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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상사 욕설 때문에 퇴사하고 싶어요"…직장 내 괴롭힘, 해외는 경영진도 처벌

송욱 기자 songxu@sbs.co.kr

작성 2018.11.25 09:00 수정 2018.11.25 09:0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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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25일 9시] '상사 욕설 때문에 퇴사하고 싶어요한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글입니다. 자신을 직장인이라고 밝힌 작성자는 "회사가 힘들어 휴일이면 이력서 넣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며 "상사의 욕설까지 들어가며 일하고 싶지 않다"고 괴로움을 토로했습니다.

과도한 업무 지시, 욕설, 성희롱, 왕따, 등 직장 안에서 벌어지는 괴롭힘은 그 유형도 다양합니다. 최근 한국미래기술 양진호 회장이 퇴사한 직원을 무자비하게 때리고, 직원들에게 활을 쏘게 해 닭을 잡게 강요하는 등 엽기적인 행각을 저지른 것이 밝혀지면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더 거세졌는데요.

오늘 리포트+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의 실태를 짚어보고 해결책은 없는지 알아봤습니다.

■ "과도한 감시도 직장 괴롭힘"… 6개월 이상 괴롭힘 당한 비율, 유럽보다 3배 높아

직장 내 괴롭힘이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특정인을 따돌리거나 욕설, 폭행 행위를 괴롭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의 범주를 훨씬 넓게 봐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노르웨이 버겐 대학의 '따돌림 연구소(Bergen Bullying Research Group)'가 만든 설문에 따르면, 과도한 감시를 받거나 관련 없는 사람들로부터 짓궂은 장난을 당하는 일, 능력보다 낮은 일을 하도록 요구받는 것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분류됩니다.
[리포트+/25일 9시] '상사 욕설 때문에 퇴사하고 싶어요그렇다면 직장 내 괴롭힘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만연해 있을까요?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8~9월 사이 진행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 생활 경험이 있는 만 20~64세 남녀 1,500여 명 중 73.7%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은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느낀 겁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봐도 우리나라의 사정은 심각합니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가 세계 따돌림 연구소에서 만든 '부정적 경험 설문지'를 이용해 국내 직장인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27.8%가 직장 내 괴롭힘을 6개월 이상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같은 설문을 진행했을 때, 피해율이 10% 초반인 것을 감안하면 2배가 훨씬 넘는 수치입니다.

■ 법으로 보호하자 더니…2개월간 잠들어 있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그나마 양진호 회장 사건 등이 수면으로 드러나면서, 괴롭힘 당하는 직장인들을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는데요. 지난 9월, 여야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통과를 촉구하면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법안에는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과 정의가 처음으로 명시됐습니다.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정신·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했는데요. 물리적 폭행이나 성폭행 등은 기존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처벌 규정이 마땅치 않았던 욕설이나 갑질 행위도 이 정의에 따라 노동부 조사가 가능해집니다.

그런데 2개월이 넘도록 이 법은 국회 심사 두 번째 단계인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 발목이 잡혀 있습니다. 일부 야당 측 법사위 의원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정서적 고통'의 개념이 모호하고 '업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의 범위도 명확하지 않아 법을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겁니다.

이에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측은 "과거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부터 최근 양진호 회장 사건 등 줄줄이 직장 괴롭힘이 이어지는데도 야당 의원들이 법안 통과를 반대하는 것은 직장 내 폭력을 방치하자는 매우 무책임한 태도"라며 직장 갑질을 비호하겠다는 의지로밖에 읽히지 않는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리포트+/25일 9시] '상사 욕설 때문에 퇴사하고 싶어요■ "신체적·정신적 건강 훼손 안돼"…프랑스, 가해자뿐 아니라 경영진도 처벌

해외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요? 이미 유럽 등 다양한 국가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정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법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한 대안을 가장 먼저 내놓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1990년대 초에 이미 세계 최초로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조례를 제정했고 형법으로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노동법에서 "모든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와 존엄을 침해하거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훼손하고, 근로조건의 저하를 초래하는 정신적 괴롭힘의 행위들을 반복적으로 겪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해 직장 내 괴롭힘 개념을 폭넓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특히 괴롭힘이 발생하면 직접적인 가해자뿐 아니라 회사 경영진까지도 처벌이 가능합니다.

캐나다 퀘벡주는 2004년에 노동기준법을 개정하면서 괴롭힘의 정의를 명확히 했습니다. 특히 '정신적 괴롭힘'을 "노동자의 존엄성 또는 정신적·신체적 온전함에 영향을 미치고, 노동자에게 유해한 노동 환경을 초래하는 반복적이고 적대적인 모든 행위·말·동작 또는 몸짓 등의 형태"라고 포괄적으로 언급하며 폭행만이 괴롭힘은 아니라는 것을 드러냈죠.

가까운 나라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는 법안이 아직 만들어지지는 않았는데요. 상사가 부하 직원을 괴롭히는 '파워하라(권력을 뜻하는 'power'와 괴롭힘을 뜻하는 'harassment'의 합성어)'가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사내 규정을 신설하는 회사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기획·구성: 송욱, 장아람 / 디자인: 감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