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남북 군사합의의 두 모습…흐린 NLL과 맑은 DMZ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8.12.13 08:36 수정 2018.12.17 15:54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남북 군사합의의 두 모습…흐린 NLL과 맑은 DMZ
어제(12일) 비무장지대 DMZ의 남북 GP 11곳씩을 철거하고 상호 검증하는 작업이 마무리됐습니다. 남북 GP 시범 철수 사업이 끝난 겁니다. 9·19 남북 군사합의 가운데 이행과 검증이 완성된 첫 사례입니다.

판문점 공동관리구역 JSA 비무장화, 화살머리고지 6·25 전사자 유해 공동발굴, 한강 하구 중립수역 평화적 이용도 쾌속으로 진행 중입니다. 모두 군비 통제의 첫 단계인 신뢰 구축 조치로, 관건은 이행인데 현재까지는 남북이 제대로 이행하는 분위기입니다.

다행스러운 일인데 서해 북방한계선 NLL 주변은 불안합니다. 11월 1일부터 NLL 완충 수역이 선포됨에 따라 남북은 해안포 포문을 닫고 해상사격을 금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북한이 여전히 해안포 포문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NLL을 부정하는 경고 방송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9·19 군사합의 위반입니다.

남북 군인들이 함께 만나 이행하는 공개적 군사합의는 잘 진행되고 있는데 으슥한 곳에 적용되는 군사합의는 뒷걸음입니다. 국방부는 이행이 순조로운 군사합의는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위반 건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9·19 군사합의가 성공해서 다음 단계의 신뢰 구축 조치로 나아가려면 북한의 불이행을 대충 보고 넘겨서는 안 됩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 北 해안포 열고, 경고방송 하고
연평도 앞바다의 우리 해군 고속정 포신에 덮개가 씌워져 있다.11월 1일 NLL 완충 수역이 선포되자 국방부 출입기자단은 연평도를 현장 취재했습니다. 망원경으로 보이는 북쪽 옹진반도의 개머리해안에 해안포 동굴 진지 3곳이 식별됐습니다. 그중 1곳은 포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우리 군은 포문이 열린 이유를 북측에 물었고 북측은 "해안포가 없는 동굴 진지"라는 답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3곳 진지 외에도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는 북한 해안포의 포문은 닫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문제는 서북도서 해병대 관측병들이 망원경으로 볼 수 없는 곳에 있는 해안포들입니다.

포문 다수가 열려 있습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후미진 곳의 해안포들은 다수가 열려 있다"며 "망원경으로는 잘 안 보이지만 정밀 감시 관측장비로는 정확히 식별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그제(11일)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사실 관계에 대해서 확인해 드리기는 그렇다"고 말해 북한의 해안포 개방을 사실상 인정했습니다.

NLL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NLL 남쪽에 그어놓은 경비계선을 강요하는 경고 방송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군의 한 소식통은 "북한이 '경비계선 밖으로 나가라', '물러가라'는 식으로 경고 방송을 하고 있다"며 "경고방송의 수위가 좀 낮아진 면이 있지만 경고방송이 여전한 것은 맞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군은 북측에 엄중히 항의해야 합니다. 하지만 최 대변인은 "전통문, 대북접촉을 통해 계기 시마다 북측과 협의하고 있다"며 "북한이 NLL을 침범하지는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 잘한 일은 평가하고, 못한 일은 꾸짖어야

한강 하구 중립수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남북 공동조사가 마무리된 지난 9일, 서주석 국방부 차관과 김양수 해수부 차관이 한강 하구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명의 차관은 배를 타고 중립수역으로 가서 조사를 끝낸 남북의 조사단원을 격려했습니다. 북측에서는 조사단원 말고는 아무도 안 나왔는데 우리는 차관 2명이 나서서 비대칭적 광경을 연출했습니다.

국방부는 지난 10일 오후 아무 예고 없이 사진 1장과 함께 짧은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북한이 철거 GP와 군사분계선 사이에 개척한 오솔길에 황색 깃발을 내걸었다는 내용이 전부였습니다. 남북 철거 GP의 상호검증을 띄우기 위한 사전 홍보였습니다.

잘 이행되는 군사합의들을 널리 알리는 걸 탓하자는 게 아닙니다. 잘 되는 일은 잘 되는대로 평가해야겠지만 안 되는 일은 또 그것대로 비판해야 마땅합니다. 좋은 면만 부각하고 어두운 데는 덮는다고 해서 잊혀지고 가려질 사안이 아닙니다. 중립수역 공동조사와 GP 시범 철수 종료에는 떠들썩하게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북한의 해안포 포문 개방에는 미적지근하게 반응하는 무른 모습을 보이면 북한은 앞으로 더 큰 위반, 더 큰 요구를 하기 십상입니다.

9·19 군사합의의 완전한 이행 없이 은근슬쩍 다음 단계의 군비 통제로 넘어갈 수도 없습니다. 북한의 해안포 포문은 미국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9·19 군사합의 성패는 DMZ와 한강 하구가 아니라 NLL에 달렸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