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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풀어 쓴 '분식회계 서사시'…삼성바이오 남은 쟁점은

[취재파일] 풀어 쓴 '분식회계 서사시'…삼성바이오 남은 쟁점은
오후 4시 40분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한 손에 몇 장짜리 서류 뭉치를 들고 몇몇 금융위 인사들과 함께 정부서울청사 합동 브리핑룸이 있는 3층으로 내려왔습니다. 사전 자료 배포나 결과 공지가 없었기에, 자리에 있던 수많은 기자들의 눈이 부위원장의 입에 쏠렸습니다.

장시간 조탁한 문안을 읽어 내려가는 김 부위원장의 입에선 '고의로 판단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1년8개월을 끌어 온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논란에 마침내 종지부가 찍힌 겁니다.

▶ [8뉴스 리포트] 증선위, 삼성바이오 '고의 분식회계' 결론…주식거래 정지 (2018.11.14)

변호인단을 대동하고 이날 증권선물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삼성바이오 측은, 최근 강력한 '스모킹 건'으로 떠오른 내부 문건의 고의성 증빙 여부는 차치하고, 지난 7월 증선위에서 지적한대로 2012년 회계기준의 '정답'을 먼저 따져야 한다고 강변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증선위가 내놓은 결과엔 개별 연도에 따른 삼성바이오의 회계 처리 기준 위반 항목이 조목조목 명시돼 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 '분식 회계' 논란의 시초…시민단체가 그린 큰 그림

하지만 복잡한 문안들을 모두 이해하기 위해선, 이 모든 논란의 시초를 다시 한번 볼 필요가 있습니다. 1년 8개월의 장구한 여정은 지난해 3월 금융감독원이 삼성바이오에 대한 특별감리를 착수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그에 앞선 2월, 참여연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삼성바이오에 대한 분식 회계가 이뤄졌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에 따른 겁니다.

전체적인 그림은 대략 이렇습니다. 2011년 삼성그룹은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한 투자를 결심하고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합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었던 에버랜드가 40%, 삼성전자가 40%, (구)삼성물산이 10%의 출자금을 댔습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
에버랜드는 2013년 제일모직을 인수한 뒤 사명도 제일모직으로 바꾸고 유가증권에 상장됩니다. 여기서부터 삼성물산과의 합병 이슈가 발생합니다. 합병 비율은 주가로 결정되는데, 이재용 부회장이 소유한 제일모직이 더 유리한 상황에서 합병하기 위해선 주가 부양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여기서 제일모직이 투자한 삼성바이오가, 드디어 구원투수처럼 등장합니다.

기업가치 반영 과정에서 삼성바이오는 2조 원에 가까운 우량회사로 평가받았고, 모기업인 제일모직의 가치도 쑥쑥 올라가게 됩니다. 그다음은 모두 알다시피, 삼성물산 주식이 한 주도 없었던 이재용 부회장이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되는, '성공적인 합병'이란 결말입니다.

●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싱크빅', 큰 그림의 키?

참여연대는 이 큰 그림에서 아주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하는 삼성바이오에 주목했습니다. 삼성바이오는 2016년 11월에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됐는데, 그 전에 발표된 2015년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니 석연찮은 이유로 삼성바이오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와의 관계가 바뀌어 있었던 겁니다.
삼성바이오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릴 수 있지만, 에피스는 삼성바이오가 만든 자회사입니다. 글로벌 제약시장에 처음 뛰어든 삼성은 기술 제휴 등 노하우 전수를 위해 여기저기 열심히 문을 두드리고 다녔습니다. 이런 삼성의 손을 유일하게 잡아준 곳이 미국의 '바이오젠'이라는 회사입니다.

삼성이라는 든든한 배경 빼고는 이 분야에 대한 노하우가 전무했던 삼성바이오는 선뜻 손을 잡아준 고마운 바이오젠에 '잠재적 의결권(콜옵션이라고 합니다)', 즉 사업이 성공했을 때 일정 비중까지 지분을 행사할 권한을 주는 조건으로 합작사 에피스를 설립하게 됩니다.

다만 설립 당시인 2012년, 삼성바이오는 이 에피스를 '단독지배'하고 있다는 의미의 '종속회사'로 회계 처리했습니다. 이렇게 회계처리를 하게 되면 삼성바이오 가치를 매길 때, 에피스 자산을 장부 가격대로 매겨 계산하게 됩니다. 이 회계 기준은 결국 두고두고 문제가 됩니다.

● 회계 기준 변경 논란의 시작…그 해와 그 해의 사정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에피스와의 관계를 모두 '종속회사'로 규정한 삼성바이오는 상장을 앞둔 2016년 4월, 별안간 2015년 감사보고서를 공시하면서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회계 처리합니다.

'종속회사'일 때 '장부가액'으로 계산한 자산 가치는 '관계회사'일 때 '시장가액'으로 계산됩니다. 그러자 에피스는 종전 장부가액 2900억 원에서 시장가액 4조 8천억 원으로 자산 가치가 훌쩍 뛰어오르게 됐습니다. 이 '뻥튀기 효과'로 인해 4년 연속 적자 행렬이었던 모회사 삼성바이오 역시 덩달아 1조 9천억 원의 순이익을 내는 초우량기업으로 탈바꿈합니다.

참여연대는 이 부분을 지적하며, 석연찮은 회계 기준 변경이 바로 2015년 9월 앞서 언급했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비율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수순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금융감독원 역시 특별감리를 거쳐 특정한 시기에 이유 없이 회계 처리 기준을 변경한 것은 고의성이 다분하다는 요지로 제재안을 올렸지만, 지난 7월 증선위에선 "금감원의 문제제기에 더 구체성이 필요하다"며 일부 공시누락에 대해서만 고의성 여부를 판단했습니다.

삼성바이오는 이에 대해 "2015년에 회계기준을 바꾼 것은 옳은 일이었고, 이전에 종속회사로 처리한 것이 실수라 바로잡은 것"이라고 해명했는데, 증선위가 이를 받아들여 금감원에 "2012년-2014년 회계기준은 어떠해야 했냐"를 반문하면서 다시 제재안을 만들어오라고 주문한 겁니다.

바이오젠사가 언제든 행사할 수 있는 콜옵션을 고려한다면, 사실 에피스가 삼성바이오에게 온전히 소속된 '종속회사'로 보기엔 무리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금융감독원은 추가 조사를 시작할 무렵에도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집니다.

회계 처리 변경의 '고의성' 입증 책임을 넘겨받은 셈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1차 증선위 직후 만난 금감원 관계자는 "압수수색이 아니고서야 그 증거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겠냐"고 제 앞에서 한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 서류 꾸러미를 들고 나타난 귀인…'스모킹 건' 내부 문건 제보

상황이 반전된 건 이 고의성을 입증할 수 있는 제보였습니다. 2015년 11월까지 삼성바이오 재경팀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부 문건이 금감원에 흘러들어왔습니다. 추후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이 원본을 직접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삼성바이오 회계부정 의혹
해당 문건은 바이오젠사가 콜옵션을 행사할 경우 빚이 크게 늘어나 자칫 상장이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회계법인과 상의하여 상황을 타개할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상장이 되지 않으면 합병 비율 산정이 모두 뒤틀리는 상황이었기에, 문건은 모기업인 삼성물산에 끼칠 피해까지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회계 처리 기준 변경'이었습니다. 콜옵션을 대비해 자산 가치를 부풀릴 수 있는 방법을 회계에서 찾은 겁니다. 삼성바이오는 여태껏 바이오젠사가 가지고 있던 콜옵션 자체가 자사의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계회사 처리가 맞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는데, 이 문건을 통해 회계 기준 변경 의도가 그 때문이 아닐 수 있단 정황이 제시된 겁니다.

● 증선위의 판단…그 해와 그 해의 정의(正義)

그럼 처음으로 돌아와서 이 증거를 바탕으로 내린 증선위의 결론을 살펴보도록 하지요. 증선위는 "정답이 뭐냐"고 물어오는 삼성바이오에 먼저 대답합니다. 바이오젠이 콜옵션이라는 적잖은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2012년부터 2014년까지도 에피스를 '종속회사'가 아닌 '관계회사'로 회계 처리하는 것이 맞는다는 결론입니다.

다만 삼성바이오가 에피스를 종속회사로 처리한 2012년과 2013년은 에피스 설립 초기 시점이고, 새로운 회계기준서가 막 도입될 무렵임을 참작해 이때의 위반 동기는 '과실'로 판단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콜옵션' 공시가 처음 등장하는 2014년엔 확실히 바이오젠사의 영향력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회계 처리를 관계회사로 바꾸지 않은 의도에 대해 '중과실'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회계기준을 변경한 2015년은, 이미 삼성바이오가 자회사의 가치를 부풀리기로 작정한 상황에서 회계기준을 원칙 없이 입맛대로 적용했다는 점에 주목해 가장 제재 수위가 높은 '고의'로 위반 동기를 판단했습니다. 증선위는 중대한 분식 회계를 저지른 삼성바이오에 대표이사 해임 권고, 과징금 80억 원, 검찰 고발 등의 중대한 제재를 예고했습니다.

● 남은 쟁점은 무엇?

금융당국이 열아홉 달간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자마자 이제부터는 한국거래소와 검찰의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중징계가 의결되면서 14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 6위인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주식 매매는 전면 중단됐고 종목은 상장 실질 심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투자자 보호, 기업의 계속성 등을 고려할 때 상장폐지까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 전망이 현재까지도 우세합니다. 그래서인지 14일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전날보다 6.7% 오른 값에 장을 마쳤습니다. 8만여 명에 이르는 소액 투자자들은 거래가 중단된 삼성바이오를 대상으로 민사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1차 증선위 이후 행정소송을 진행했던 삼성바이오는 이번에도 증선위 결과를 따를 수 없다며 행정 소송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제 결정의 몫은 사법부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분식 회계' 서사시의 밑바탕이 된, '삼성 승계 작업'에 대한 관심도 다시 점화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삼성바이오 분식 회계 여파는 모회사 삼성물산으로도 번질 전망입니다. 삼성물산 재무제표에 대한 감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년 8개월을 돌고 돌아온 곳. 어쩌면 이번 증선위의 결정은 '종지부'가 아니라 어떤 '2라운드'의 서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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