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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법부 블랙리스트, 안 찾은 것인가 못 찾은 것인가

[취재파일] 사법부 블랙리스트, 안 찾은 것인가 못 찾은 것인가
사법농단 사태의 출발점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었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받았던 이탄희 판사가 '판사 뒷조사 파일'이 행정처 컴퓨터에 존재한다는 말을 이규진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 들은 이후 충격을 받고 사표를 제출한 사실이 2017년 3월 언론에 보도되면서 모든 일이 시작됐다.

● 법원 진상조사단 "블랙리스트는 없다"…검찰 "블랙리스트 찾았다"

하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성한 진상조사위원회도(이하 '1차 조사단'), 그리고 김명수 대법원장이 구성한 추가 조사위원회와(이하 '2차 조사단') 특별조사단도(이하 '3차 조사단') 모두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조사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 컴퓨터에서 파일이 대량으로 삭제된 사실이 확인됐고, 판사들의 성향을 뒷조사하고 이들에 대한 인사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한 문건까지 발견됐지만, 특정 판사들에게 부당한 이유로 인사 불이익을 주려는 의도로 작성된 '블랙리스트'는 찾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선 세 차례 진상조사의 결론이 일치했다.
1차 조사단 조사보고서 中 (2017. 4. 18. 발표)
그러나 검찰은 최근 수사과정에서 '사법부 블랙리스트로 판단되는 문건들을 발견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압수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공표한 판사들을 "물의 야기 법관"으로 지정해 인사 불이익을 준 정황이 명시된 문건이 확인된 것이다. 법원행정처의 뜻에 반해 단독판사회의 의장으로 나서 사법행정을 비판한 판사, 박근혜 정부의 최대 관심사였던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선거법 무죄 판결을 공개 비판한 판사 등도 성희롱 의혹 등이 있는 진짜 '물의야기 법관'들과 함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문건에 올라간 판사들을 해외 파견이나 대법원 재판연구관 발령 등 '선발성 인사'에서 배제하겠다는 원칙을 명시한 문건도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법원행정처가 국정원 댓글 사건 1심 판결을 공개 비판한 김동진 부장판사에 대한 허위 정보를 바탕으로 김 부장판사를 정신질환자로 규정한 문건도 발견됐다. 김동진 판사에게 확인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이 아닌 정보를 바탕으로 김 부장판사 몰래 의사 소견을 물은 뒤, 정신질환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문건을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것이다.(※ 대외비로 분류돼 있는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이기 때문에 김동진 부장판사는 최근 검찰 조사를 받기 전까지 이런 문건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2018년 하반기에 재임용 심사 대상이 되는 김동진 부장판사를 심사에서 탈락시키기 위해 의료정보를 조작한 문건을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블랙리스트를 "부당한 이유를 근거로 감시나 불이익의 대상자를 선정한 명단"으로 정의한다면, 정확히 이에 부합하는 문건이 법원행정처에 여러 건 존재했던 셈이다.

● 블랙리스트의 핵심은 '인사총괄심의관실'인데…

그렇다면 법원은 세 차례 진상조사에도 불구하고 왜 번번이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발표했던 것일까?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에 대한 접근이 문제였다. 검찰은 이른바 '블랙리스트로 판단되는 문건들'을 대부분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확보했다. 그러나 법원의 1, 2, 3차 진상조사단은 모두 인사총괄심의관실 자료를 직접 접근하지 않았다. 인사 불이익 여부가 핵심인 블랙리스트에 대해 조사하면서 정작 판사들에 대한 인사 정책을 수립하는 인사총괄심의관실 자료는 한번도 직접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국제인권법연구회 핵심회원들에 대한 인사불이익을 검토한 인사총괄심의관실 문건이 발견됐는데도 조사단은 인사총괄심의관실 원자료에 접근조차 못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구성한 3차 조사단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이 2016년 3월 작성해 임 전 차장에게 보고한 "국제인권법 연구회 대응방안"이라는 문건을 발견했다. 이 문건에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정상화 방안" 중 하나로 "(국제인권법 연구회) 핵심회원에 불이익 부과. 인사모 등 핵심 회원에게 선발성 인사, 해외 연수 등에서 불이익 부과"라고 인사총괄심의관실이 제시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3차 조사단은 이 방안이 실행됐는지 여부를 확인하겠다면서도 인사총괄심의관실 내부 자료에 직접 접근하지 않았다. 대신 인사총괄심의관실에 '선발성 인사 심사 과정에서 이 같은 방안이 실행됐는지 확인해 회신해달라'고 요청했을 뿐이다. 인사총괄심의관실은 몇 가지 분석 자료와 함께 '심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이에 3차 조사단은 문건에 언급된 대상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심사 기준을 알려달라고 다시 요구했지만 인사총괄심의관실이 자료 추가 제출을 거부했다. 3차 조사단은 결국 인사총괄심의관실 내부 문서를 들여다보지도 못한 채 2018년 5월 25일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결론을 되풀이했다.
3차 조사단 조사보고서 中 (2018. 5. 25. 발표)
당시 3차 조사단의 언론 브리핑에서, 나는 조사단 핵심관계자에게 인사총괄심의관실 자료에 직접 접근하지 않은 채 조사 결과를 발표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법원행정처장이 조사단장으로 있는데도, 법원행정처 소속 부서인 인사총괄심의관실이 제출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조사단이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설명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도 지적했다. 하지만 특별조사단 관계자는 "최대한 접근하려고 했는데... 법원행정처의 생리를 아실 필요가 있는데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는 외부로 절대 (인사자료를) 유출시키지 않는다. 법원행정처장 명령이라면서 (자료 제출 요구를) 강행하기에는 그럴 사안은 아니라고 봤다."라고 답했다. '법원행정처의 생리'를 알지 못해서 그런지 답을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 사법부 블랙리스트, 안 찾은 것인가 못 찾은 것인가

법원의 진상조사단은 인사총괄심의관실로부터 자료를 확보하지 않은 것인가, 못한 것인가.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인사총괄심의관실 내부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정말 몰랐던 것일까, 가능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회피한 것인가. 김명수 대법원장의 법원행정처는 검찰이 자료를 압수해가기 전까지 블랙리스트로 해석될 수 있는 문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정말 몰랐던 것일까? 알고 있었다면 그동안 법원행정처가 인사자료 임의제출을 거부해왔던 것은 이 문건의 존재와 관계가 있는 것인가?

수많은 질문이 제기되지만 법원행정처는 아직까지 검찰이 법원행정처 내부에서 사법부 블랙리스트로 판단되는 문건을 압수했다는 보도에 대해 한 마디도 코멘트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앞으로 법원 진상 조사 과정에서 인사총괄심의관실 자료를 확보하지 않고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결론이 내려진 경위도 수사 과정에서 확인해 볼 계획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굳게 입을 닫고 있는 법원행정처가 검찰이 수사를 마무리하기 전까지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다시 입장을 밝힐 것인지 앞으로도 관심 가지고 지켜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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