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 km 떠돈 임시정부…독립 위한 고난의 27년, 그 발자취

3·1 운동-임시정부 100주년

정성엽 기자 jsy@sbs.co.kr

작성 2019.01.01 21:04 수정 2019.02.19 15:3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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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상욱 특파원>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침략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은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일제는 발악적으로 보복해왔지만, 임시정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중국 전역을 옮겨 다니며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그 고난의 여정을 정성엽 특파원이 따라가 봤습니다.

<정성엽 특파원>

윤봉길 의거의 배후가 자신이라고 스스로 밝힌 김구는 임시정부를 항저우로 옮깁니다.

자신은 중국 국민당 요인 추푸청의 도움을 받아 상하이 근처 자싱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추정위안/추푸청 선생 손자 : (윤봉길 의거는) 중국 국민들에게 항일 자신감을 심어줬습니다. 모든 중국이 흥분했습니다.]

김구는 일제와 밀정의 집요한 추적 속에 침실 아래 호수로 연결된 탈출구와 나룻배로 위기의 순간들을 넘겼습니다.

김구 선생은 당시 낮에는 배를 타고 이 호수를 돌고 밤이 돼야 땅에 머무는 생활로 일제의 추적을 피해 왔다고 백범일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민당 정부와 원활한 협조가 필요했던 임시정부는 당시 중국 수도가 있는 난징 근처 전장으로 이동합니다.

김구가 장제스 총통을 만나 한인 군사 간부 양성을 시작했지만, 일제의 포탄이 난징에 쏟아지자 다시 피란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목선 한 척에 운명을 맡긴 채 양쯔강을 거슬러 올라 터 잡은 창사에서 임시정부는 최대 위기를 맞습니다.

임시정부 요인들과 가족들이 살았던 이곳에서 김구, 지청천은 독립운동의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일제의 밀정이 회의실에 침입해 권총을 난사했습니다.

총탄이 심장 앞에서 기적적으로 멈춰 김구는 소생했지만, 코앞까지 밀고 들어온 일제를 피해 임시정부는 광저우와 류저우를 거쳐 치장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이동 거리만 4,000km에 달하는 떠돌이 생활 끝에 도착한 충칭에서도 100여 명의 임정 인사들은 안도할 수 없었습니다.

충칭에서도 일제의 폭격으로 네 차례나 청사를 옮긴 끝에 마지막으로 정착한 롄화츠 청사가 바로 이곳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로 남아 있습니다.

충칭 임시정부는 광복군을 창설해 군사 기반을 마련했고 국내 진공 작전을 미군과 함께 준비했습니다.

[한시준/단국대 사학과 교수 : 연합군과 함께 일본군과 싸워서 일본이 패망하면 연합국의 지위를 획득한다. 이것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전략이었습니다.]

국내 진공을 불과 며칠 앞두고 일제의 갑작스러운 항복을 맞이한 임정 인사들의 표정에는 그래서 기쁨과 허탈함이 함께 묻어 있습니다.

이국땅에서 모진 풍찬노숙을 견뎌낸 임시정부 27년의 역사는 조국의 독립과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를 향한 민주주의 대장정이었습니다.

(영상취재 : 이국진, 영상편집 : 이승진, 자료제공 : 독립기념관·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3·1 운동-임시정부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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