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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변기가 한국에 왔다

남성 소변기를 전시회에 출품해 미술품 '창조'와 '해석'의 의미를 완전히 바꾸고 현대 미술의 새로운 역사를 쓴 것으로 평가받는 마르셀 뒤샹의 전시회가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막했습니다. 가장 놀랍고, 고유하고, 독창적이라는 뒤샹의 작품들을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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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뒤샹은 여성의 누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한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살롱 데 쟁데팡당에 출품하지만, 당시 입체파 심사위원들로부터 수정 제의를 받습니다. 그러나 뒤샹은 수정하는 대신 그림을 거둬들입니다. 이 사건은 대중들에게 뒤샹의 이름을 알리는 가장 큰 계기가 됐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1917년 뉴욕에서 열린 독립예술가협회 전시회. 엘리트주의나 상업적인 미술에 반기를 들고 자유로운 형식의 미술을 하자는 취지로 결성된 협회 이사를 맡았던 뒤샹은 시장에서 산 남성용 소변기를 출품합니다. 작품 제목은 '샘(Fontaine)'. 작품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고 전시되지는 못했지만, 미술품 해석에 있어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섭니다.
샘(Fontaine)
1919년 뒤샹은 카드 상점에서 구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복제품에 콧수염과 염소수염을 그려 넣고, 프랑스어 음성학을 이용한 말장난에 해당하는 표제어를 써넣은 작품을 만듭니다. 당시 다빈치의 그림은 순수 미술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만큼, 전통적인 예술을 부정하는 다다(Dada) 정신의 대변인으로 위치를 굳혔습니다.

1920년 뒤샹은 에로스 세라비(Rrose Sélavy)라는 여성 자아를 만들어 새로운 탐구를 시작합니다. 여장을 한 채 메이크업을 하고, 보석과 털목도리를 한 차림으로 사진을 찍어, 향수 라벨을 모방한 종이 콜라주 등의 작품에도 응용합니다.
에로스셀라비
● 말장난의 천재

뒤샹은 작가로서 뿐만이 아니라 말장난에도 천재적인 기질을 보여, 그것만을 연구한 논문이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남성 소변기를 출품할 당시 'R. Mutt'라는 필명을 썼는데, 자신이 구입한 변기 제조사인 'J. L. Mott Iron Works'에서 따온 것입니다.

모나리자 복제품에 써넣은 표제어는 'L.H.O.O.Q.'로, 이는 'Elle a chaud au cul'이라는 프랑스어를 읽을 때 나는 소리를 알파벳으로만 쓴 것인데, '그녀는 뜨거운 엉덩이를 가졌다'라는 뜻으로 당시 사람들이 '모나리자'에 대해 가졌던 예술적 경외심에 찬물을 끼얹은 도전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뒤샹의 여성 자아 에로스 세라비(Rrose Sélavy)는 똑같은 발음으로 'Erose, c'est la vie(에로스, 그것이 인생이다)'로 해석됩니다. 뒤샹은 에로스 세라비라는 여성 자아로 향수 라벨 콜라주를 만들고 그 향수 이름은 '오 드 브왈레트(Eau de Voilette)'라고 붙였는데, 이는 물론 화장수를 뜻하는 'Eau de Toilette'를 비꼰 이름입니다.

● 한국 전시는?

뒤샹의 일대기식으로 전개되는 이번 전시는 뒤샹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에탕 돈네(Étant donnés)'로 끝납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영구 설치된 미술품이어서 한국에서는 디지털로 재현했습니다. 프랑스어로 '주어진 것(Given)'이라는 이 작품명의 유래에 대해 물었더니 그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 것으로 '주어진 것(Given)'이 아닌 '그것으로부터 시작(Starting from)'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고 필라델피아 미술관 큐레이터 매튜 애프론은 설명했습니다. 
에탕돈네
한국에서 뒤샹 전시가 처음 열린 것은 지난 1987년으로 당시 약 28점이 전시됐는데, 이번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을 포함해 150여 점이 전시돼 아시아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뒤샹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티모시 럽 관장은 한국 전시에 대해 "뒤샹의 대표 작품뿐만 아니라 수많은 드로잉과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 등 그의 아카이브를 소개하는 대규모 회고전은 처음"이라며 "한국인들은 행운"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지난 2005년 국립 현대미술관이 당시 소장품 가운데 최고가로 구입했다고 해서 논란이 됐던 뒤샹의 작품 '여행 가방 속 상자' 에디션도 볼 수 있습니다.
마르셀 뒤샹으로부터 혹은 마르셀 뒤샹에 의한, 또는 에로즈 셀라비로부터 혹은 에로즈 셀라비에 의한(여행가방 속 상자)
저는 기자 간담회가 있었던 지난주 목요일 이후, 일주일 만에 다시 전시관을 찾아가 봤습니다. 평일 오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있었는데, 이 가운데는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이거나 관련 분야 연구가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열심히 메모하면서 감상하는 모습도 보여 그의 미술사적 위치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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