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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혁신초교 6학년 정세희 양에게 물어봤습니다

- 혁신학교를 가까이 들여다보다 ②

[취재파일] 혁신초교 6학년 정세희 양에게 물어봤습니다
최근 서울 가락동 헬리오시티 혁신학교 논란의 본질과 별개로, '내 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라는 개인적인 궁금증이 들어 지난주부터 취재파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연재로, 직접 혁신학교를 찾아가 본 뒤 답을 내겠다고 했었죠. 그전에 혁신학교의 옳고 그름을 판단한 게 아니라,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스스로 내린 개인의 결심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그럼 필자가 내린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주지 근처에 '잘 운영되는' 혁신학교가 있다면 초등학생 때 적극적으로 보내겠다. 그러나 이후 혁신중, 고교 진학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진학 여부에 대해서는 그때 가서 아이 의사를 존중할 것이다."

제가 왜 이렇게 생각했는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자가 방문했던 서울 신은초등학교 전경
● 아이가 즐거워하는 학교…"목공 수업 기억에 남아요"

제가 방문했던 혁신학교는 서울 양천구 신정3동에 있는 신은초등학교입니다. 2011년 혁신학교로 개교한 이래 올해로 8년째를 맞았죠. 취재를 위해 SBS 카메라를 들고 정문에 들어섰을 때 마침 하교하는 아이들로부터 엄청난 인사 세례(?)를 받았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정서적으로 밝은 학교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학교 측 주선으로 이 학교 6학년에 다니는 정세희 양을 만났습니다. 학교를 방문하기 한 시간 전쯤 주선이 이뤄졌으며 사전 질문지가 전혀 없는, 즉석 인터뷰를 했습니다. 20분가량 거의 심층 면접을 하다시피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학교 생활이 어땠고 어떤 부분이 좋았으며, 왜 만족했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는데 대답에 막힘이 없었습니다. 10년 넘는 인터뷰 경험상 거짓이 있다면 말문이 막히는 대목들이 오기 마련인데 말이죠.

무엇보다 학교 생활에서 어떤 점이 좋았고, 왜 좋았는지를 분명하게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거짓 없이 학교 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정세희 양과의 인터뷰 일부를 고침 없이 그대로 옮겼습니다.
혁신학교 취재파일
- 지금까지 6년 동안 학교 다녀보니 어떤가요?
= 1학년 때부터 여길 다니고 있으니까 다른 학교는 모르잖아요. 전학 온 게 아니어서요. 다른 학교 애들 만나 이야기 들으면 '우리 학교가 좋은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 왜 좋다고 생각했죠?
= 수업이 재밌어요. 지금은 목공 수업이 제일 기억 남아요. 5학년 땐 목공으로 책 받침대를 만들었는데 그땐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서 좀 지루했죠. 하지만, 6학년 올라와서는 의자를 만들었고 작업 절반 정도를 직접 제 손으로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 친구들과 함께 팀을 꾸려서 하는 수업도 있나요?
= 네, 학년마다 있어요. 다른 학교가 학예회 할 동안 저희는 '혁신 한마당'이라고 직접 프로젝트를 꾸려서 이해하고 배웠던 걸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고 퀴즈도 내고 그랬죠.

-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나요, 어떤 주제로요?
= 올해는 '지구촌'을 배웠어요. 일본, 중국, 러시아도 배우고 유럽 쪽이나 북아메리카도 배우고. 다른 반들은 북아메리카를 선택했지만, 저희는 일본, 중국, 러시아의 의상을 소개했어요. 저랑 같은 반인 다른 팀들은 중국의 '캔다마'라는 놀이를 설명해줬고, 음식과 만리장성을 소개한 팀도 있었어요. 5학년 때는 한국사를 배우다 보니 한국사에 알맞은 연극하고 퀴즈, 발표를 했어요.

- 어떤 걸 맡았고 직접 연극을 해보니까 어땠나요?
= 저는 그.. 이순신 장군님 밑에 있는 사람을 뭐라고 해야 되죠? 아무튼 계급이 좀 낮은 역할이었는데도 역할을 맡게 되니 '이거를 더 좋게 할 수는 없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역사를 책으로 공부했을 때와 비교해 연극으로 해보니까 어떤지?
= 애들은 역사를 다 만화책으로 보잖아요. 만화책을 보면 실감 나지 않았는데, 직접 연극으로 해보니 그 상황이 더 이해가 간다고 해야 되나…. 역사 속 어려운 말들은 선생님들이 조금씩 알려주셨고, 거기에 저희가 연극으로 표현을 하니 더 이해가 갔어요.

- 혹시 공부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 여기가 공부보단 이해를 더 잘해야 된다고 하나…. 그렇다고 공부 스트레스는 없는 것 같아요.

● 학부모 생각에도 공감… "입시 걱정 다 똑같지만 아이 만족이 중요"

때마침 학교를 방문한 학부모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혁신학교에 아이를 보낸 것에는 큰 바람이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단지 아이가 좀 더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온 것일 뿐이죠. 물론 그들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집니다. 다만, 현 입시 제도가 그다지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라는 확신과 혁신학교의 교육 방식이 장래 아이에게 더 큰 도움이 될 거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두 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내고 있는 신은초 학부모 서승희 씨는 "일단 아이가 행복해해요. 학교 가는 걸"이라고 운을 뗐습니다. 신은초를 졸업한 큰 아이는 벌써 중학교 3학년인데 지금도 학교 공부를 싫증 내지 않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부모로서 가장 보람됐다는 겁니다.
서울 신은초 학부모 서승희 씨는 "장기적으로 아이의 인생을 봤을 때 혁신학교가 더 경쟁력을 키운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혁신학교 보내면 놀기만 한다는 우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서 씨는 "학력이 떨어진다, 공부 안 시키고 놀기만 한다는 우려는 우리 내부에서도 종종 회자되는 이야기"라면서도 "그저 점수 잘 받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방법을 깨우치는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주입식 교육보다 아이들이 몸소 깨닫는 방식이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보여도 훨씬 학습 효과가 좋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는 겁니다. 대입 체제도 수능 정시에서 점점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으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혁신학교 생활이 불리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강남에 있다가 혁신학교를 찾아 일부러 이사 왔다는 김혜진 씨는 '아이의 변화'에 주목했습니다. 김 씨는 다양한 문·예·체 교육을 통해 아이의 자존감을 찾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저희 아이는 되게 소심하고 나서기 싫어했어요. 선생님이 질문하면 대답도 잘 못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끌어내기 시작했어요. 어? 우리 아이가 극본을 썼다고? 깜짝 놀랐죠. 그리고 또 자기가 소품을 만들었대요. 미술을 너무 못하는 아이인데 자기가 소품 담당이었다고 얘기하는 걸 보면서 엄마도 모르고 본인도 모르던 것들을 끌어내 주는 노력이 너무 고마웠죠."
이 책에는 신은초 교사들이 그동안 아이들을 창의 인재로 키우기 위해 교육과정을 어떻게 개선하려고 고민해왔는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었던 건 교사들 역량이 한몫한다고 학부모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신은초 교사들은 교육과정을 직접 개발하고 자체 연구 스터디까지 하는 열정으로 유명합니다. 실제 이곳 교사 모임은 그동안 어떻게 교육과정을 개발했고, 효과가 어떠했는지 등을 체계적으로 검증한 노력의 과정을 책으로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신은초를 명문 혁신학교로 만든 밑거름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교사들의 학구열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 필자의 '용기'는 초등학교까지만…"교육청 간부도 혁신고 학부모는 없었다"

그러나 필자는 신은초에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에도 중·고교까지 혁신학교로 진학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솔직히 자신은 없습니다. 그런 제가 '용기'가 없는 걸까요?

여전히 수능을 비롯한 기존 입시 제도가 큰 축인 상황에서 중·고교까지 정규 교과정을 떠난 혁신에 아이를 맡길 수는 없다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진학은 아이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로니까요. 혁신학교 자체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혁신학교와 현 입시 제도와의 부정합성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딜레마 같은 겁니다.
혁신학교 취재파일
실제로 혁신학교 재학 경험이 있는 학부모 343명의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딜레마를 엿볼 수 있습니다. 교육부가 최근 공개한 '혁신학교 성과 분석'이라는 용역 보고서에 실린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입학 전에 '사교육비가 많이 들까 걱정했다'라고 응답(그렇다+매우 그렇다)한 수치가 21.5%로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혁신고교의 경우 사교육비에 대한 입학 전 우려보다 입학 후 '현실이 됐다'고 인정한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혁신학교라 하더라도 입시가 가까울수록 사교육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학력에 대한 사회 전반의 동의 수준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혁신학교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보완책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라고 진단했습니다.
혁신학교 취재파일
어쩌면 교육청 간부들 중에서 혁신고 학부모가 없는 현실도 이러한 걱정이 반영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실은 혁신학교 제도 시행 이후 서울과 경기 교육청 4급 이상 공무원 자녀 26명 중 혁신고에 입학했거나 재학 중인 자녀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정말로 혁신고가 현 입시 제도에 유리하다면 통학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전학하는 게 우리나라 교육열인데 말입니다.

혁신학교에 대해 쓰다 보니 글이 예상보다 길어졌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편을 추가 연재하려고 합니다. 1, 2편은 혁신학교의 긍정적인 부분들에 초점을 맞췄다면 다음 편은 '그늘'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그동안 혁신학교를 취재하면서 만난 분들 가운데에는 개선점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기자 수첩에 차곡히 기록했던 내용들을 모아 다음 연재에서 정리하겠습니다.    

▶ [취재파일] 나는 내 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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