람들까지 막지는 않았습니다. 승객용 엘리베이터는 투숙객들의 경우 보안 요원들이 아무 문제없이 타게 했습니다. 엘리베이터로 8층까지는 접근이 가능했습니다. 8층에 막 내렸더니 한쪽 편으로 외무부 보안 요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방 앞에는 노트북이 놓여 있었고, 그 앞을 지나가려고 했더니 순식간에 5~6명이 나와 "이곳으로 지나가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더니 때마침 지나가던 북한 대표단 일행을 복도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급했는지 노트북을 들고 가볍게 뛰는 북측 인사도 보였습니다. 숙소 한 곳의 문이 열린 걸 지나가면서 봤는데, 양복 상의에 특유의 휘장을 단 북한 관리들이 3, 4명 모여 서류를 보면서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진두지휘한 인물은 최강일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 직무대행이었습니다. 이들은 9층에 모여 뭔가 작업을 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9층은 키를 따로 받아야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국무부 직원이 키를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설명을 하는 장면을 기자도 옆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북한 직원들은 "그럼 로비에 가서 키를 받아와야 하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워낙 경황이 없었는지 기자가 옆에 서 있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아차린 것 같았습니다.

최강일 북미국장 직무대행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지 "선생은 기자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답을 하자 엘리베이터를 타려다 말고 내리더니 직원들을 데리고 다시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한 가지 특이했던 건 북한 대표단이 기자에게 직접 나가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겁니다. 바로 미국 국무부 보안 요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 같았는데, 미국 요원들이 기자에게 다가와 내려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번 김영철 부위원장과 함께 워싱턴에 온 인물 가운데 박철 아시아태평양위원장은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직함도 사실 정확하지 않고 미국 일부 언론이 그를 그렇게 소개했을 뿐입니다. 승객용 엘리베이터에서 그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박 위원장도 9층으로 올라가려는 중이었는데, 승객용 엘리베이터는 9층에 올라가지 않는 걸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는 기자와 함께 어쩔 수 없이 1층까지 다시 내려가게 됐습니다. 양복 상의에 있는 휘장을 보고 북한 대표단인 걸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더니 박 위원장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인사를 받아줬습니다. 김영철 부위원장이 도착한 게 맞냐는 기자의 질문에 "도착하셨다"고 확인을 해줬습니다. 회담 준비 상황을 물었더니 "이제 도착했으니 준비 잘해야죠"라고 답했습니다. 시차 문제는 없냐고 물었더니 "괜찮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자신도 8층 숙소에 있다고도 답을 해줬습니다. 그는 1층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8층에 내려 급하게 사라졌습니다.

9층은 외부인이 전혀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상계단이 열려 있어 9층에 올라가 봤는데 투숙객 카드키로도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미국 보안 요원이 문을 열고 나오면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큰 회의실에 여러 직원들이 모여 회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북한 대표단과 똑같이 호텔에서 자기로 결정하고, 8시 뉴스를 아예 호텔 방에서 라이브로 연결하기로 했습니다. (미국 시간으로는 아침 6시가 한국 시간으로 저녁 8시입니다.) 호텔 방 라이브 연결을 한다는 게 대단히 이례적이기는 했지만, 김영철 부위원장이 바로 위에 묵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방송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사를 정리하면서 새벽에 잠깐 눈을 붙였는데, 간간이 한국말로 웅성거림이 들렸습니다. 아마도 시차 때문에 북한 대표단이 쉽게 잠을 자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새벽에도 뭔가를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 김영철과 미국 폼페이오, 비건(사진=미 국무부 제공/연합뉴스)
● 폼페이오 장관과 회담도 호텔 안에서…백악관 방문이 유일한 외출

호텔 1층에는 아침 식사가 가능한 레스토랑이 있었습니다. 방송을 마치고 난 뒤에 혹시나 북한 대표단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 식당에 가봤지만, 북한 사람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들은 모든 식사를 룸서비스로 주문해서 해결했습니다. 북한 대표단이 묵은 숙소에서 내려오는 직원이 룸서비스로 주문한 아침 식사를 가지고 내려오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북한 대표단은 이동이 쉽지 않았습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자신의 차량을 직접 공수해왔지만, 김영철 부위원장은 워싱턴에서 자신의 차량이 없었습니다. 국무부에서 제공한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움직이기도 쉽지 않았고, 걸어 다닐 수도 없었기 때문에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고위급 회담 장소가 어딘지도 궁금했습니다. 결국 북미 고위급 회담은 호텔 내부 회의실로 결정됐습니다. 김영철 부위원장이 이동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미국 시간으로 18일 오전에 비건 대표와 함께 나타난 폼페이오 장관은 9층 회의실에서 기념 촬영도 하면서 고위급 회담을 공식화했습니다.

50분 남짓한 짧은 회담 직후 폼페이오 장관은 아무 말 없이 호텔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시차를 두고 김영철 부위원장도 백악관으로 출발했습니다. 호텔 뒤편으로는 딱 봐도 국무부 차량이라고 생각되는 대형 밴 여러 대가 주차돼 있었습니다. 검은색으로 창문이 코팅돼 있어서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는 차량이었습니다. 김 부위원장 일행은 이 차량을 이용했는데, 국무부는 언제든지 북한 대표단을 태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후에는 폼페이오 장관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오찬을 겸한 회담을 했는데, 호텔에서 모든 걸 해결했습니다.
최강일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 대행 (사진=연합뉴스)
● 공항에서도 특급 의전…金 부위원장은 '묵묵부답'

덜레스 공항에는 해외 장관급 귀빈들이 들어가는 전용 통로가 있습니다. 국무부에서 사전 승인한 귀빈들만 탑승 절차를 최소화한 특급 의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북한 대표단이 떠나는 날 호텔에서 숨바꼭질하듯 기자들을 따돌리고 떠난 김영철 부위원장을 이곳에서 또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미 공항에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마크 내퍼 전 주한 미 대사 대리가 나와서 동선을 일일이 체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김 부위원장을 기다리는 동안 협상 관련한 질문에는 전혀 답변하지 않았지만, 거꾸로 이번 회담을 어떻게 봤는지 기자들의 의견을 묻기도 했습니다.

김 부위원장은 공항에 나타나 국무부 직원들의 철통 경호를 받으며 입장했습니다. 현장에는 일본 기자들도 여러 팀 나와 있었는데 기자들이 어떤 질문을 해도 김 부위원장은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표정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김 부위원장을 제외한 대표단은 따로 짐을 챙겨 나타났습니다. VIP 전용 통로를 이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다른 여행객들과 마찬가지로 출국 절차를 밟았습니다. 여행용 가방을 끌고 이동하는 북한 대표단을 만났는데, 협상과 관련한 여러 질문을 했지만 답변이 없었습니다. 최강일 북미국장 직무 대행이 "노코멘트"라고 짧게 답변한 게 전부였습니다. 국무부 직원들이 엘리베이터를 따로 잡아줬고, 취재진은 엘리베이터 탄 이후에는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김영철 · 트럼프
김영철 부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 친서 전달
● 북한 손님 세심하게 신경 썼던 美…2차 북·미 정상회담 결실로 이어질까?

김영철 부위원장의 미국행은 북한으로서는 상당한 결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오랫동안 적대 관계였던 만큼 적진 한복판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칫 경호가 소홀하기라도 하면, 외부로 이동하다가 뜻밖의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렸던 김 부위원장의 요청을 미국이 어느 정도로 수용할지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을 겁니다. 이번 김 부위원장의 방문 내내 현장에서 취재를 해보니 북한의 요청을 미국이 어떻게든 수용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급 호텔을 빌려 화려하게 대접한 건 아니었지만,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준비 협상으로는 세심한 배려를 했다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경호, 의전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고 동선까지 계산하며 착오가 생기지 않게 미국도 단단히 준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김영철 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 이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월 말로 공식 확정됐습니다. 김영철 부위원장의 이번 출장이 또 한 번 열리게 될 세기의 담판에서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봅니다.

(사진=미 국무부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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