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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연평도 포격전' 8주년…그날의 기록들

[취재파일] '연평도 포격전' 8주년…그날의 기록들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 122mm 방사포 부대가 개머리 해안에서 연평도를 무차별 공격하자 연평부대 해병들은 목숨 걸고 맞서 싸웠습니다. 연평도 포격전, 오늘이 8주년입니다. 이제 연평도와 주변 바다는 남북 9·19 군사 합의에 따라 해상사격도 해상기동훈련도 없는 완충 수역이 됐습니다. 남북 모두 포문도 닫았습니다.

완충 수역이 됐다고 해서 완전한 평화가 찾아온 건 아닙니다. 북미 비핵화 협상 추이에 따라, 또는 북의 돌발적 도발로 인해 연평도는 언제든 위기의 섬이 될 수 있습니다. 연평도 포격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훈장 없는 승리, 연평도 포격전을 잊지 않기 위해 연평부대 해병들의 포격전 수기집 '우리는 승리했다'를 8년 만에 꺼내 발췌해 소개합니다. (이하 계급은 2010년 11월 23일 기준)

● "먼저 주민을 대피시켜라"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슝슝' 소리와 함께 폭음과 진동이 연평도의 땅과 하늘을 흔들었습니다. 연평부대 지휘부는 제일 먼저 민간인들의 안전부터 챙겼습니다.

"지통실이 소란스러워지고 혼란스러워지는 와중에 '진정하고 주민 대피 지시부터 내려라'라는 부대장의 호통이 군인으로서 연평도에 있는 이유를 일깨웠다." (중위 김대원)

"어린이들은 다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사 담당과 유치원으로 차를 타고 갔다. 유치원 앞은 혼란 그 자체였다. 화염 속에서 어린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물만 흘리고 있는 유치원 교사가 있었다. 유치원 안으로 달려가 보니 아이들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소령 남정일)

"인사과장과 관사 담당은 포탄이 어디에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민간인 보호를 위해 어린이집의 어린이들과 교사, 길거리에서 공황상태에 빠진 주민 및 어린이 수십 명을 대피 시설로 이동시켰다. 출도 담당은 선착장에서 휴가 대기자들을 버스 승차책임자에게 인계하여 각 부대로 복귀시키고 지통실로 돌아왔다. 우리는 포격의 순간에도 자신의 안녕을 위해 자세를 숙이지 않았다." (중사 안준오)

● 전설의 연평부대 포7중대
철모 외피가 불타고 인중에 화상을 입으면서도 전투를 한 임준영 해병
"4포의 불발탄 소식이 들렸다. '뭐지 불길하게?' 중대에서 한 번도 불발탄이 뜬 적이 없었는데 다들 이런 마음으로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굉장한 폭음이 들려왔다. 4포의 불발탄이 터진 것으로 생각되었다. '다들 무사할까?'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쾅!' 소리와 함께 사방이 흔들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았을 때는 화염이 어깨 선상까지 포 내부로 올라온 상태였다. '이게 말로만 듣던 전쟁이구나!' 난 해병대인데… 해병대인데…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보자." (상병 임준영)

연평부대의 최강 화력 포7중대는 해상 사격훈련 중이었습니다. K-9 자주포 총 6문 중 1문이 훈련 중 고장이 난 상황에서 북한 방사포탄 세례를 받았습니다. 북한군은 반격의 싹을 없애기 위해 포7중대를 집중 공격했습니다. 아래는 김정수 당시 포7중대장의 글입니다.

"포탄이 낙하 되는 상황에서 즉각 사격 준비를 지시했다. 우리 중대원들은 차분하면서도 대담하게 사격을 준비했고 5포, 6포가 사격 준비 완료 보고를 했다. 6포는 얼마나 화가 났던지 3번이나 '사격 준비 끝!'을 외쳤다."

북한군의 1차 포격으로 자주포 3문이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1포와 3포에 발생한 화재가 심각했습니다. 피해가 경미한 5포와 6포 등 2문이 먼저 대응 사격 준비를 마쳤습니다. 반격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당장 사격 명령이 떨어지지 않자 대원들이 사격하게 해달라고 중대장에게 화를 냈던 겁니다.

"내 눈으로 본 2포의 모습은 분명히 장비 파괴로 임무 불가 상태였다. 그런데 2포는 우렁찬 목소리로 '사격 준비 끝!'을 외쳤다. 고마움과 자신감이 넘쳐났다. 그래서 부대장에게 3문이 사격 준비가 끝났다고 정정 보고를 하였고, 부대장은 '사격해!'라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피탄된 포를 급히 수리하고 5포, 6포, 2포 등 3문으로 첫 반격에 나섰습니다. 북한군이 방사포 공격을 한 지 13분 만입니다. 공격원점의 좌표가 내려오지 않아 그동안 수없이 훈련했던 무도의 북한군 진지를 맹폭했습니다.

"행정관으로부터 3포 인원이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보고와 3포 화재가 크다는 보고를 받아 3포는 즉각 화재를 진압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잠시 후 3포 반장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수동으로 사격 임무에 가담하겠다'는 보고였다."

3포까지 가세해 최종적으로 K-9 자주포 4문으로 반격했습니다. 코앞에 방사포탄이 떨어지는데 불 끄고, 끊어진 케이블 연결하고, 수동조작하며 포7중대는 이렇게 싸웠습니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임무를 수행해준 중대원!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살아줘서 고맙다."

'대응 사격이 늦었다', '정확하게 타격하지 못했다'며 포7중대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그라나다와 아프가니스탄 전역(戰域)에서 숱한 실전을 치른 당시 한미연합사 작전참모장 존 A. 맥도널드 장군이 그들에게 던지는 말입니다.

"갑자기 포탄이 날아와 옆 동료가 죽었는데 13분 후에 다시 현장에 나가 대응 사격을 했다. 쉬울 것 같나? 바깥에서는 몰라도 그 용기를 우리는 안다."

● "우리는 승리했다!"
화염 속에서 대응 사격하는 포7 중대
연평도 포격전의 상징과도 같은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불타는 K-9 자주포 위에 당당히 앉아있는 강승완 병장. 피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 사진을 찍은 해병은 대위 이성홍입니다. 방사포탄을 피해 숨은들 뭐라고 할 사람 없었지만 정훈 공보장교로서 제 임무를 다했습니다. 연평부대 해병들은 그때 그랬습니다.

"불길이 깊은 산으로 번져가는 것을 어느 정도 막고 있을 즈음, 산속에서 갑자기 '그래! 북한 놈들아! 한판 붙자'라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그곳을 보니 본부중대 박용철 중사가 혼자서 소화기를 들고 산 정상에서부터 불을 끄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언제 정상으로 갔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 (상사 송광호)

"어떤 해병은 흉부에 생긴 상처에서 장기가 보였다. 그래서 얼른 보고를 하고 처치를 하였다. 환자를 처치하는 동안 2차 포격이 시작되었다. 정말 무서웠다. 살고 싶었다. 하지만 환자를 살려야만 했다. 북한이 포를 쏜다고 모두 대피하라는 방송이 들려 왔지만 모두들 방송을 무시한 채 환자를 처치하였다." (이병 강병욱)

"끊어져 가는 숨을 붙잡아 보고 싶어 심폐소생술을 시작했으나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병사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주변에 다른 부상자들의 신음소리, 비명소리와 다급한 외침들이 가득하여 곧바로 다른 대원들의 상태를 보러 갔다. 2차 포격이 의무실 주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발 의무실이 맞지 않기를 빌며 환자 처치를 계속해 나가고 있었으나 또 다른 환자들도 하나둘씩 실려 왔다. 도착한 병사를 살펴보니 전신 곳곳에 파편을 맞은 채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대위 김혜강)

이렇게 처절하게 싸우고 살아남았지만 연평부대원 누구 하나 훈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11월 23일 그날 우리 해병대는 연평도와 함께 있었다. 내일도 함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중령 경두호)

"나에게 오늘은 11월 23일 화요일이며, 내일 또한 11월 23일 화요일이 될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의 시간은 11월 23일 화요일에서 멈췄다. 우리의 전우를 죽이고 다치게 한 적에게 복수하기 전까지 나의 시간은 11월 23일 화요일에 계속 정지해 있을 것이다.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내 시간은 다시 흐르지 않는다. 전우여! 편히 잠드소서. " (대위 송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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