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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꿈에도 몰랐지만…박소연 대신 울며 사과한 '케어' 직원들

[취재파일] 꿈에도 몰랐지만…박소연 대신 울며 사과한 '케어' 직원들
당당했고,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지난 2011년 이후 안락사는 절대 없다며, 'No Kill Shelter(안락사 없는 보호소)'를 표방해온 동물보호단체 '케어'였습니다. 하지만, 케어의 박소연 대표가 암암리에 구조 동물들을 안락사해 왔다는 보도가 나가던 날 서울 종로구 케어 사무실에서 박 대표를 만났습니다.

"안락사를 알리지 않은 것은 미안하다", "앞으로 안락사를 중단하겠다"는 짧은 언급 뒤 박 대표는 인터뷰의 많은 부분을 안락사의 불가피성과 정당성을 설명하는데 할애했습니다. 박 대표가 그날 페이스북에 낸 입장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입장문은 주로 안락사의 정당성,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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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영하의 찬 바람이 부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 '케어'의 직원들이 나섰습니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면서도 동물을 구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일했다는 이들은 "안락사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직원과 국민을 속여 온 박소연 대표는 사퇴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안락사를 직접 지시하고도 당당했던 박 대표와는 달리, 추운 거리에 선 이들은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며 '죄송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미희 ('케어' 직원/광화문 기자회견에서) : 원망을 넘어서 저는 너무 부끄럽고, 아무 이유 없이 죽어간 그 동물들에게 너무나 미안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용기를 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동안 케어 내부에서 있었던 강압적인 업무지시, 무차별한 구조, 아무 준비가 안 된 상황을 실무자들에게 떠넘기는 대표의 횡포를 그동안 '그래 20년 동안 이 바닥에서 일한 사람이니 내가 알지 못한 걸 알고 있겠지', '이 사람 의견이 맞겠지' 하고 묵묵히 따랐습니다. 따른 결과가 이렇게 처참한 결과라는 것에 저는 너무 부끄럽고 그동안 묵인했던 제 자신에게 실망합니다.

이건우 ('케어' 직원/광화문 기자회견에서) : 저는 8년 정도 박소연 대표를 알았습니다. 제 인생의 3분의 1 정도, 8년 동안 박소연 대표님을 알았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저는 케어의 봉사자로 활동했습니다. 그런 저에게도 안락사 사실을 숨기고 저로 하여금 떳떳하게 '앞으로 행복하게 살 동물을 위해 모금한다'고 말하게 했습니다. 정말 죄 없는 동물들에게 죄송합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케어에서 일한 것도 죄송합니다.
동물단체케어  '수백 마리 안락사'
● 직원들도 반대한 박소연의 안락사, 이번이 처음 아니다

애완동물 안락사 자체가 불법이거나 비윤리적인 것은 아닙니다. 동물 복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수의학적 소견과 지자체 등 관할기관의 승인을 거쳐 안락사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생명을 거두는 일이기에 동물보호 활동에 몸담는 이들 대부분은 안락사 결정에는 뚜렷한 근거와 투명한 절차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하지만 박소연 대표가 행해온 안락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직원들도 모르게, 소수의 구성원만 들어가 있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안락사 지시와 결정이 이뤄졌고 그들 외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행태는 이번이 처음도 아닙니다.

지난 2011년, '케어'의 전신 '동물사랑실천협회(동사실)' 대표 시절 박소연 씨는 동물 안락사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습니다. 투명하고 엄밀한 절차 없이 안락사를 시행하다 보니 '동사실'에 위탁된 주인 있는 개까지 안락사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적절한 절차 없이 안락사시킨 개 20마리의 사체를 서울 유명 사립대 수의과대학에 넘긴 것도 드러나 검찰 수사까지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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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동사실'에서 활동했던 A 씨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에도 박소연 대표가 독단적이고 무원칙한 안락사를 지시해 직원들 반발이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결국 직원들의 요구로 단체 내에 안락사 대상 동물을 심사하는 '보호소 운영 협의회'가 생겼지만 무용지물이었다고 A 씨는 털어놨습니다.

A 씨 (前' 동물사랑실천협회' 활동가) : 사실상 박소연 대표가 안락사하라고 지정하면 그 개체들을 걸러내는 거였어요. 원하는 만큼 숫자가 안 나오니까 자기 친분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다음날 바로바로 안락사를 시행해버렸죠.

세월과 함께 '동물사랑실천협회' 박소연 대표의 안락사 파문은 잊혀지고 박 대표는 '케어'의 대표로 간판을 바꿔 달고 돌아왔습니다. 대통령에게 유기견도 선물하고, 연예인 홍보대사와 구조 활동도 벌이고, 여러 단체들과 후원 협약도 맺으며 박 대표는 '구조의 여왕'이 됐습니다. 하지만 8년 뒤 반복된 박 대표의 안락사 파문은 그동안 박 대표에게 반성의 과정이 있긴 했는지 의문을 품게 합니다.
케어 박소연 대표
● "2분에 1통씩 끊어진다"는 후원…'끝까지 동물 곁에 남겠다'면 진정어린 반성이 먼저

보도 이후 '케어'에는 후원자들의 후원 중단 전화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2분에 1통꼴로 후원 중단 전화가 걸려온다"는 말도 나옵니다. 이에 '케어' 직원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습니다. 한 직원은 추운 겨울 보호소에 있는 동물들이 끊어진 후원에 폐사하지 않을까 며칠째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때문에 '케어'의 직원들은 남아있는 동물들을 위해서라도 박소연 대표가 책임지고 사퇴해주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성훈 ('케어' 직원/광화문 기자회견에서) : 하지만 케어가 박소연은 아닙니다. 케어는 여기에 나와 있는 추위를 견디며 서 있는 우리들, 그리고 케어가 지금 보호하고 있는 모든 소중한 동물 588마리, 그리고 케어를 믿어주고 후원해줬던 여러분 모두입니다. 저희는 케어가 이대로 쓰러지게 두지 않겠습니다. 박소연이 없는 케어를 저희는 지켜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부디 끝까지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러나 박소연 대표는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표는 "여러 가지 의혹들을 제대로 소명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의혹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사퇴는 되레 무책임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의혹이 불거진 내용에 관한 자료와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며 반격에 나설 것을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케어'의 활동 원천인 후원자들과 시민들은 수년간 계속돼 온 박 대표의 거짓말에 실망과 분노를 표하며 떠나가고 있는데, 박 대표는 자신이 남아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반성'과 '사과', '책임' 보다는 '법적 대응', '의혹 소명'과 같은 단어를 앞세우는 박소연 대표의 수습 방식에 비난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박소연 대표는 이르면 오늘(16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세한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전날 저녁까지도 기자회견 시간과 장소가 공지되지 않아 실현될지는 미지수입니다만, 박 대표가 기존에 보여주지 않았던 진정어린 사과와 책임의 모습을 보여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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