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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립대 에너지 지킴이'…누굴 위한 일자리인가?

학생들 호응 부족…학교는 '할당량' 채우기 안간힘

● '국립대 에너지 지킴이' 실상은?

일부 국립대학교들이 지난주부터 '동절기 에너지 지킴이'라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이른바 '맞춤형 일자리' 대책 가운데 하납니다. 정부는 '맞춤형'이라는 용어를 쓰지만, 기자들은 '단기 일자리'라고 부릅니다. 하는 일은 캠퍼스를 돌며 불 켜진 빈 강의실의 불을 끄거나 실내 적정온도를 체크해 에너지 낭비를 막는 겁니다. 전국 37개 국공립대학에서 1천 명을 모집해, 한 달 또는 두 달 운영하는 단기 일자리입니다.

정부의 단기 일자리 대책 가운데 그나마 가장 먼저 시행되는 게 '국립대 에너지 지킴이'라 현장 점검을 해봤습니다. "빈 강의실 소등 하는 게 무슨 일자리냐"라는 질타가 많았고 언론과 국정감사에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도 정부(교육부)는 "고용상황이 엄중하고, 이 또한 근로 경험을 쌓는 일이며, 저소득 취약계층 학생들에게 알바 기회를 제공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맞섰습니다.
단기 일자리
하지만 현장의 상황은 그렇지 못합니다. 10월 24일 정부 단기 일자리 대책 발표 후 불과 열흘 남짓 뒤인 11월 5일부터 시행하라는 지침을 하달받은 국립대들은 부랴부랴 학생 모집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호응이 없습니다. 한 국립대는 추가모집까지 했지만 25명 정원에 21명밖에 학생을 모으지 못했습니다. 다른 한 국립대는 학교 규모가 작아 정부 지침 최소 기준인 20명만 채우려고 했는데 이 또한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달 뒤 방학하면 학생들은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겨울방학 3개월 동안 꾸준히 할 수 있는 긴 아르바이트 자리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국 빈 강의실이 많이 발생하는 점심시간이나 수업이 끝나는 오후 5시 이후 2시간씩 하려던 활동기준을 바꿨습니다. 학생들 편한 시간이 아무 때나 한 시간씩 두 번 해도 좋다고… 그래서 가까스로 20명을 채웠다고 합니다.

문제는 수요자가 없으면 안 하면 될 일인데, 정부로부터 할당량을 지시받은 대학들 입장에선 할당량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받고 학교 평가도 받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미운털 박히면 안 되는 위치입니다. 교육부는 거점국립대는 40명, 지역중심대는 30명 이상, 교대 및 전문대는 20명 이상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물론 교육부 하달 문서를 보면 '예시'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각 국립대학교 담당자들은 이를 교육부 지침으로 받아들입니다. 최소 채용 기준으로 생각하고 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지침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정작 수요가 없는데 수요를 억지로 만드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자리는 누굴 위한 일자리인가요? 결국 현장에선 원치 않는데 숫자 채우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어떻게든 숫자 채우면 고용통계 개선으로 이어질 겁니다. 정부는 고용통계 개선을 위한 게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단기 일자리
학교마다 시행 기간도 들쭉날쭉 입니다. 어떤 학교는 2달간 운영하라는 게 정부 지침이라고 해도 이런 예산 낭비는 할 수 없다며 지금부터 방학 때까지 딱 한 달만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방학하면 강의가 없는데, 빈 강의실 소등 알바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상당수 학교는 겨울방학 동안에도 이 소등알바를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왜일까요? 정부 지침에 충실하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 다른 단기 일자리들은? 연내 가능한가?

'국립대 에너지 지킴이' 외 정부가 발표한 단기 일자리는 수십 가지나 됩니다. '소상공인 간편결제서비스 홍보요원' '라돈 측정서비스 요원' 등 이름 생소한 일자리부터 '전통시장 환경미화원' '농어촌 환경정화 요원' 등 꼭 필요할까 싶은 일자리도 많습니다. 대부분 정부가 연내 시행을 목표로 발표한 대책들인데 "과연 잘될까?"라는 의문을 떨치기 쉽지 않습니다.

소상공인 지원대책으로 시행하려는 '소상공인 간편결제 시스템 홍보요원'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른바 '제로페이' 시스템이라고 해서 소상공인들을 카드 수수료 부담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취지의 새로운 전자결제 시스템입니다. 이걸 홍보요원 고용해서 자영업자들에게 제도와 원리를 설명하고 도입하도록 유도하는 일을 하는 거라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채용 예정 인원은 560명입니다. 12월부터 한다고 하는데 11월 중순인 지금까지 채용공고 등 기본적인 절차도 착수하지 못했습니다. 소관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IT 관련 전공 대학생들이나 관련 업계 경험자 등을 홍보요원으로 선발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동절기 야외를 돌아다니며 하는 홍보 활동인 데다, 12월까지 2주밖에 안 남았는데, 그 쉬운 소등알바도 안 하려 하는데 그만큼 유경험자 또는 전공자를 뽑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선발 끝나면 교육도 해야 합니다. 만약 의도대로 인력이 모이지 않을 경우 '국립대 에너지 지킴이'처럼 기준을 낮춰서라도 숫자 채우기에 나서지 않을까 우려도 됩니다. 기우이길 바랍니다.
정부 예산안 일자리 창출

일자리 대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발표를 했으면, 사후 관리를 해야 합니다. 5만 9천 개를 만들겠다고 했으면 지금까지 어떤 기관이 얼마나 일자리를 만들었고, 얼마나 예산이 효율적으로 집행되고 있는지, 현장에 문제는 없는지 등 점검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출입 기자인 제가 취재한 바로는 아직 어느 부서에서 사후 관리를 컨트롤 할지 명확히 조율되지 않아 보입니다. 이 부서가 담당이라고 해서 전화하면 "저 부서가 하고 있다", 다시 저 부서에 전화하면, "그건 그 부서 소관이다" 이런 식입니다. 무책임합니다.

'고용 보릿고개'라고도 합니다. 지금 상황 그만큼 어렵습니다. 보릿고개가 지나면 풍성한 수확 철이 다가와야 하는데 보릿고개가 계속 이어질까 걱정입니다. 이렇게 땜질식 단기 대책, 그것도 현장이 필요로 하지 않는 공급자 마인드의 대책은 곤란합니다. 국민이 낸 세금 일자리에 쓰지 말라는 거 아닙니다. 돈을 써도 제대로 쓰라는 게 국민들의 요구입니다. "지금까지 일자리 예산으로 54조나 썼다는데, 그 돈 다 어디 간 거냐?"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과 자조 섞인 푸념들이 댓글에 넘쳐납니다. 그 흔하디흔한 기사 댓글들도 정책 당국자들은 안 보나 봅니다. 바뀌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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